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11-16 19:14

ㆍIP:

얼치기 가을 산행
“아니 이런 6시가 넘었잖아?”
“그러게 말 이예요.”
“그러게 가 아니고 빨리 서둘러요.”
“알았어요.”

배낭을 부랴부랴 짊어지고 나서는 새벽길은 코끝이 쨍 하도록 싱그럽다.
가을이 한참 농익어 가는 새벽은 항상 이런 청아한 맛의 공기를 느낀다.
하지만 이 새벽을 여유롭게 즐기기엔 우리부부가 너무 꾸물댔다.

버스를 타고 한정거장 가서 내렸다.
“뛰~~어!”
7호선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 역에서 내려
“달~~려!”
3호선으로 환승하고 양재역에 내려
“서둘~~러!”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 보니 큰 바늘이 서너 보 뒤에서 작은 바늘을
7시로 내몰고 있다.
서두르고 서둘러 겨우 7시에 맞춰 왔는데……

그런데~ 어라?
휴일이면 그 많던 산악회 버스가 어찌 이리 안 보인 다냐?
서초 구민회관 근처로 서둘러 가보니
몇 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어서 차 앞 유리에 달려있는
이름표를 확인하니 모 회사 출근버스다.
버스 주차장을 훑어 보아도 마땅한 산행 버스는 없는 듯 하다.

이젠 틀렸나?
행선지를 바꿔야 하나보다 하고 어정쩡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데
주차장 입구에 등산 배낭을 멘 남자분이
새벽 여명에 신문을 애써 읽으며 서있다.
슬금슬금 다가가 어디로 산행을 가냐고 물어보니 문경으로 간단다.
몇 마디 물어 봤는데 마음은 이미 이분과 동행이 되었다.
“동호회에서 가세요? 버스에 자리는 두 좌석 여유가 있을까요?
산행은 빡 센 코스는 아닌가요?”
그분 왈
“산악회에서 가는데 평일이라 좌석 여유가 있을 거에요.
코스도 충분히 여유롭게 즐길 만 할겁니다.”

그때 버스 한 대가 도로를 벗어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 왔다.
몇몇 배낭족들에 섞여서 나이가 지긋하신 인솔자님께 눈인사로
승낙을 얻어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의 이름표를 얼핏 확인하니 ‘@@ 산악회’.
안도의 긴 한숨을 쉰다.
“휴~~우!”

오늘은 수요일.
모처럼 아내와 같이 평일에 시간이 되는지라
산행을 계획하고, 평소는 주로 관악산이나 수락산등
서울근교의 산행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가을을 맞아 산악회 버스를 타고 원행을 해 보려고
어제 저녁 그 많은 산악회의 일정을 검색해도
도무지 오늘인 수요일에 산행을 하는 산악회를 찾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몇 차례 원행을 할 때 가봤던
양재역에 아침 7시까지 가서 맘에 드는 행선지를 선택하고
자리 여유가 있는 버스에 동승하자고 하고 늦게 사 잠이 들었었다.
딱히 갈만한 산악회 버스가 없으면 소요산으로 가기로 정해 놓고.

좌석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있으니
버스는 두어 군데 더 들려서 회원들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주 휴게소에서 잠깐 들려
간단한 요기를 한 산객들을 싣고 내륙 고속도로를 달린다.

나이 지긋한 회장님이 오늘의 산행에 대하여 안내 말씀이 계시다.
오늘 코스는 문경의 천주산으로 올라가서 2,3킬로 떨어져 있는
공덕산의 머리에 올랐다가 왼쪽 어깨를 타고 내려오면서
스며있는 전설과 자연의 작품을 더듬어 오는 거란다.
한 코스를 타는 건 싱겁고 산행 시간이 짧아 두 산을 등반한단다.

정확히
문경의 ‘천주사-대스랩-천주산 정상-공덕산정상-823봉-부부바위-
안장바위-윤필암-묘적암-마애불-사불암-대승사’로 이어지는
9킬로미터 약4시간 30분 소요 코스란다.
주어진 시간은 5시간 30분.

대스랩?
스랩이 뭐지?
옆 분께 여쭈니 스랩은 인수봉같이 기어서 올라가는 암반이란다.
그리고
오늘 리더로 앞서 나가며
산길을 뚫는다는 대장님이 나침반을 차고 자일을 준비 하신다.
일행들도 스틱을 두 개씩 배낭에 장착하고 장비가 만만치 않으며
연세 드신 분이나 여자분들도 고수의 눈매다.

아이고! 오늘 우린 버스 잘못 탔다.
이분들은 우리같이 등산로 산책 하시는 분들이 아니고 전문 산악인,
그러니까 산에서 살고 싶은 산꾼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코스가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은
다소 쉬운 공덕산 코스만 즐기라면서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신다.
주저할 필요 없다.
괜히 체면 생각해서 저분들 뒤따라 산행을 했다가는
우리도 곤욕을 치르겠고 저분들에게도 짐이 되겠다.
우리 부부가 손을 번쩍 들고 둘러보니
손 들은 건 우리 두 사람밖에 없다.
이런~ 쪽! 하하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우리 부부 산행실력의 현주소인걸……

어쨌건 천주사로 가는 도로주변의 가을빛이 너무도 곱다.
입구에 있는 맑디맑은 경천호 건너로 보이는 가을은
지금이 한창이라고 맘껏 알록을 뽐내고 있는데
아침안개 사이로 살짝 가렸다 나타나는 달록은
충분히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추색에 손색이 없다.

