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1-0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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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만두국과 설날
밤은 어언 새벽 세시인데 잠은 오지 않는다.
‘새벽 세시의 사자 한 마리’를 쓴 남진우 시인도
나같이 잠이 안 와 뒤척이다가 이 시간에 그 시를 쓰고
신춘문예에 당선 되었을까?

밖에는 간간이 골목을 지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안방의 아내 코고는 소리가 잦은 머리 타령조로 높, 낮게 깔려
정겹기도 때론 서글프기도 하게 들리는데
겨울 밤은 저런 소리들에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머뭇대다
뻐꾸기 시계 울음에 화들짝 놀라 골목 저쪽으로 내빼고
그렇게 겨울 아침이 밝아 오는 건 아닌지?

이제는 신년하고도 새해가 밝은지 4일째 새벽이니
산술적으로 올해도 이미 백분의 일쯤 산 것이다.

지나온 설날을 돌이켜 보니 내 유년의 기억도 많이 나지만
어른 된 후의 추억들도 더러 잊고 지낸 것이 몇 있는 것 같다.

그 추억들 중에 신, 구정 설이면 내 커다란 손바닥만한
만두를 넣고 끓인 왕만두국이 오늘 밤 유독 생각이 난다.

충청도가 고향인 우리 집은 설날에도 떡국 차례는 안 지내니
그저 산 입이 즐겨 먹으려 구정에 가래떡을 뽑기만 할 뿐이고
설날의 우리 집 식탁을 차지하던 진정한 먹거리는 만두국이었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신, 구정 설날을 위해서 어머니는
그야 말로 강호동 머리통 만한 커다란 만두를 빚는다.

밀가루 피에다 장만하시는 속 거리는 참으로 복잡 풍성 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내가 12월 초에 결혼하고 처음 맞는 해의 신정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두 며느리를 지휘하며 만두를 빚어 내셨다.
나나 연년생인 동생이 12월에 20일 차이로 결혼을 하여
그 해는 갑자기 집안에 여자 식구가 둘이나 늘어서
어머니의 손길은 조금은 여유가 있는 듯 보였지만
따로 제급 나서 사는 두 식구의 분량을 빚어 내야 하시기에
그 해도 만두 빚는 일이 녹녹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두 피의 양이 얼마인지 그건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만두소로 장만한 양념은 커다란 스텐레스 다라이에 가득 했었다.

만두소는
그 해 담근 김장김치를 곰 익혀서 시큼한걸 물에 빨아 준비하고,
두부를 잔뜩 사서 으깨고, 당면을 살짝 삶아 섞은 데에
당근과 양파를 잘게 썰어 두리 둥실 버무린 것을
깨끗한 베 보자기에 싸서 깨끗이 청소 된 빨래 짜는
‘짤순이’에 넣어 돌려서 만두속꺼리의 물기를 제거 했었다.
(그 시절에는 일반 가정에 세탁기는 드물었고
손 빨래 후 물기를 제거하는 ‘짤순이’ 라는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로 가정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로 정말로 어른 손바닥 크기로 만두를 빚어 냈는데
요즘처럼 작은 크기로 만두를 만들다간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그 해 마지막 밤을 다 새어도 못 만들 것이었다.

다음날 온 가족들이 다 모여서
소고기를 넣은 떡국에 전날 만든 만두를 넣고 한 솥을 끓여낸다.
빙 둘러 앉은 가족들 앞에 만두 떡국을 몇 국자 받아서 먹으면
그 놈의 만두는 너무 커서 한입으로는 넘겨낼 수 없고
반정도 잘라서 김장 김치를 척 곁들여 입안 가득 씹어 먹으면
그 맛은 한 겨울을 상큼 녹여 주는 천상의 맛이었다.
뜨거워서 호호 불며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히 침샘들이 반갑게 마중침을 보내 주고
설날의 아침 식사를 즐거운 추억의 영상으로 남게 하곤 하였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남은 만두를 한번 쪄내 소쿠리에 담아서
한 김 낸 후에 큰며느리 작은 며느리 손에 잔뜩 들려 보내야
명절의 직성이 풀리는 손 큰 어머니였었다.

그 해의 그때도 지금같이 새해가 몇 일이 지난 1월 초인가보다.
내가 설날 만두국을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아내가 좋아서 인지
(이제껏 살다 보니 아내가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 판명됨)
퇴근한 나에게 만두국을 준비해서 저녁 식사로 내 왔다.

사실 나는 비빔국수나 냉면 외에는
그런 밀가루 음식을 그리 즐기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빚은 왕만두국은 매년 그런대로 불평 없이 먹었었다.

