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10-05 00:44

ㆍIP:

인삼 김치
문이 벌컹 열리며 바깥의 어둠을 몰고
아내가 집안으로 들어 선다.
“이제 와?”
하며 반기는 내 시야로 오른손이 축 처지도록
더러는 하얗고 더러는 퍼런 무엇이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다.

“그게 뭐야?”
내 물음에 그녀는
“들어 오다 보니 싸서요.”
“한 단에 오천 원씩 하는데 싸게 삼천 원에 샀어요. 총각 무를…..”
말하며 배시시 웃는 그녀의 입가에
왠지 모를 2프로 모자란듯한 미소가 벙근다.

“그래? 하하하”
“맛있게 김치 담으려 고요. 호호호”
“하하하 알았어. 맛있게 담아 봐. 하하하”
우리는 총각 무 한 단을 두고 따로 말을 안 해도
교감으로 알 수 있는 몇 번의 웃음으로
이미 총각 김치 한 단을 다 담아 버렸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를 떠나
충청도의 한 도시에서 친척집에 기거하며 공부를 하느라
경험이 많지 않아 집안일을 썩 잘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가을이 끝날 무렵
우리나라 월동 준비 중에 하나였던 김장을 할 때면
항상 일손을 도울 뿐 진두 지휘자는 못 되었다.
그 해 김장을 하고 나면 먹고 남을 만큼의
맛깔 난 ‘시어머니표 김장김치’를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결혼 생활 이십 년이 지나도록 시어머니의 손 솜씨를 빌려
겨울 밥상을 채우고 여름이나 가을에도 때때로 챙겨 주시는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의 배려로 김치를 할 필요를 못 느꼈었다.
그저 필요하면 전화 한 통화로 집의 밥상을 채울 수 있었으니
굳이 자신 없는 김치 담기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햇김치를 담고는 했는데
그때는 김치 맛이 어땠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 가 문제가 되었다.
아마도 사,오 년은 된듯하다.
시어머니가 오래된 지병으로 자리에 눕고 나니
이제는 스스로 밥상의 풋것을 책임 져야만 했다.
멀리 계신 친정 어머니의 손을 시시때때로 빌리기는 무리인 것이고
그나마 김장철 때 조금 많이 해서 올려 보내 주시는 김장 김치나
전주 사는 언니가 해 올려 주는 김장 김치도 감지덕지 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해 인가 스스로 집안 밥상의 기본을 책임지고
김치 담그기에 도전을 하였다.
참 자랑스런 나의 아내…….
이제 스스로 팔 걷어 부치고 배추와 무를 다스려 나갔다.

첫해 김장은 나의 보조와 아내의 정성으로 마칠 수 있었다.
거실을 온통 다 벌려 놓은 풋것들과 양념들,
그리고 매콤한 마늘 냄새가 방벽을 스물스물 타고 올라 갔지만
아내가 미리 준비 해둔 생굴에 배추 속을 싸서
소주 한잔과 함께 입에 밀어 넣으니 피로가 싹 가시고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하하 호호’ 하였다.

스스로 월동을 해결한 성취감과 부부의 행복이 버무려 졌으니
이보다 더 맛있는 배추 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다음날부터 조금씩 밥상은 우리들의 기대를 벗어나갔다.
겉절이 김치부터 아침 밥상에 올려 졌는데
어째 김치 맛이
어머님께서 담아주시던 맛하고는 너무도 틀리다.
‘너무나’가 아니고 ‘천양지차’다.
맛은 차제하고 왠 김치가 쓰다.
다른 김치, 그러니까 그 해 담은 모든 김치가 다 쓰다.
그래도 정성 들여 담은 김치니 불만과 함께 입 속에서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며칠을 참고 먹다가
아들과 내가 눈을 맞추고 짐짓 태연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어째 김치가 이렇게 쓰냐?”
하니 아내도
“그러게 말 예요?”
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나만 쓰냐?’
‘너도 쓰고 아들도 쓰고.’
하지만 이미 겨울을 날 만큼 김장을 했으니 도리가 없다.

