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3-19 12:44

ㆍIP:

파김치와 봄나물
오늘은 아내와 아들이 각자 볼일로
늦게 귀가한다고 한다.

혼자 식사를 하려니 여러 가지 반찬을 늘어 놓기도 그렇고
왠지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과연 값이 오르니 비싼 라면이 더 먹고 싶어지는
이 입맛은 왠 못된 심보인가?

냉장고를 뒤져서 김치를 찾아서 꺼내며
한쪽에 입을 굳게 다물고 심통부리고 있는
프라스틱 찬통이 있어 호기심에 열어 보니
냉장고 안의 위 아래층을 떠돌며 홀대 받던 파김치였다.

주부들의 살림 솜씨를 보려면
냉장고 정리상태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멸시 받고 천대 받는 반찬들이 냉장실에 버티며
게으른 주부의 솜씨를 까 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익은 파김치는
약간 심심하게 끓인 라면에게는 절대 궁합이다.
혼자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저녁 식사인 라면을 먹었다.

특히나 이 계절에 먹는 파김치는
낮게 엎드려 은폐 엄폐하고 기억의 정글속에 숨어있던
내 군시절 추억의 한 조각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지만
맛도 이즈음께 가 제일 좋다고 한다.

내가 훈련을 마치고 의정부 북부에 위치한 자대에 간 것은
지금처럼 봄이 한참 무르익으려는 4월초였었다.

독립부대인 그 대대는 마침 십여일 후에 체육대회가 열린단다.

본래 신병은
본부중대에서 3,4일 대기하고 나야 중대 배치를 받는데
내 주특기가 본부중대 주특기인지라 대기병 때부터
선배 고참들은 나를 같은 본부중대원으로 인정을 하였다.

본부중대는 체육대회 때마다
백오십 여명 규모의 타 중대와 달리
중대 총 인원이 취사병, 의무병을 모두 합해도
그저 5십여 명에 불과하여 모든 종목의 출전 선수를
짜 맞추기도 어려워서 매년 꼴등을 도맡아 하였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부대에 가니
선배들은 참으로 반가워 했는데 키도 제법 크고 튼튼하여
수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사격과 10킬로 구보’ 팀에
나를 포함시켜 출전하기로 했다.

사실 군인의 두 가지 필수 중 하나인
사격은 별 어려움이 없으나, 다른 한가지인 구보(달리기)는
무거운 완전군장과 총기를 매고 뛰어야 하므로
무척 힘들고 대부분 사병들이 기피하는 종목이었다.

이번 대회는 전역을 앞둔 대부분 고참병들이
군대생활 마지막 행사로 후배들 대신 출전하기로 했는데
그 중에 내가 끼여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구보연습에 들어 갔다.

구보 코스는 가능동의 부대를 나와
요즘도 가끔 교통방송에서 출퇴근길 정체 구간으로 방송되는
울대고개를 넘어 송추 유원지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돌아
다시 부대로 귀환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울대고개’는 경사가 무척 가파른 곳이라서
항상 이곳이 최고 힘들고 고통스런 구간이었었다.

선배들은 이곳을 신병들이 뛰어서 넘다가 너무 힘들어
울면서 넘는다 해서 ‘울대고개’라고 부른다고 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반환점인 송추 유원지 앞의 소나무를 돌고
다시 울대고개를 달려 내려와 부대 담벼락이 접한
동네어귀에서 고참들은 골목 안쪽의 구멍가게로 집결한다.

가게 앞마당의 탁자에 빙 둘러 앉으면
뻘뻘 땀 흘려서 파김치가 된 우리들 앞에
시원하고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이 놓이고,
그걸 단숨에 들이키면 흐르던 땀도 갈증도 금방 가시며
이제까지의 10킬로 고통이 한방에 날아 가는 듯 했다.

안주는 언제나 가게 주인이 내어 놓는 파김치 한 접시였는데
돈 없는 군인들에게 이 공짜 안주는 막걸리와 어울려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의례히 귀엽지 않은 어색한 아양으로
두어 접시 더 얻어 먹곤 했다.

부대에 막 배치 받아 온 신병이 술을 마시는 건
있을 수도 용납도 안 되나 왕 고참들의 총애를 받는 신병이니
어느 누구도 감히 뭐라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매일 한차례씩 훈련과 파김치 막걸리를 마시며
준비하던 체육대회 몇 일전.

