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4-06 20:33

ㆍIP:

최씨 고집
“최씨 입니까?”
“최씨에 곱슬머리 그리고 옹니면
고집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진짜 그래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내가 최씨 성이 적힌 내 명함을 건네 주면
첫 대화에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거나 어색함을 풀기 위해
흔히 회자되는 고집 이야기를 내게 물어 보기 일쑤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만화나 소설등에 등장하는 악역은
최가가 대충 많은 것 같아 내가 최가가 아니고
채씨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 봤었다.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중에 하나인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 같은 지도자적이고 선한 채씨로 말이다.

한편으론
‘왜 작가들은 지독하고 못된 역할로
최씨란 성을 주로 내세우는가?’하고 불만이었다.

우리나라의 258개 성씨 중에 대표 6성은
김, 이, 박, 최, 윤, 정씨 이다.

김, 이, 박씨의 설화는 내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한국의 대표 성씨인 것은 확실한 것이고
최씨는 어느 고을 황금돼지에 의해 최치원이 태어났다는
믿지 못할 옛날 전설에 근거해 돼지씨라고 이야기하고,
정씨는 당나귀 씨라고 하며, 윤씨는 잉어 씨라고 하여
잉어 고기도 안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돼지씨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삼겹살을 즐겨 먹는다.
아무려면 여자가 돼지하고 관계하여 사람을 낳았을라고…….

사실 최치원 이전에 최씨 성을 얻은 내력을
전주 최씨 구수세보(九修世譜)에서 찾아 보니

**단군 조선의 흩어진 백성들이 동해가에 모여 6촌으로 나뉘어 살았었는데
어느 날 6촌의 장이 알천(閼川) 언덕에서 모여 놀다가
고허촌(高墟村)의 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 나정(蘿井) 숲속에서
이상한 기운을 찾아가 큰 알을 발견하였고, 알을 깨어 어린아이를 얻었으며
이 어린아이가 훗날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이고
이후 6촌장에게 성을 하사하니 ‘이, 최, 손, 정, 계, 배’ 라고도 하고
혹자는 ‘이, 김, 최, 안, 정, 박’ 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 최씨는 그것을 정설로 믿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 최씨 하면 대표적으로
경주, 해주, 전주를 본으로 하는 최씨가 대표적인데
그 중에 나는 전주 최가로서 몇 년 전 방영했던
사극 ‘태조 왕건’ 에 나오는 백제 견훤의 책사 최승우와
경주 최씨의 시조 최치원과 더불어 그 당시 당나라 유학파
천재 3최씨로 일컬어 지던 최언위의 후손이다.

그러나 어느 파를 막론하고 최씨가 고집이 세다는 설의 근원은
고려 말의 충신이고 무신인 최영 장군에서 유래 했다는 이야기는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 고집의 설이나 작품속 악역으로의 등장이
최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주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왕이면 최씨를 호감적으로 보지 않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아내도 결혼 전엔 적어도 최씨와는 결혼 말아야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고 하는데, 내가 고집이 세지 않은 건지
아내가 내 고집을 인내로 버텨 왔는지 벌써 살 맞대고 산지
사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 화가 나면 대화를 끊고 몇 날 몇 일을 간다.
아내가 말을 붙여도 최소한의 말만하고 자리를 피한다.

사실 화가 나 있을 때 서로 말꼬리를 잡고 논쟁을 하면
장작불에 휘발유 끼어 얹은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를까봐 피하는 것인데 속도 모르고
그럴 때 마다 아내는 무척 힘들어 한다.

달리 고집이랄 것도 없겠지만
술이 한잔 취하면 간혹 객기를 부리기도 했었는데
한번은 손님 접대로 자정이 지나서야 집으로 귀가하게 되었었다.

그 당시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안양의 평촌 단지였는데
술을 마신 곳은 서울 영등포역 앞의 술집 골목이었다.

이미 전철이나 버스는 운행시간이 지났고
그렇다고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는 야간 할증이 붙는데다
더군다나 시외 지역이라 왕복 요금을 지불해야 해서
영등포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시흥 사거리까지 가서
그곳에서 안양이나 수원으로 가는 합승 택시(일본어 용어로
‘나라시 택시’라고 하였었음)를 타고 가려고 하였다.

영등포역 앞에는 많은 빈 택시가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 아무 택시나 타려고 하면
한결같이 내 목적지인 시흥은 못 가겠단다.

