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2-21 00:13

ㆍIP:

남한산성 그리고 모란 오일장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떱니다.
냉장고 냉장실을 다 뒤져도 닭다리는 없습니다.
산행을 할 때면 의례히 막걸리 안주로 요리해 가는
닭다리가 어느새 냉장고에 바닥나고 없습니다.
냉장고 닥닥 뒤져서 닭똥집만 한 덩어리 찾아냈습니다.
할 수없이 닭 근위 요리가 오늘 나의 막걸리 안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안주를 만들고 부산을 떨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섭니다.
게으른 산행에 정오 가까운 봄볕이 싱그럽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5호선 마천역에서 내렸습니다.
삼삼오오 배낭을 매고 걸음을 재촉하는 등산객들이 보입니다.

이쪽으론 처음 가는 길이라 남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눈치껏 등산로를 찾아갑니다.
남한산성으로 올라 가는 초입에는 다른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음식점, 잡화점, 등산용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빠지지 않고 자리를 점하고 있는 몇 곳의 파전집.
이제야 등산로에 제대로 찾아 든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등산로 입구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파전집들이 즐비한 걸까요?
운동으로 땀 빼고 내려와서 맛있는 먹거리로
다시 잔뜩 살찌우니 산행으로 다이어트는 틀린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남한산성을 등반하기로 했습니다.
코스는 마천역-->남한산성 서문-->수어장대-->남문-->모란 시장.

처음 입구부터의 평탄한 길에는 더러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양옆에는 펜스처럼 연록의 나뭇잎들이 팔랑팔랑 살갑더니
서문 정상 4백여 미터를 남겨 둔 암반 구릉지대부터는
무척 가파르고 바위 사이로 나있는 등산로를 오르자니
조금은 힘이 드는지 아내는 자꾸만 뒤쳐집니다.

아마도 화창한 봄의 정오 무렵 날씨도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아내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혔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땀이 그렇게 맺혀 있느냐고 물으니
아내는 끝까지 그건 땀이 아니라 이슬이라고 우깁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 나를 반깁니다.
서문 가까이에 보이는 암벽 사이 평탄한 곳에서
누룽지 막걸리 파는 노점이 나를 보고 반색을 하는 겁니다.
'반갑다 막걸리 너 본지 오래다.'
한잔하고 싶다 하니 아내는 공연히 핀잔만 줍니다.
배낭에 병 막걸리 한 병 사왔으니 산성 올라가서 마시라 합니다.
핀잔을 듣고 멋쩍게 올려다보니
남한산성 서문녀석이 나를 내려다보며 낄낄대는 것 같습니다.
‘에이구!• 녀석아!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

봄빛이 한참인 서문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봄날의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도 벤치에 앉아 막걸리 한잔과 맥주 한잔하고
눈을 돌려 둘러보니 각양 각색의 등산복 차림 아주머니들은
자리에 눕고, 엎어지고, 쓰러지고, 쪼그리고 앉아 있고……
지금 이곳이 그 옛날 청나라와 항전하던 인조 임금 시절
남한산성의 부상자 병동 같습니다.

걸음을 옮겨 성곽을 따라서 가다 보니
켜켜이 축성한 성곽 돌들을 보며 가슴 한 켠이 뭉클 하는 게
그 옛날 병자호란의 치욕을 400여 년 뒤의 후손인
나에게도 서글프고 서럽게 느껴 오는 듯 합니다.

산성에서 사람 사는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니
아파트 단지들이며 도시들이 멀리로 내려다 보입니다.
아마도 저기 어디 한강변에서 그 옛날 인조 임금이
청나라 오랑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치욕을 감내 하셨겠죠.
가슴속에
‘오냐! 그래도 사직과 백성이 살아 있기만 하면
너희 오랑캐들을 몰아 낼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마음속 깊이 통한의 눈물을 삼키시며......

수어장대로 들어서니
이곳이 인조 임금이 청나라에 대항하여 마지막 항전을 하며
장졸들을 격려하고 45일을 버티던 전쟁지휘소였답니다.

