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3-12 22:01

ㆍIP:

타고난 사주팔자?
내가 사는 곳이 관악산과 가까운 곳이라
즐겨 관악산을 오르는데 서울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화산(火山: 풍수적으로 불의 산)인 관악산의
오르고 내려오는 꽤 많은 등산로 코스중에
오늘은 시흥의 옛 장택상 별장 터 쪽으로 오르기로 했다.

장택상은 8.15 광복과 함께 수도경찰청장을 지냈고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외무부장관을 지내신 분인데
나도 말로만 들었지 그 별장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그저 커다란 은행나무가 도로변에
부적절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어디라고만 들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그 은행나무가 있는 근처의 버스 종점에서 내려
아파트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관악산의 자락을 밟고 오른다.
금천구에서 잘 정리하고 관리하는 산책로를 지나 산의 발등 격인
등산로 입구 약수터를 비켜 세우고 무딘 발걸음을 옮겼다.

이 코스는 입구에서 주민의 쉼터 겸 산책로를 지나
가파른 자연석 계단을 한 20여분만 참고 걸어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고, 능선부터는 비교적 수월하게
왼쪽으로는 삼막사나 서울대 입구 쪽으로 걸어 내려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는 불영사, 석구상을 지나 서울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석수 전철역 앞의 해태석상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코스인데
오늘은 평일이고 혼자 하는 산행이라 여유도 있고 해서
처음 가보는 석수동 코스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아직 꼬물거리는 봄것들을 만날 수 없으나
계절은 경칩을 5일여 지났고 푸른 아지랑이 피어 오르니
날씨는 이미 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듯하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고 봄 등산복 차림인데도
산 허리에 닺기도 전에 땀이 잔등을 타고 흐른다.

불과 십여일 전에는 중무장하고
아내와 강원도 평창의 계방산에 산행을 갔다가
눈보라를 귓볼에 맞으며 눈길 산길을 4시간여 헤집다 왔었는데
계절의 조화는 어김없이 봄 기운을 코앞에 가져다 놓고 있다.

능선에 올라 불영사 쪽으로 가다가 빌딩만한 바위가 뒷짐지고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늘에 배낭을 풀고
가져간 막걸리를 한 사발 그득 딸았다.
시원한 암벽 그늘 아래 신발 벗고 앉으니 신선계에 있는 듯 하다.

초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쭈~욱 들이키고
바위가 눈길 주고 있는 산아래 시흥의 아파트 단지며
학교, 그리고 소음이 차도에 가득 들어 찬
사람 사는 동네를 내려다 본다.

저 많은 사람들은 제 각각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거나 나태하거나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잠시 아침의 뉴스가 떠 오른다.
한때 잘 나가던 프로야구 스타의 씁쓸한 마무리 행보…….

참으로 아쉬운 일이고 의혹이 쓰나미처럼 겹쳐서 밀려 온다.
그는 왜 그렇게 상극과 하극을 왕복하다
타락과 범죄의 나락으로 스스로 빠져 들었는가?

고인들에게 애도의 잔이라 생각하고
막걸리 한잔 부어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무엇이 그를 흉악한 강도로 내 몰았는가?
왜 세상은 그에게 화려한 네온사인 같은 하늘을 보여 줬다가
신기루인양 거두고 깜깜한 나락의 끝을 보여 줬는가?

그는 이 나라 스포츠계에 이름을 뽐내다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암울한 형편에서 돈을 쫓아 흉악한 일을 저지르고
마침내 차가운 한강물에 믿기 싫은 신용불량자 신세와
후회스런 악마의 혈흔을 깨끗이 씻으려 했는가 보다.

그것이 그가 타고난 팔자였는가 보다.

동양에는 사람의 길흉 화복의 시점이나
운세를 점치는 방법으로 사주(四柱)라는 게 있다.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합하여 사주라고 한다.
그 네 가지 간지가 두 글자씩 총 8글자라 하여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하며,
‘사주팔자는 날 때부터 타고 난다’라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갑자년 무진월 임신일 갑인시에 태어난……’