물에 빨아서 먹어도 보고 김치 찌게도 해 보고(김치 찌게도
주 재료인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겨우내 쓴 김치하고 끼니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나도 도와서 한 공동 김장작업이니 달리 하소연 하기도 그렇고.
드디어 겨울은 가고 봄이 오면서
먹다 남은 김치는 과감히 처분을 하고
봄동이니 하우스 재배 배추니 사다가 아내는 김치를 담갔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재료가 달라도 우리 식구에겐
마냥 쓴 김치만 밥상에 배달이 되었다.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다.
아내는 항상 ‘인삼 김치’를 담는 다는 것을……
배추김치도 인삼 배추김치, 무 김치도 인삼 무김치,
총각김치도 인삼 총각김치.
그제서야 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은 재주도 참 좋소”
“왜요?”
아내가 무슨 얘기인지 갸웃하며 반문한다.
나는 아내가 어색하지 않도록 걸쭉하게 웃음부터 보내고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아니 어떻게 된 게 어떤 재료를 갖다 김치를 담가도 인삼 김치로 담아?”
“우리식구 항상 인삼김치 먹어서 건강은 틀림없겠구려. 하하하”
“그런가요? 호호호호”

그 이후로 우리가족은 중대한 결정을 했다.
앞으로 김치는 사서 먹기로……

생각해 보라
남은 평생 쓴 인삼김치를 먹고 살고 싶겠는가?
아내도 역시 인삼 김치는 먹고 싶지 않았을 터이니
우리는 쉽게 만장 일치로 결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가끔 그녀의 친정에서 올라오는 김치 외에는
가까운 재래 시장에서 사 먹는다.(김치장수 아주머니들은
아내를 무척 좋아한다.)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주부들은(중년 이하)
그렇게 김치를 맛있게 담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 공부와 직장 생활로 예전에 전업으로 살림만 하던
우리들의 어머니나 누님 같은 실력을 기대한다면
너무도 큰 오산이다.
또한 시대도 바뀌고 있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들보다 사회에 진출하여
전문가로 이 사회의 한 부분을 책임지기도 한다.

그것이 법조계에 있던 교육계에 있던 예술계에 있던
아니면 서비스업이나 산업 전선에 있던
사회 생활하는 여성이 전업 주부보다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그들에게 사회 생활 열심히 하면서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제는 남자들도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야 하는
요구를 가족들에게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사회 전반에 전문가가 있다.
상류적인 전문가를 차제 하고라도 유아를 가르치는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요리 전문가, 패션 전문가 등등…….
효도의 상징으로 여기던 노모의 병 수발도
보다 전문적으로 병 수발하는 간병인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으로 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는 효도도 돈으로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그깟 김치도 김치를 연구 하고
보다 더 맛있게 담그는 김치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사 먹으면 그만이다.
못하는 아내에게 굳이 김치의 맛을 종용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구태를 버리고
생활도 긍정적으로 진화해 나가야 될 것이다.
우리는 김치 담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삶을 보다 더 윤택하게 즐기면 그만일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 났다.
저렇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거실 가득 벌려 놓고
풀을 쑨다, 마늘 파 다듬는다 아내는 분주한데
과연 내일 아침에
나와 아들이 잊고 있던 그 인삼김치를 또 먹어야 하지는 않을까?

아~ 참 싫다.
인삼김치!!!! 하하하

2007년 10월 4일 밤 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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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인삼 김치를 질리도록 드셨겠군요.
ㅎㅎㅎㅎㅎㅎㅎ

김치마다 인삼이 다 들어갔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다음번에 김치를 담글 때에는
인삼만 빼고 담으시면 될 것 도 같은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hirashi2000@yahoo.co.kr) -[10/07-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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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ㅎㅎㅎ 인삼김치 건강에 좋으라고 끊임없이 담그시는데 뭘 그리.......
원래 약은 쓰다고들 하던데 자네의 웰빙 식탁은 씁쓰름 했는가봐......
좋은 의미의 글 잘 보고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게나............ -[10/07-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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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화 : 인삼김치 번마다 인삼김치를 담그기 쉽지않을텐데 ㅎㅎㅎㅎㅎㅎ재주도 좋으시네요 (mwkim_625@hanmali.net) -[10/12-22:40]-

안경

북성 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