입구에 보니 조그만 사당이 있는데 현판은 청량사.
이곳 남한산성을 축성 할 당시 ‘이회’라는 분이 책임자,
지금으로 말하면 현장 소장 이었나 봅니다.

이분이 남한산성 축성을 지휘 하던 중
일단의 모함 세력에 의해 횡령혐의로 참수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분은 결백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참형 당하게 되자
‘내가 결백하면 죽는 날 매가 날아와서 나의 죽는 모습을 지켜 볼 것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정말 참수 하는 날 커다란 매가 날아 와서
수어장대 앞 바위에 앉아 처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날아갔다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소실들은 부군을 따라 한강에 투신자살 하였답니다.

그래서 당시 조정에서는 그의 유언을 떠올리며 재조사를 했더니
‘이회’는 성실히 축성을 집행하고 지휘 감독하고
횡령한 사실도 전혀 없음이 밝혀져 억울하게 죽은 그를 위해
사당을 입구에 지어놓고 넋을 기린답니다.

그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고 하는데 수어장대 앞에서
그 옛날 전설을 간직하고 후세들에게 똑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교훈(敎訓)을 주는 듯 묵묵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 안내 표지를 보니 문득 옛일이 떠 오르더군요.
입대 일 3~4개월 전인 70년대 후반
어느 조그만 공사 현장의 경리겸 총무를 몇 달 본적이 있는데
그 시절 육십 가까운 나이의 공사현장 반장인 김씨 아저씨가
같이 막걸리 한잔하면서 내게 하시던 한 토막의 이야기……

***일제 시대 때 서울역을 지으려 설계를 하고
결재를 받으면서 상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답니다.
도대체 그렇게 크게 역사를 지어서 뭣 하러 방대한 설계를 하고
나라 돈을 낭비하려 하느냐고, 미친놈들 아니냐고 말이죠.

아마 그때 서울의 인구라야 10만 명도 안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건설 책임자는 향후 백 년 후에
서울 인구가 백 만 명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크고 견고하게 짓는 거라고 설득해서 겨우 결재를 받았답니다.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는 명분에 관리들이 손을 든 거죠.

1925년 8월 29일에 한용운님이 ‘님의 침묵’을 탈고 했고
그 해 9월에 서울역사를 준공했는데 그것이 그 당시 동양에서는
일본의 도쿄역 다음으로 제2의 역사였답니다.

통계청의 조사자료를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1949년의 서울시 인구가 불과 14만 여명이고
우리나라 전체 인구도 2천만에 불과 했답니다.
그런데 그 후 1966년 자료를 보면
서울시 인구는 백만을 넘어 3백 8십만이 되었고
이미 서울역사도 비좁아 남부역사와 서부역사가 들어 섰고
1968년에는 수색에 차량기지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답니다.

백년대계가 불과 40년 대계도 되지 못했으니 그 시절의 작은 생각으로
결재에 난색을 표했던 관리들의 좁은 소견이 가소롭기까지 합니다. ***

또 한가지 이야기

***제3한강교는 한남대교의 옛날 이름이지요.
제2한강교에 이어서 한강에 놓여진 서울의 4번째 다리인 한남 대교.

현대건설의 시공으로 1969년 12월에 준공 되었는데
너비 27미터에 보도만도 3미터의 6차선 도로였습니다.

그 한남대교를 건설하고 나서 너무나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며
불필요한 왕복 6차선 다리 건설을 감사원에서 감사한 끝에
결국 담당 공무원 두 분은 예산 낭비 책임으로 중징계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몇 십 년도 안 된 2004년 8월에 12차선으로 증축되고
이제는 서울에 있는 한강다리만도 20개를 넘어선 숫자가 되었습니다.
머리 나쁜 상부 관리들 덕택에 공무원 두 분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일제시대에도, 근세에도 제3한강교 책임 공무원 같은 분들이
근대나 이 시대의 ‘이회’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하긴 고래(古來)로 고급간부가 될수록 임기 동안 모험을 꺼린답니다.
가만히 있어도 편하고 안전하게 임기 동안 근무를 영위할 수 있는데
잘못 실패하면 징계를 당할 모험적 사업을 즐겨 추진할 리 없겠지요.