차 앞의 번호판을 확인하니 서울 택시가 틀림 없는데
굳이 부천이나 인천을 간다며 승차를 거부 하는 것이었다.
그 택시들도 그 쪽 방면의 합승택시 인듯하였다.

그 당시 그 시간대에는 빈 택시를 만나기도 어렵고
시간은 자꾸 흘러 가니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무조건 줄지어 선 맨 앞의 택시 뒷좌석에 타면서
“기사 아저씨 시흥 사거리 갑시다.” 하였더니
역시나 기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아저씨 다른 차 타세요. 이차는 거기 안 갑니다.” 하는 것이다.
“아니 서울차가 서울을 안 가면 어디를 갑니까?” 했더니
이 시간에는 돈이 되는 부천이나 인천을 간다는 것이다.

나는 잔뜩 화가가 난 얼굴로
“아저씨! 물론 아저씨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건 아는데
나라에서 이 택시 영업을 허가해준 첫째 목적은
시민의 대중 교통을 위한 거지 절대로 아저씨들 먹고 사는 게
첫째 목적이 될 수 없어요.” 하며 따졌더니
그 기사양반 벌컥 화를 내면서
“아니 이 양반이 술이 한잔 돼 가지고 괜히 생 때를 쓰시네?
아저씨 맘대로 해요. 나는 시흥 못 가니……” 하면서
차의 시동을 끄고 내리는 것이다.

나도 질세라
“그래요? 그럼 잘 됐네! 나도 내일 급한 일도 없으니 그렇게 합시다!”
하고 아예 작정을 하고 뒷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때 계절은 여름이고 에어컨도 꺼놔서 후덥지근 했었는데
‘누가 이기나 보자 나도 한 고집하는 최가 이니라’ 하고 버텼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나도 내가 꿈적 안하고 누워 있었더니
이 기사 양반 도저히 안 되겠는지 슬며시 와서 시동을 켜고
투덜거리며 시흥을 향해 택시를 몰고 가는데
역시 못마땅하니 급정거를 하기도 하고 급 출발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 기사양반 뒤 꼭지에다 대고 비릿한 술냄새 듬뿍 실어서
한마디 힘차게 내 꽂았다.

“어~어! 이제는 난폭운전으로 손님에게 복수하려 합니까?”
“그럼 좋습니다.”
“원래 내가 시흥 사거리까지 가려 했는데 이 차가 서울 택시이니
서울과 안양의 경계까지 갑시다.”
“내가 알기로 석수역 앞의 돌 해태상이 시 경계이니
그 선상에 앞바퀴 정확히 붙이세요.”
“제 요구가 잘못된 것이라면 요 앞 영등포 경찰서로 가서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지 따져 보던지
아니면 정확히 앞바퀴를 해태상 앞에 붙이세요.” 했더니
그 아저씨 더 이상 난폭운전이나 투덜거림 없이
킁킁대며 마지못해 순순히 운전을 하였다.

뒷자리에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는 나는 한편으론 고소하고
한편으론 너무 한 건 아닌가 생각을 하다 보니
택시는 정말로 돌해태 석상 앞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내리고 택시는 서울로 돌아 가야 하는데 나는 안다.
여기서 차를 돌리려면
몇 백 미터 저 앞쪽 삼거리까지 가서 유턴해야 하고
더군다나 시흥 사거리 가기 전에는 택시를 타려는 손님도 없다는 것을.

흥!
그 아저씨 손님 골라서 태우고 돈 되는 코스 운행 하려다
내 최씨 고집에 10분간 대기했고 시흥 사거리 까지는
이 황금 시간에 빈 차로 돌아 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도 손해를 나누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당최 그 해태 석상 앞에서는 안양행 빈 택시를 만나지를 못했다.
모든 택시들이 4명씩 꼭 채워서 옆도 안보고 쌩쌩 달려서
안양쪽으로 내달리거나 시흥쪽으로 내빼 버리니
20여분을 빈 택시를 기다리다 별수 없이 오던 길을 되 돌아 걸어서
어디쯤까지 헤맨 끝에 빈 택시를 잡아 타고
시흥 사거리까지 돌아 가서야 다시 합승 택시를 타고
고생 고생 끝에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놈의 쓸데 없는 고집 때문에…….