버스가 가파른 천주사를 올라가다 힘겨워
중턱에 서서 바지춤을 추스를 때
산객들은 종아리가 떡붕어 같이 실한
조대장(나중에 그가 조대장인 줄 알았다)의 반바지 뒤를 따라
말 그대로 남정네 기둥 같은 암반이
하늘을 향해 발기하고 있는 산길을 따라 나선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지라 천주사 경내를 들러 보기로 하고
가을이 잘 익은 천주산 무릎사이로 따라 들어갔다.

산행에 자신은 없지만
이곳까지 왔으니 천주사 경내는 구경하고 가야 하질 않는가?
너무도 인적이 없어 적요한 경내를 돌아
마애불에 오르는 길엔
철 모르는 개나리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으며
야산의 양지바른 곳엔 진달래도 시샘하듯
여린 핑크빛으로 두엇 피어 있었다.

마애불에 오르니
암반에 양각으로 조각한 불상이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곳을 지나서 앞서가는
산객들의 모습이 꽃뱀의 화사한 자태처럼 아른거리며
이내 산 모롱이 속으로 빠져 들어 가는데
아무리 봐도 산길을 내 눈으로 찾지를 못하겠는데
저들은 길을 만들어 가는 건지 참으로 아름다운
뱀꼬리 같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흐린 날씨로 확연히 볼 수는 없으나
아마도 봉화의 청량산 금탑봉 허리에서 봤던
경탄에 뒤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천주산의
천주봉을 더듬지는 못했지만
하늘기둥 주춧돌 위는 머물다 내려간다는 자위로 산을 내려왔다.

차를 돌려 산꾼들 2시간 뒤의 코스인 공덕산 앞자락의 대승사로 향했다.
공덕산에는 네 방향으로 부처가 새겨진 바위가 있어서
사불산이라고도 불린다.

이곳 대승사는
조선초기부터 ‘반야경’을 연구하며
득도 정진하는 학인스님들의 수행가람답게
조용하고 엄숙한 기운이 선방마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아내는
공덕산 오른쪽을 올라서 왼쪽으로 내려오는 B급 코스도 부담스러워
주저 없이 포기해 버린다.

할 수 없이 나도 같이
회장님과 컨디션 난조로 완주 코스를 포기한
한 분을 공덕산 등산로 입구에서 배웅하고
다시 빽 코스를 선택하니 얼치기도 제대로 얼치기 산객이 된 하루였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몇 군데 유적과 자연의 작품은 봐야 하겠기에
윤필암을 오르는 등산로를 여러 사람에게 물어 봤으나
그 누구에게서도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침에 버스에서 받았던 지도를 근거로
도로를 돌아 내려 오며 살펴 봐도 지난 수재로 복구공사가 한참인
계곡에 막힌 건지 도무지 등산로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대충 가늠으로 낙엽길을 더듬다 그럴듯한 개활지에
아내와 나는 배낭을 풀어 가져간 막걸리와 맥주를 한잔하고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도로를 따라
늙은 아낙의 젖가슴처럼 축 쳐진 ‘U’자 모양의 가파른 도로를 에돌아
윤필봉의 그림자까지 올라가니
사불산 오색치마 사이로 저 앞에서 주섬주섬 말소리가 흘러온다.

걸음을 재촉하여 윤필암에 당도하니
아침에 천주사에서 출발했던 반가운 얼굴들이
벌써 두 산을 헤집어 이곳에 당도하여
카메라의 눈을 절집에 맞추고 있었다.
저기 보니 그 씩씩한 조대장도
발그스름 당단풍의 볼테기를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 댄다.

이곳에서 윤필암과 사불전을 내 카메라에 담았으니
앞서 담았던 천주사와 대승사를 포함해
4불사가 내 카메라속에 담겨있는 셈이며
내 카메라도 이미 붓다의 피안 세계 문 앞에 선 듯 하다.

이곳 주위에는 묘적암이 있다는데
그곳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 초 왕사였던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의 출가 득도처이며 근세에 입적하신 성철 큰 스님이
젊은 날 정진했던 곳이라 하나
더 이상 궤도를 거슬러 더 올라가기는 무리인지라
다음을 기약 해야만 했다.

윤필암은 곁에 사불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불바위가 올려다 보이도록 되어 있을 뿐
따로 불상을 모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공덕산 윤필암**

공덕산 정수리에
내려선 가을빛이

노랗게 흘러내려
산자락 휘덮는데

윤필암
작은 가슴엔
불타는 저 당단풍.

한 잎 또 다시 한 잎
떨어지는 눈물낙엽

지난날 뿌리쳤던
속세의 연민인가

가을속
비구니 불전
야속한 저 단청화.

