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11-12 15:58

ㆍIP:

어떤 삶
“A씨 아줌마가 돌아 가셨다는구나.”
“예에? 언제요?”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단다.”
“그럼 아버지께서는 다녀오셨어요?”
“아니! 알아도 멀어서 못 가 볼 텐데
그나마 늦게사 동네 아줌마에게서 들었다.”
“멀다니요? 이 동네에 사시지 않으셨어요?”
“여기 사셨었는데 돌아가신 요양병원은 안양이라더라.”
“왜 가까운 병원 두고 멀리 안양에 모셨었대요?”
“병원비 싼 곳을 찾다 보니 안양까지 갔다더구나.”
“그래요? 저런 쯧쯧쯧”

아버지께서 어머님의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굳이 나에게 미리 준비해둔 강원도 강촌부근에 있는
두 분의 유택을 다녀 오자 하셔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산자락을 둘러보고 내쳐 돌아 와서
어머님이 누워 계시는 동네 요양병원의 중환자실을 들어 서니
시계는 작은 바늘이 12시를 가리키며 어정쩡 서있는 곁을
큰 바늘이 성큼성큼 지나고 있었다.
들려 보아야 어머니께서는 항상 둘 중에 한 모습을 하고 계신다.
한없이 주무시거나 힘없는 눈으로 방문객을 빤히 바라 보실 뿐.
뇌 수술을 하시고 이 요양병원으로 옮기신지 이제 4달이 지나 가지만
말도 못하고 항상 그 모습으로 이승을 떠날 채비를 하시는데,
그런 엄마의 눈을 쳐다 보시며 아버지께서 전후 설명 없이
남일 같지 않게 한숨처럼 내 뱉으시는 그 아줌마의 임종 이야기에
무슨 이야기 인지 얼핏 짐작을 하고 대뜸 몇 마디 여쭤본 것이다.

내 어리고 가난한 서울 이주 시절에
A씨 아줌마도 여러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서울로 이주해 와서 어려운 살림을 하고 계셨었다.
내 어머니는 그나마 남편인 아버지가 계셨지만
아주머니는 남편도 일찍 사별하고 3남 2녀를 기르시느라
일찌감치 과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다니셨다.
우리집도 가난과 자식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머니가
아주머니를 따라 행상을 나가셨는데 처음엔 금방 포기할 거라고
어머니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셨으나 몇 일 안 가서
두 분이 절친한 친구가 되고 서로 의지하며
그 시절부터 이제껏 살아오셨다.

그 아주머니 집의 가족은 사는 게 조금 독특했었다.
그 집 큰형님은 나보다 열살 이상 위인데 그 시절 양을 두 마리 키워
양젖을 팔아 만든 돈으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아무리 집에 때 거리가 어려워도 못 본체 외면하고
양을 키워서 번 돈을 생활에 보태지는 않는 것 같았다.
사십이 다 되도록 공부만 전념 했는데
그건 작은 형님도 마찬가지이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행상으로 번 돈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하셨지
자식들의 금전적 도움은 전혀 못 받는 것 같았다.
어쨌건 큰 형님은 그렇게 공부를 하여 지금도 인정해 주는 대학의
한의예과를 졸업 하시고 돈이 없어서 일 테지만 그 대학에서
더 오래도록 공부 하시어 결국엔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독히 공부만 하시던 그 형님은
결혼도 마흔 살쯤에 하셨는데 형수님은 맹아학교 교사였다.
어린 시절의 궁핍이 너무도 한이 됐는지 부부는 열심히 돈을 모았고
재산을 불릴 뿐 조금도 헛되게 쓸 줄을 몰랐다.
두 분이 열심히 일을 하고 지독하게 돈을 모으니 얼마 안 가서
어릴 때 살던 영등포에 아주머니 명의로 6층 건물을 마련하고
큰형님 부부는 강남에 단독 주택을 마련하게 되었다.
직장도 출신 대학의 전공한 분야의 교수가 되셨으니
나름대로 큰 성공을 하신 것이다.
그렇게 재산이 많아도 매년 김장을 할 때면 아주머니가
2,3킬로 떨어진 야채 시장을 새벽에 걸어 가셔서 팔지 못해
버리는 찌꺼기 야채나 배추 껍질 정도를 주워서 모아 놓으면
큰형님이 승용차를 몰고 가서 날라오고 그걸로 김장을 하였으며
절대로 야채를 돈 주고 사는 법이 없었다.
야채시장에는 내 어머니를 부추겨 아버지와 같이 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담근 김치는 큰형님을 비롯해서 자식들과 골고루 나눠 먹었다.
다른 반찬들도 교회나 이웃에서 얻어 먹는걸 생활화하고
교수인 큰 형님과 대학을 졸업하고 모 재벌회사의 이사인
작은 형님도 그걸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아무튼 작은 돈이라도 절대 안 쓰는 독한 생활이라
집안에 가구도 변변한 게 없을 정도였다.
내 부모는 그런 아주머니 아들들이 부러우셨는지
종종 형님들 이야기와 내 동갑인 셋째 아들의 사업이야기를 하시곤 했었다.
물론 두 딸도 다들 괜찮게 살고 있다고 어머니를 통해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 형님들의 성취가 부러운 건 있었지만
그렇게 홀어머니의 고생스럽고 힘든 살림을 외면하고
공부에 전념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갔었다.