첫날은 그러려니 하고 먹고 있는데
아내가 나에게 곤란한 질문을 해온다.
“어때요? 맛 있어요? 어머님이 끓인 만둣국이랑 어때요?”
하는 음식 품평 질문에
‘어쩜 애교도 없던 사람이 그렇게 애교를 섞어서 물어 오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이제 낮 선 남자를 만나 같이 산지
채 두 달도 안 됐으니 어찌 실망을 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으음! 그래요. 맛이 꽤 괜찮네요. 처음 한 것 치고는 참 잘했네요.”
하고 칭찬을 할 수 밖에…….(사실 꽤 괜찮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내 대답이 내 무덤을 판 것이라고
후회를 하는 데는 불과 사흘도 못 갔다.
내가 맛있다 하니 아내는 당연히 다음날 저녁도 만두국에
“어때요? 오늘도 만두국이 맛있나요?”
그 다음날 저녁도 만두국을 끓여서 내 오며
“맛있죠? 만두국이 참 맛있죠?”
‘아! 나는 이제 밥을 먹고 싶은데 계속 만두국을 들이 미니……
결혼 하기 전 요리 학원도 다녔다는 여자가…….’
그러면서 매일 저녁 아내표 만두국의 품평회를 해 달란다.
“맛있죠?”
나는 마지 못해 그저 끄덕끄덕
“음 맛있네!”
그런데 여자가 말이야 눈치가 있어야지
저녁마다 계속 만두국을 들이 미는데 환장을 할 노릇이다.

그렇게 사일 째 되는 날 마음을 다 잡고 심사 숙고하여
아내의 자존심 다치지 않을 정도 적당한 한마디를 준비했다.
오늘 저녁도 만두국이 나오면 한마디 하리라……

역시나 그날도 만두국 한 그릇에 아내의 똑 같은 물음.
“어때요? 오늘 저녁 만두국도 괜찮죠? 맛있죠?”
하는 물음에 나는 웃으며 이야기 했다.
“하하하 이 사람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렇게 똑 같은걸 먹으라면 누가 맛있다 하겠나? 하하하”
“이제 정말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요.”

지금이라면 제 말을 듣자 마자 “흥 먹기 실으면 그만 둬!” 하겠지만
그때는 새색시인지라 그러지도 못하고 얼굴 붉히며
그냥 미안함에 어색하게 웃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었다.

그 후로 아내표 만두국은 못 먹었어도
어머님은 매 명절 때마다 며느리들을 집합시키고
만두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많은 형제 조카 중에 막내 아우와 아내가 가장 맛있게 먹던 것이
그 어머님표 왕만두국인 것 같다.

그렇게 내 어머니와 아내가 내 곁을 지켜 주던 명절이었는데
음식 잘하시던 어머니는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서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설계하시고 계시고
그나마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아내가 안방에서
마치 팽팽한 창호지 바른 미닫이문을 가만히 여닫는 소리 같이
가느다란 코골음 소리로 피곤했던 하루를 나에게 항의 하고 있다,

전에는 맛있게 먹지 못했던 어머니표 왕만두가
요즘 따라 먹고 싶어 지는걸 보니 나도 이제 늙었는가 보다.

그래저래 어머니가 보고 싶고 아내가 소중하고 그런 밤이다.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가서 의식 없이 눈만 멀뚱 뜨시는
어머님을 찾아 뵙고 콧소리 한껏 높여 어리광 부려봐야겠다.
“엄마! 왕 만두 먹고 싶어~잉!”
그러면 어머니는 동공이 풀린 눈으로 대신 말씀하겠지?
“아이구 나이 먹은 내 철부지 큰 아들아.
너를 두고 눈을 못 감아 저승도 못 가고 내가 하루 종일 누워서
이렇게 목으로 음식 삼키고 살고 있다. 쯧쯧.”

이 새벽에 내 소중한 두 여자.
코골고 있는 내 여자와 나를 무모하게 사랑해 주던
내 아버지의 여자가 눈물 나도록 고마운 날이다.
그래도 왕만두국 먹고 싶은데……

하지만 그 만두 빚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던 내 어머님은
나에게 더 이상 그런 기회를 주실 수 없을 테니
이제는 안방에서 아직도 잠들어 꿈길을 거닐고 있는
그 옛날 세련된 만두 빚기 현악기 연주자 같던 예쁜 아내를 졸라서
그나마 옛 추억을 빚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보~오! 만둣국 먹고 싶어~어! 어떻게 안될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2008년 1월 4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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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최 작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머니가 병환중이라 걱정이시겠네요. 이젠 점점 예쁜 사모님의 만두맛에 익숙해지시겠지요... (sunkyung25@hanmail.net) -[01/15-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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