그들 고위간부들도 당연히 원시안적 안목을 갖추고 있겠지만
실무진의 모험적 사업을 결재했다 실패하면
결재권자인 자신도 책임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고
때론 결재한 사업이 시행착오를 겪는다 싶으면 일찌감치 일선 책임자에게
그 과를 떠 넘기기 급급하니 그들의 무사안일에 의하여
결국 선량들이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나도 살그머니 사당에 고개 숙여 억울한 이들에게 참배한 뒤
아쉬운 그 시대의 인재를 뒤로하고 남문을 지나
성남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산길이 오늘 날씨의 아지랑이처럼
푸르게 휘어서 오르는 남문 어귀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늘 열리는 모란 오일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는 성남 시내를 이리 저리 꼬불꼬불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지그재그 돌고 돌아서 한 시간 만에 장터 근처에 우릴 토해 놓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오일장인 성남 모란장은 4일과 9일에 서는데
일요일에 장날 날짜가 맞아 떨어지고 봄볕도 따스해서 그런지
오늘은 장사하는 사람도 구경꾼도 무척 많습니다.

사람구경, 장구경으로 이 구석 저 구석 쓸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시장 중심보다는 언저리 뒷골목을 구경하는 걸 더 즐깁니다.

그런 곳엔 의례히 시골 할머니들이
텃밭이나 야산에서 뜯어온 나물들을 한움큼씩 펼쳐 놓고 팔고 있기에
그런 것을 찾아서 사는 건 시장 구경의 또 다른 재미이지요.
마치 귀한 보물 찾기를 하듯이 말이죠.
할머니들의 후한 인심은 덤으로 따라오고요.

역시나 시장 끄트머리 후미진 골목 구석에서
어머님께 끓여드릴 된장 국거리로 부드러운 아욱을 사면서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예뻐서 아욱이 맛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떠니
아주머니께서는 뒤의 보따리에서 아욱 한움큼을 더 주시더군요.

오래간만에 찾아간 시장 가운데 먹거리 포장촌엔
수구래 고기, 허파볶음, 돼지껍질이 구수한 냄새를
나에게 푱푱 날리고, 쥔 아주머니는 오래간만임에도
우릴 알아보며 수구래 고기를 듬뿍 주시더군요.
시원한 동동주에 아내는 맛있는 칼국수에
아줌마의 넋두리에 참 정겨운 시장구경의 하루였습니다,

몇 가지 나물을 더 사고
토란 모종을 헐값으로 10여 그루 사서 들고 시장을 돌아보니
여긴 전국에서 알아주는 동물 시장 인지라
귀여운 강아지들, 병아리들, 고양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는데
옆에는 보신용 개, 토끼, 닭, 오리, 염소 등이
살아온 세월을 회고하듯 힘없이 두 눈을 끔벅이며
가까이 다가온 뜨거운 물세례 받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
대조가 되면서도 서글퍼집니다.

나도 이제껏 살아온 매너리즘에 빠져서
이미 끓는 물세례 받는 날이 내일인지 모레인지 모르고
그저 현실에서 히히덕 거리면서 자기 만족에 빠져 사는
가련한 짐승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저녁이 어스름 몰려옴에 발길을 전철역으로 돌리며 보니
역시나 재래시장에 꼭 보이는 분들......

재래시장에 이런 분 꼭 있다~~~.

1. 그릇 광택제 파는 아저씨
2. 뻥튀기 할아버지
3. 바퀴 벌레약, 쥐약 파시는 아줌마
4. 각설이 타령 부르며 엿 파는 거지분장 엿장수
5. 싸구려 장난감 장사
6. 수레에 엎드려 다니면서 수세미나 때밀이수건 파는 아저씨

상원절(上元節) 달맞이

법을 바꿔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