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1-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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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거미줄
이제는 날씨가 빙점 이하로 자주 자맥질을 즐기는
겨울의 중심으로 접어 들었다.
이렇게 날이 추워지면 없는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게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데 얼마나 생활비가 필요할까?
그저 밥만 먹고 옷만 두르고 잠만 잔다면
그다지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답게 살려니 문명의 이기도 사용해야 하고,
경조사비도 지출해야 하며 친구도 만나고, 효도도하고
자식들 기르고 가르치다 보면 생활비는 어느새 세 자리 수로 바뀌고
더욱이 질 좋은 윤택한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생활비 미터기 숫자는 사정없이 달음박질 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월동준비로 쌀과 연탄, 그리고 김장 김치를
곳간에 채워 놓고 나면 엄동 설한도 결코 두렵지 않았고
상대적인 계절적 지출도 부담이 작았었다.

곳간은 창고(創庫)라는 한자어로도 표기되는데,
옛날 중국에서는 창씨(創氏)와 고씨(庫氏)가 곳집을 지키는 일을
대를 물려 도맡았었고, 그래서 그들 두성을 따서 붙인 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고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우리 도회지 서민들의 가옥에는
그 창고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런 월동 한파에 대비할 든든한 보급부대가 없어진 것이다.
어려움을 대비하고 우리 서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던
창고가 없어지고 이제는 동절기를 대비하여
야박한 시중 은행이 월동준비의 곳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딱히 재화을 모아두지 못한 사람들은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면 이 겨울은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나도 사실 저축해 논 재물이 없으니 아내는 겨울걱정을 한다.
‘이러다 그나마 돈벌이도 없어지면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사실 서울의 웬만한 기차역마다 종이박스로 집을 짓고 겨울을 나는
노숙자들도 걱정이지만, 서민들도 겨울은 사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이야기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그저 뇌리를 둥둥 떠다니곤 한다.

지금은 연로하신 아버지가 어릴 적 내게 종종 들려 주시던
옛날 이야기 하나가 떠 오르곤 한다.
아버지도 어릴 적 큰 할아버지에게서 구전으로 전해 들은
그 근거도 확실성도 모호한 이야기지만 그 중 일부분은
살다 보니 후에 어떤 책에서인가 읽어 봄직한 이야기였다.

** 옛날에 명 재상이고 지혜가 뛰어난 한 정승은 너무도 청렴하여
옷을 기워 입고 다녔으며 똑바른 노후 대책도 안 세워 놓아서
그 집 곳간의 쌀독은 항상 바닥을 긁었다.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 머물 때도 밥 굶기를 밥 먹듯 했는데
오랫동안 재상을 지낸 벼슬아치의 곳간이
그렇게 가난한 줄 몰랐던 지인들이 오랜만에 방문을 하여
사정을 보고 하도 딱해서 곡식을 얼마간 보내주면
그걸로 연명을 하곤 전혀 먹고 사는데 걱정을 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중국이 명재상의 은퇴를 알고
침략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조선 조정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전부터 지략이 뛰어난 그 재상이 건재해 있는 한
전쟁을 일으키는 건 모험이라 생각하고 꼬투리만 잡고
조선을 윽박지르지 기만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조선에는
지략이 뛰어난 관리는 없을 것이니 정벌할 호기로 판단했지만
승전의 확신을 위해 사신을 보내어 조선을 시험 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 사신은 크기도 생긴 것도 비슷한 말을 두 마리 가지고
조선으로 와서 임금에게 맡기며 한달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고 올 테니
두 마리 말중에 어미와 새끼를 분류해서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 두 마리 말은 새끼와 어미인데 새끼 말도 2, 3년을 크고 나면
어미와 체구나 털의 상태가 비슷해져 알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물론 조선의 인재들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이다.