벌써 사십 년이 넘게 그 집하고 우리 집은 무척 가깝게 지냈는데
아마도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그런 사이였을 거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없었기에 장정의 힘이 필요한 집수리 등은
내 아버지가 도맡아 하시고, 큰 형님도 그게 고마워
한의학을 공부 하시면서 우리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침통을 들고 한밤중에도 오셔서 침을 놔 주시고
우황청심환은 항상 우리 집 상비약으로 떨어질 날이 없었다.
지금은 학교를 정년 퇴임 하시고
서울의 모 한의원의 원장으로 계시는 큰형님은 전문서적도 많이 썼고
그쪽 계통에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사이시며
그 형님의 제자들도 한의학계에 두루두루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키운 아들딸이 다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혼자 사시며 당뇨로 고생하시다 드디어 세월을 못 견디시고
요양병원에 바짝 마른 아주머니의 육신을 의탁 시키면서
돈을 아끼려 안양의 어느 변두리 병원을 찾아 입원을 시키셨나 보다.
물론 그것이 큰형님의 어느 제자의 병원인지
아니면 아주머니의 원에 의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아버지 그 안양의 병원은 한달 치료비가 얼마래요?”
“한 달에 6십 만원 정도 된다더라.”
“이 병원도 한 달에 백 만원 정도 나오는데 그걸 아끼려고 그랬대요?”
“그렇단다.”
“에이! 아무러면…… 그럼 자식들이 아주머니 보려고
병원 가는 경비를 생각하면 결코 싼 게 아닐 텐데요?”
“그러니까 돈 든다고 잘 안가 봤다나?”
“어허 참……”

씁쓸한 바람이 내 허파에서 기도를 타고 올라 오는 것 같았다.
내 형제들은 어머니를 전문 간병인의 손길이 필요해
집 가까운 요양 병원에 모시고 아버지를 비롯해 형제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가 틈틈이 찾아 뵙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한달 4십 만원을 아끼려고……
그것도 불과 몇 달 못 사실 것을……
이미 알아주는 부자가 됐는데……
큰형님 아들은 더 많은 공부를 위해서 해외에 유학 중이고……
그렇게 부모에 대하여서도 검소하게 모셔야 하는 건지……
너무 지나치게 검소한 건 아닌지……
또한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삶인지……

사실 내가 커서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부모님의 말씀만 듣고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을 뿐이라
나름대로 아주머니네 삶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나나 아버지가 그 사정을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더 높은 뜻이 있는지 모르겠고,
나 역시도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하고 두분 부모가 연로하셨고
더군다나 어머님은 중환자 병실에 누워
숨만 쉬시고 눈만 감았다 떴다 하실 뿐이니 달리 할말은 없으나
아버지가 어렸을 때 큰 할아버지에게 들으신걸
나 어릴 때 종종 전해 들려 주시던 옛이야기 중에서
어느 청백리 정승이 임종을 앞두고 자기 아내에게 했다는 말이
떠 올라 내 머리주위에서 빙빙 맴도는 날이었다.

**봉이라는 새는 ‘낮거미줄’을 먹고 산다는데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랴? **

2007년 11월 11일

신 영: 고맙습니다, 최평균 작가님! 귀한 글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으시는 어머님(부모님)과 그 수고를 알면서도 외면하며 또 살아가는 자식을 보며 저 자신도 많이 부끄러운 마음을 갖습니다. 지금은 모두 친정 부모님들께서는 아니 계시지만 시 어른들께 잘 해드리지 못하는 저에게 꾸지람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시고 행복하소서! ~.~* -[11/14-04:20]-

최 선경: 공부를 오래 하는 것도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 일지데... 다만 최 작가님의 글 후반부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나 사정을 잘못 알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네요. 저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큰 효도를 못했고 몸이 약해 걱정만 끼쳐 드렸지만 쓸쓸한 마음 감출 수가 없네요.
-[11/14-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