최씨 고집도 고집이지만 강씨 고집도 만만치가 않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두엇 중학교 친구 가운데 한 녀석인
3학년 때 나의 짝궁이 강씨였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다가 사소한 걸로 다투면 서로 지기를 싫어했는데
한날은 자기의 책상 영역으로 나의 교과서가 넘어 왔다고
이 녀석이 내 교과서에 볼펜으로 지~익 긋는 것이었다.
나도 화가 나서 그 녀석의 교과서에 한 줄 이쁘게 그려 놓았다.

이번엔 그 녀석이 내 책의 한 페이지를 콱 꾸겨놓는다.
나도 질세라 녀석의 책 두어 페이지를 콱콱 꾸겨버렸다.

그랬더니 이 녀석 내 책의 한 페이지를 쭈~욱 찢어버린다.
나도 그 녀석의 책을 두어 페이지 쫙쫙 찢어버렸다.

이 녀석 화가 나서 내 교과서 한 권을 통째로 빡빡 찢어놓는다.
나도 화가 나서 그 녀석의 교과서를 빡빡 찢어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 어떻게 둘이 화해를 하였는지 모르지만
그 다음날부터 그 결과에 의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자주 교과서 검사를 했었는데
교과서를 가져 오지 않은 학생은 벌을 서거나
정신봉으로 손바닥을 맞아야만 했다.

그래서 찢겨 없어진 과목 시간만 되면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옆 반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빌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후회하고 땅을 칠 노릇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소위 미션 스쿨로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성경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찢어 버린 짝궁의 교과서는 성경 교과서로
일주일에 한번만 책을 빌리면 되었고,
그에 반해 그 녀석이 찢은 내 교과서는 수학책으로
일주일에 5번의 시간이 편성 되어있어서 거의 매일
옆 반을 기웃거리며 친구들에게 수학 교과서를 빌려야만 했다.

똑같이 책을 한 권씩 찢었는데
나는 녀석보다 5배의 고난을 감수 해야만 했었고
그 덕분인지 수학 성적은 타 과목에 비해
낮은 숫자를 성적표에 적어야만 하였었다.

그래서
그 후 강씨라면 나보다 한 수위의 고집쟁이로 알고
인정하며 살고있다.
그 밖에도 고씨나 안씨도 알아줘야 할 고집통들이라 한다.

물론 다른 성씨라고 고집이 없는 건 아닐 테고
또한 최씨 등의 성씨들이 모두 고집쟁이인 건 아닐 테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고들 한다.

그렇더라도 가진 게 쥐뿔도 없는 내가 그나마 고집이라도 없으면
어찌 내가 남자라고 할 수 있으랴.

다만 쓸데 없는 고집으로 택시 기사나 내가,
중학교 때 강씨 성을 가진 내 짝궁이나 내가 손해를 봤던 것처럼
우매하고 불필요한 고집은 부리지 말아야 하겠다.

2008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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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守/정용하: 최 작가님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역시 명불허전은 아닌듯 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빠진것이 있는 듯합니다.
최씨,강씨 분들이 고집있다는 것은 이미 통설이지만
황씨분들도 만만찮은 듯합니다. 앞에 성씨들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우리 정가들도 조금있는걸로
사람들이 대화 끝부분에 마무리 발언에 양념으로
들어 가더라구요. 앞에 거론된 성씨쓰는 분에게
죄송합니다. 비난의사 없이 그저 가볍게 해본 말씀
이니 이해하여 주시기바랍니다. 유익한 글밭에
즐겁게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04/0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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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안녕하세요. 최평균 작가님! *^.^*
잘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유독 최씨 성을 가진 분들만 고집이 센 것만은 아니더군요.
제가 알고있는 성시만해도 강씨 성도 만만치가 않아서
두손 두발을 다 들었어요.
ㅎㅎㅎ

근데, 성씨에 얽힌 얘기(설화)를 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윤씨가 잉어 씨라고 해서 잉어를 안먹는 다는 것은
저도 주위(윤씨 성을 가진 분들)에서 많이 보아온 터라 잘 알고 있고요,
한 때는 성씨에 대한 뿌리와 그에 얽힌 설화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인터넷을 뒤지곤 했었답니다.
ㅎㅎㅎㅎㅎ

저는 임경업 장군의 26대손으로써
원래의 뿌리는 중국에서 건너온 중국 왕족이 귀화를 해서
지금껏 정착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좀 더 뿌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기회가 되면 중국에도 가서 공부를 좀 더 할려고요.

'고집'이라고 하면 강씨 고집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만만치 않은 최씨 고집을 보면서 한참을 웃다가 갑니다.
(hirashi2000@yahoo.co.kr) -[04/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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