임금은 모든 신하들을 모아서 해결책을 구했으나
누구 하나 똑바른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구러 날짜가 다가오고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답답한 조정은
최후의 수단으로 은퇴한 그 재상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하를 보내어 문제를 전하고 해결책을 들어 오라 시켰는데
재상은 대수롭지 않게 해답을 주었다고 한다.

-말 두 마리를 모아 놓고 건초를 던져 주세요.
그 중에 먼저 건초를 먹는 말이 새끼입니다.
말은 제 새끼부터 건초를 먹이고 나서 어미가 먹습니다.-

은퇴한 재상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전쟁위기를 넘긴 임금은
재상에게 커다란 상을 내렸다.
물론 중국도 지혜가 뛰어난 재상이 살아 있는 한
전쟁의 모험을 벌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유보 했다.

그런데 나라에서 상으로 내린 곡식도 몇 년이 지나서 다 떨어지고
더군다나 재상은 노환으로 자리에 몸 져 눕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그나마 재상이 살아 있어서 끼니를 이을 수 있었는데
재상이 죽고 나면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저승길을 기다리고 있는 재상에게 원망 가득한 푸념을 하곤 했다.

“대감께서 살아 계실 때도 근근이 먹고 살았었는데
대감이 먼저 훌쩍 떠나고 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라고
아무런 대책도 안 세워놓고 무책임하게 그렇게 가시려 합니까?”
하고 걱정을 하면 재상은 대수롭지 않게
“뭘 그리 걱정이요? 세상에 봉이라는 놈은 ‘낮거미줄’을 먹고 산다는데
설마하니 산입에 거미줄 치겠소?”

그렇게 죽는 날까지 아내가 원망을 하면 언제나 똑 같은 소리로
태평스럽게 대꾸를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도 재상의 부고를 듣고 나라에서 장례와 약간의 곡식을 내려 줘서
근근이 남은 가족들은 얼마간 살아 갈 수 있었다.

이때,
중국에서는 재상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는 첩보를 접하고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치기로 했는데, 그래도 또 다른 현명한 지략가가
조선에 있는지 돌다리도 두드려 보려는 심정으로
조선을 다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 중국에서 온 사신은 조선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새를 가지고 와서 맡기며, 한 달간 금강산 유람을 하고 온다며
황제가 특히 아끼는 동물이니 그 동안 잘 돌봐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중국은 조선의 상국이니 어쩔 수 없이 그 새를 돌보는데
이 이름도 모르는 괴팍하고 이상한 동물은 아무리 좋은 먹이를 줘도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채소를 줘도 고기를 줘도 생선을 줘도 도무지 먹지를 않고
삐쩍 말라만 가고 있으니 조정은 미칠 노릇이었다.

이것이 중국의 시험인지 잘 알고 있는 조정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방을 붙여 모든 백성들에게 답을 구해도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긴 이 새는 처음 보는 것이라 이름도 몰랐다.
이렇게 보름을 지나서 이제는 이 동물이 죽을 것 같은 상태에 이르니
임금과 모든 관료들이 초조하기 그지 없었다.
이 동물이 죽고 나면 중국의 천자는 불경이라는 죄목을 들어
조선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킬 건 뻔한 일이니 참 큰일이 난 것이다.
그렇게 어려울 때 마다 해답을 척척 내어 주던 그 명재상도 세상에 없으니
임금 이하 중신들의 마음이 바짝바짝 타 들어 가는 것이다.