앞서가는 산객들의 꼬리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낙엽이 깔린 길을 따라 발걸음 옮기는 아내를 뒤에서 바라보니
언제 저런 힘이 비축 되어 있었을까(?) 고개가 갸웃거려 진다.
왜 그리 서두르냐고 물으니 가쁜 숨을 들이키며
“저분들 놓치면 길을 잃을 까봐요.” 라고
두견새가 진달래꽃 토해놓듯 한마디 토해 놓는다.

하하 참
여기서는 어느 곳으로 내려가도
도로가에 도착할 텐데 겁도 참 많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우리가 막걸리를 마시며
쉬던 곳을 지나 바로 도로에 닿는다.
아마도 우리가 낙엽에 쌓인 소로를 찾을 수 없었나 보다.

하여간 우리 나름대로 산행을 한 것에 만족하며
대승사 주차장에 내려와 앞서 내려오신 분들과
속속 도착하는 산객들과 더불어 콩나물국이 시원한 식사와
하강주로 빈속을 채우니 별로 산행도 안하고
챙길 건 프로 산꾼들처럼 다 챙긴 듯 하여 쑥스럽다.
막걸리와 소주를 각기 한잔씩 앞에 놓고 벌이는 산중 토론이
가을만큼이나 깊어 가는데 산 잘 타는 조대장은 아는 것도 많다.

술을 한 잔하며 돌아본 산등성이에는
몇 시간 전의 경치보다 더 맛깔 나게 물들어 우릴 내려다 보는 게
붉어 지는 노을에 투영돼 단풍을 더욱 불태우는 것도 같지만
촛불도 타다가 마지막에는 현란한 불꽃을 남기고 지듯이
나뭇잎도 마지막 황홀한 낙엽으로 이 계절을 오늘의 산객들에게
문득 보여주고 사그라지려는 것 같다.

마지막 일행이 식사하기를 기다려 대승사를 내려 오는 길가에는
과수원 홍옥이 발그죽죽하게 당단풍과 가을을 겨루고 있는데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가을의 홍엽이
어느새 버스안의 나를 들여다 보며
한 잔술로 발그레한 내 얼굴과 한껏 가을빛을 호흡하여
붉어진 내 가슴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스름 노을빛에 물든 버스안이
바로 가을산이고, 가을빛이고, 서로의 가슴속이
맑은 호수에 깃든 한 폭의 만추의 수채화였다.

굽이 도는 산길을 따라 떨어지는 저녁해가 제 얼굴을
감췄다 내 놨다 하니 이 자연이 나와 숨바꼭질 하는 것 같다.

퇴근길로 부산해진 고속도로의 붐비는 차량의 붉은 후미등을 따라
아침에 정신 없이 출발했던 양재역에 9시가 다되어 당도하니
굳이 가을산뿐 아니라 이 도시도, 사람들도 모두
얼굴과 가슴에 발그레 단풍이 물들어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얼치기 산행으로 반나절 부끄러웠으나
가슴이 따뜻한 30여 산사나이들의 마음과 포켙에 들어 있는
산행지도 더불어 사불산 대승사 안내도가
2007년 가을과 함께 있으니 더없이 즐겁고 보람찬 하루였다.

2007년 11월 14일 가을 산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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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해숙: 잠깐 함께 했지만 늘 웃음을 나눠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1/19-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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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해숙: 에궁~ 이곳은 댓글을 달고 enter키를 누르면 안되는 것을 몰랐어요.
수필방을 오랜만에 들어와서리...
오늘 최수필가님의 글을 대하니
어제(아니 그제) 뵌 모습과 똑같아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또 뵙겠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겨울이 가을을 이제 완전히 보내버렸나 봐요.^*^ -[11/19-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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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택: 부부의 산행이 놀랍습니다 -[11/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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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택: 부럽기도 합니다 웃음과 해학을 가지신 최작가님 정말 즐거웠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많은 기대하겠습니다 ^^*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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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정말 오랫만에 들어와봅니다.
그동안 잘 지내시고 계시온지요?

한동안 무척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말그대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ㅎㅎㅎㅎㅎ

산 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피시방을 찾아 다니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얼마 전에 산에서 내려와 저희집 수리를 했었는데요,
이제서야 대충 끝내고 겨우 컴앞에 앉아서 들어와보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엉성하게나마 컴을 수리했거든요.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접속을 못해서 오늘 다시 접속했지만요...ㅎㅎㅎ)

여전히 건강하시죠?

참, 그동안 추진하던 일(귀촌)은 부득이하게 잠시 보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겹치는 일들도 많고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어서
이왕 늦은 거...조금 더 참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급한 일들이 겹쳐서 정말 답답하네요.ㅎㅎ

아무쪼록 아침, 저녁으로 기온 차도 심하고
고르지 못한 날씨 속에 몸상하지 않 (hirashi2000@yahoo.co.kr) -[11/22-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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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도록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독감은 잘 떨어지지도 않거든요.
오랫만에 들러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 (hirashi2000@yahoo.co.kr) -[11/22-18:36]-

그 해의 마지막 열차를 타고

어떤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