그날따라 울대고개를 힘겹게 오르고 반환점인 소나무를 돌아
다시 울대 고개를 가속도 붙여 힘차게 달려 내려 오는데
오른쪽 다리가 이상하게 아프고 절룩거리게 되더니
급기야는 도저히 뛸 수도 걸을 수도 없이 고통이 엄습하였다.

결국 고참들의 부축을 받고 어렵게 돌아와 의무실에 갔더니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다리인대가 늘어난 근육골절이라고 하며
약도 없이 무조건 낳을 때까지 쉬라고만 하였다.

연습만 몇 일 했지 정작 체육대회에는 출전도 못하고
맘대로 걷지도 못하니 고참들은 실망하고 허탈해 했지만
그래도 그 동안 수고했다고 편히 쉬고 있으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편히 쉬는 것도 몇 일을 넘기지 못했다.

당연히 체육대회는 우리 중대가 꼴찌를 하고
화가 난 고참들은 저녁에 술만 마시면 화풀이로 나를 불러내
아픈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원산폭격(기합, 얼차려의 종류)에
심지어는 야전삽으로 양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볼에서는 ‘철커덕 철거덕’ 소리가 났었다.

몇 일전 천국에서 졸지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거였다.
꼴찌 한 게 마치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각종 기합과
린치에 시달려야 했으니 시원한 막걸리에 맛있는 파김치 먹다가
회복이 될 때까지 시달리며 내가 늘어진 파김치로 지내야만 했었다.

그때는 참으로 고통스러웠으나
그렇게 힘들던 일 일수록 오래도록 기억되는 추억이 된다고
봄이 산과 들을 수줍은 연두색으로 물들여 가는 이때쯤에는
잊지 못할 그 시절 추억의 파김치를 떠올리게 한다.

백합과에 속하는 파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니
고려시대의 문장가인 ‘이규보의 문집’에
시 구절로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고려시대 이전에
원산지인 중국 서부에서 우리 나라로 들여 왔을 것이라고 한다.

파김치는 쪽파로 고춧가루와 젓국만을 이용해 담그는데
쪽파는 파와 양파의 교잡종으로 일년 내내 구할 수 있고
그 중에 겨울에서 봄에 걸쳐 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며
강장제, 이뇨제, 고지혈증과 고혈압을 억제 한다고 하고,
특히 어독(魚毒)을 해독시키는 역할과
기타 여러 가지 약효가 있다고 사전에 전하고 있다.

그래서 초봄의 초입인 요즘에 먹는 파김치는
다른 계절에 먹는 것보다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고 한다.

이 쪽파는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 ‘파김치’, ‘파전’이나
데쳐서 댕기처럼 묶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파강회’ 외에도
‘쪽파짱아찌’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이 계절의 진미가 파김치뿐이겠는가.
요즘 재래시장의 후미진 골목이나 야채가게 한 켠에는
다양한 봄나물이 먼저 나와 봄의 더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봄나물의 대표격인 달래, 냉이, 취나물 외에도
원추리나물이나 방풍나물, 머우순등이 있는데,
원추리나 머우순등은 봄의 초입에 난 어린것들만 삶아서
독성을 제거한 후 먹을 수 있다.

이밖에도 이름을 알거나 모르는 많은 봄나물이 있는데
이 봄나물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 몸이
따뜻한 봄기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춘곤증’을 없애주는 이 계절의 중요한 건강 먹거리이다.

또한 이 계절에 내가 빼지 않고 즐겨 먹는 나물 중에는
앙상한 가시나무 끝에 봄의 새싹으로 피어나는 ‘두릅’이 있다.

나는 80년대 초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내교육을 받았었는데
한국의 1호 약학박사이며 이 나라 산과 들에 자생하는
먹거리 식물들의 효능과 영양에 대하여 탁월한 지식이 있던
홍문화 박사(지금은 작고)가 강사로 초빙되어 강의 하실 때
“봄에 성인 남성들에게 ‘산삼’ 다음으로 좋은 게 자연산 ‘두릅’ 이다.
산삼은 귀하고 비싸서 쉽게 먹을 수 없지만
두릅은 다소 저렴하니 초봄에 많이 즐기시라.” 라고 하여
아내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준비하는 봄의 별식이다.

인삼과 두릅은 같은 두릅나무과 여러 해 살이 풀이라고 하며
두릅에는 단백질, 비타민과 사포닌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혈당지질을 낮추어 당뇨병, 신장병 등 성인병에 좋다고 한다.