도저히 그 놈의 먹이를 찾을 길 없던 임금은
항상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던 죽은 재상을 떠 올리며
그 재상의 집에 신하를 보내 혹시 모를 답을 찾아 보기로 하였다.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금의 명을 받은 대신이 재상의 집을 찾아 가보니
이건 정말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여
정말로 이 집이 전에 이 나라의 최고 벼슬을 지낸 분의 집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사신의 숙제를 푸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집을 지키고 있던 재상의 늙은 아내에게 물어 봤다.
“재상께서 혹 살아 계실 때 나라를 위해 말씀을 남기신 게 없는지요?”
하고 물으니 늙은 재상의 아내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나라걱정뿐 아니라 남은 식구는 어떻게 살라고 대책도 없이
그렇게 대감 혼자 먼저 가시느냐고 채근하면 대감은 무책임 하게도
‘봉이라는 놈은 ‘낮거미줄’을 먹고 산다는데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소?’
하고 전혀 걱정도 없이 말하다 이승을 떠났다오.”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임금과 조정은 머리가 홱 깨며 해답을 찾았다.
그 동물은 전설로만 들었던 봉이라는 새였던 것이다.
급히 전국에 방을 붙여 ‘낮거미줄’을 사서 모아 그 동물에게 먹이니
굶었던 이 녀석이 잘도 먹어 대며 하루가 다르게 체력을 유지 하더니
중국 사신이 돌아올 때쯤에는 털에 윤기도 자르르 흐르고
살도 피둥피둥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었다.
사신은 그 봉이라는 동물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갔고
중국 황제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아직도 지략가들이 많음을 알고
조선 정벌계획을 접었다.

조선 임금도 그때서야 재상의 청백리와
죽으면서도 가족과 나라를 위한 그의 안배에 감동을 하여
늙은 재상의 아내에게 커다란 저택을 지어주고 죽을 때까지 나라에서
의식주를 해결해 주도록 명하였다.**

그 전설의 동물이 잘 먹고 살찌운 ‘낮거미줄’은
청소를 게을리 해서 방안 천정 여기저기에 먼지를 붙이고
고드름처럼 늘어져 있는 회색 거미줄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농촌 마을의 부모님들이 사시는 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의 청백리며 명 재상인
황희 정승의 이야기라고 하기도 하지만 신빙성 없고,
그 동물도 ‘봉이’라는 새도, ‘동이’라는 동물이라고도 하며
다분히 허구적인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 나라 관리들과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서
이 겨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
그냥 그대로 얼어 죽고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사지가 멀쩡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흔히 힘들게 일하는 표현중에
‘어깨가 부서지는 것 같은’은 단지 어려움의 표현일 뿐이지
실제로 어깨가 부서지는 일은 없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은 단지 어려움의 표현일 뿐이지
실제로 허리가 끊어지는 일은 없고,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이’도 어려움의 극한 표현일 뿐
실제로 일하다 머리가 빠개지는 경우는 없다.
그런 어려운 표현에 부합되는 일들이라도 고맙게 해서
우리들의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오늘도 아내의 투정 같은 잔소리에 내 입속에서만 뱅뱅 도는 말

“봉이라는 놈은 ‘낮거미줄’을 먹고 산다는데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랴?”

2008년 1월 21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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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해숙: 그러네요.
좀 더 배고픈들 어떠하고
조금 더 넉넉한들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다 마음의 문제겠지요.
우리집 계단 천정에 붙은 낮거미줄 청소하렸더니
봉이가 먹게 그냥 내버려 둬야겠습니다.^*^ -[01/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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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아직도 얼마간 남아있는 겨울을 보며 걱정과 자위를 오 가는 우리의 삶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 작가님 명절 잘 보내세요. 그리고 얼마 뒤면 마음이 웅크려지는 계절도 줄어 있겠지요. -[02/05-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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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안녕하세요. 최평균 작가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_._ -.-

설은 잘 지내셨는지요?

분주했던 설 연휴 기간도 끝나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와
더욱 분주히 뛰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이루시며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늘상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자주 연락을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요즘 말그대로 밤낮을 잊고 살았더니
몸이 영 말이 아니네요.

최작가님께서도 몸 관리 잘하시고
저처럼 몸살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ㅎㅎㅎ

오랫만에 고운 글에 머물며 쉬었다갑니다.
이번주에도 추워질거란 일기 예보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시고
즐거운 한 주를 열어가시길 바랍니다. (hirashi2000@yahoo.co.kr) -[02/11-09:44]-

껍질속 땅콩이야기

왕만두국과 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