지금은 작고한 조선일보의 저명한 논설 위원인
이규태씨의 20여 년 전 글이 생각난다.
그는 과거 23년간 ‘이규태 코너’라는 소제로 칼럼을 연재 했는데
내가 젊은 시절 읽고 가슴에 새겼던 글 중에 하나가
‘사주팔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글에 의하면
-사주는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조합한 것인데(음력)
총 경우의 수, 그러니까 서로 다른 사주의 형태는
모두 50만 8천 4백 수라고 한다.
조선의 영조 대왕은 사주에 흥미를 가지고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갖고 태어난 여인을 어렵게 찾아
살아온 과거를 자신과 비교해 보니 영조가 세자에 책봉될 때
여인은 부모님이 돌아 가셨고, 영조가 등극할 때
여인은 사별하였으며 지금도 혼자서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었다.
같은 사주 이면서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 불행했던 여인을 보고
영조는 ‘사주는 깊이 믿을게 아니로다’ 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의 이 시대로 친다면
동양의 저 거대한 대륙의 십 몇 억의 인구를 접어두고
남북한의 인구만 따져도 족히 7천만이 넘으니
그 인구를 사주의 총 수인 50만 8천 4백으로 나누면
이 좁은 한반도 안에서도 같은 동일 사주팔자를 타고 나는 사람이
대략 140명쯤 될 것이고, 그들이 똑같이 입신을 하거나
영욕을 격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럴 수가 없을 뿐더러 그렇지도 않다.

사주팔자는
그저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게 저렇게
운과 길흉을 격을 것 이라는 막연한 통계인 것이다.

운동 선수가 흉 폭한 강도가 된 것도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그런 팔자를 타고났기 때문인 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 수는 250만을 넘는다고 하니
주위의 약 20명중에 한 명은 신용 불량자인 셈이다.
공무원 수는 93만 여명이니 50명중 한 명은 공무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250만여 명이 신용불량자의 사주를
93만여 명이 관운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겠는가?
그리고 비명에 생을 마감한 네 모녀의 사주는?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신용불량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지만,
사업 실패, 빚 보증, 법의 잘못된 집행에 의해서
억울하게 가시관을 써야만 했던 사람도 있고
실수나 무지로 소소한 핸드폰 요금 등을 장기간 연체하여
신용 불량의 대열에 합류한 국민들도 많이 있다.

‘신용(信用)’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 또는 믿음성의 정도’

그 두 번째는
‘거래한 재화의 대가를 앞으로 치를 수 있음을 보이는 능력.
외상값, 빚 따위를 감당할 수 있는 지급능력으로 소유재산의 화폐적 기능’
이라고 기술 하고 있다.

지금 250만이 넘는 많은 이 나라 신용불량자들은
그 신용의 두 번째가 결핍한 자들 이지만,
현재 이 나라의 손 꼽히는 모 재벌 총수 일가는
수혜자에게 줘야 될 보험금을 슬쩍 챙겨 비자금으로 치부하거나
대 다수의 국민과 주주들이 납득할 수 없는 비 양심적 방법으로
개인의 향락과 부를 축적하고 부자간에 재화를 주고 받았으니
신용불량의 첫 번째인 ‘국민의 믿음성’을 상실한 것이며
따로 등재 되지 않은 이 나라 최고의 악덕 신용불량자인 것이다.

사실 사업의 실패나 아둔한 생각
또는 무지로 신용불량자의 누를 쓴 250만 여명 보다
알면서도 법의 망을 피해 요리조리 치부하여
신용의 첫 번째인 국민의 신용을 폐기 처분한 일부 재벌 총수들이나
정치인들 중에서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런 저런 핑계로
지키지 않는 검은 고양이 같은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신용불량자’ 인 것이다.

이제 그 불한당 같은 원천적 신용 불량자들 사이에서
정부와 금융권에 의해 이 나라 5%에게 함부로 계급 지어진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이 숨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미리 개개인의 삶을 정확히 점 칠 수는 없다.
단지 추측할 따름이다.

설사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험하고 나쁜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노력이나 또 다른 인연으로 호전적으로도 변하여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은 사주를 갖고 태어났더라도 나태하거나 악연을 만나
흉악한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은 항상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한다.
지금 당장 거대한 시련(신용불량등)이 닥쳐 있더라도 자괴감에 빠져
위험한 생각으로 죽어서도 씻지 못할 범죄를 계획하지 말고
하늘이 시련을 거둬갈 때까지 스스로 노력하고 기다리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며 살아야 하겠다.

희망과 행복은 사실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고 아주 가까이,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산 허리를 휘감아 불어 오는 시원한 봄바람이
나의 땀과 깊은 상념을 거둬가며 산행을 재촉한다.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죽여야만 했던 불혹의 한 사내와
행복을 꿈꾸다 비명 횡사한 네 모녀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올렸던
막걸리를 마저 마시고 배낭을 챙겨 산을 내려 간다.
혼백이나마 편안히 정령계에 머물기를 바라며…….

‘저 밑에 다닥다닥 붙어서 사는 사람들 100명중에
두 명은 공무원이고 다른 다섯 명은 신용불량자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이제 그곳으로 내려 가야만 한다.’

2008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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