사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의 산과 들에는 나물과 채소 등
자연 또는 양식으로 자란 많은 먹거리들이 철마다 산재해 있는데
사계절 야채나 나물 중에서도 겨우내 자연의 땅속에서
잔 뿌리마다 땅심을 맘껏 섭취하고 따스한 볕을 기다렸다가
일순 땅을 헤집고 불끈 올라온 봄나물들이 영양과 약효에서
으뜸일 것이라고 단정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이번 봄에는 사정이 되는대로 계절의 진객 쪽파로 만든
파김치나 파전에 막걸리를 자주 즐겨야 하겠다.

그렇다고 파김치가 내 군시절 근육골절통의 기억을 깨워
내 오른쪽 다리의 슬개골을 아프게 괴롭히지는 않겠지?

아쉬운 대로 내일 저녁은 아내와 손잡고 재래시장에 들려
‘땅두릅’ 조금 사서 살짝 데쳐 초고추장 찍은 안주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남은 겨울의 터럭들을
말끔히 털어 버려야 하겠다.

그래야 진정한 나의 봄이 온 것일 테니까.

2008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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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하: 파김치와 봄나물 -[03/19-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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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하: 최평균 수필가님 반갑습니다 -[03/19-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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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하: 초보자를 알아보는지 글씨가 장난을 치네요. 라면에서 군대생활이야기며 파김치,봄나물이야기에 홀려버렸네요.본부중대 근무하셨다니 군 생활은 비교적 편안히 하신 것같습니다 사격과 구보를 빼면 군대생활은 낯잠자는 것외에 달리할일이 없는것 같습니다.다리를 다치셔서 얼차례 받으시느라고 고생하셨군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인간의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아니면 지난 일이라 아름답게 느껴져서 인지 모르겠습니다.나물과 약초에 대하여는 전문가 수준이시군요 앞으로 전수부탁드립니다. 자칫 입맞을 잃기쉬운 봄날에 파김치와 산나물이야기가 침을 고이게 하네요.최 수필가님의 잔잔한 봄 이야기가 생활의 활력이 되네요.오늘 사모님과 손잡으시고 재래시장은 다녀 오셨습니까? 행사날 뵈니까 사모님이 너무 좋으신분 같더군요.그러고 보니 은근히 라면생각이 나고 허기가 오네요. 최 수필가님의 봄 이야기에 에너지를 받고 갑니다. 봄날 ,행복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03/1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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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안녕하세요. *^.^*
참으로 오랫만에 들러서 인사를 여쭙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시온지요?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인해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이제서야 잠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듯 합니다.

너무 늦게 인사 드려서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원산폭격과 군대 이야기에서
잠시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는군요.

지겹도록 받고 또 받았던 기합이었는데...
기합을 받다가 기합을 주는 입장에서의 기억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떠올려지질 않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눈물에 절었던 그 순간들만이 떠올려 지는군요.

김밥말이와 원산폭격,
매미... 수통 뚜껑에다 머리를 박거나 치약 뚜껑에다 머리를 박고
원산폭격 하던 때...

무엇보다도 통신 주특기이다 보니
메신주에 로프를 걸어서 두발목을 묶어
거꾸로 메달린 채로
하이바(철모)에 머리를 박은채 매달려 있던 때가
제일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순간은 힘들고 (hirashi2000@yahoo.co.kr) -[03/19-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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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어려웠었지만,
그토록 어렵게 군 생활을 버틸 수 있었기에
지금의 사회 생활에 있어서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꿋꿋히 잘 참고 버틸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봄비도 내리고해서
쪽파를 다듬어 파찌짐(파전)을 부쳐먹었는데,
마침 파김치에 대한 글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기쁘기도 하네요.
ㅎㅎㅎ

* 전화 통화를 하려면 잘 끊어져서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저께인가 SK텔레콤으로 가서
휴대폰을 바꿀려고 알아보니 무료로 바꾸는게 되질 않아서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달 26일부터 약정 휴대폰이 나올 예정이라니
그때에 새로히 바꿀려고요.

어차피 구입을 하건 무료로 바꾸든
국산품이란게 조금만 사용을 하면
곧바로 또 고장이 나게되니
이왕이면 26일에 새로히 출시되는 제품으로 바꿀까 합니다.

고운글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환절기 고르지 못한 날씨에 조심하시고
편 (hirashi2000@yahoo.co.kr) -[03/19-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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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안한 밤 되세요. *^.^* (hirashi2000@yahoo.co.kr) -[03/19-20:41]-

최씨 고집

타고난 사주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