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 여자, 아래층 남자

신 영 애

세상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점과 지혜의 힘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층간 소음뿐만 아니라 벽간 소음도 견디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위층 이웃이 바뀌었다. 재작년 어느 날, 아침엔가 엘리베이터 내벽에 훼손을 방지하는 가림막이 처져있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테리어로 인해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는 인테리어를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양해 인사를 드렸는데, 이제는 안내문 하나 붙이는 것으로 양해를 바라는 인사는 끝내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고 2주 즈음 주말 아침엔가 윗집에 쿵쿵 소리가 나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아, 우리 윗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구나.’하고 충분히 인지할 만한 소음과 장면 연출이었다. 그런데 그 이웃은 더 확실하게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사 온 이후로 다양한 말소리와 쿵쾅대는 소리, 호탕한 웃음소리 등으로 이 집에 새로운 이웃이 왔다는 사실을 아주 열심히 알려주었다.

   하루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려오고, 현관부터 베란다까지 다다다닥 뛰어다니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질 때도 집들이하는가 보다 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마늘 찧는 듯한 방망이 소리도 들리고, 밤늦은 시각 잠을 거절하는 어린아이 울음소리에 “어쩌라고.”를 연발하는 젊은 아기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간혹 식탁 의자를 끄는 듯한 소리, 누군가 방문했는지 밤늦도록 웃고 떠드는 소리가 계속되기도 했고, 강아지가 앙칼지게 짖는 소리가 났고, 이내 강아지를 혼내는 소리도 났다. 참 다양한 소리를 내며 활발하게 사는 이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새벽까지 공부하던 큰아이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큰아이는 인터넷으로 층간 소음을 해소하는 방법을 검색해 보았다면서 어느 날 퇴근해서 들어서는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바빴다. 결국 계속된 소음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큰아이에게 참으라고 하기에는 끝이 없는 소음과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자유로운 외출이 어렵고, 더구나 어린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공간조차 제한된 시기이다 보니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들은 소음을 내고 싶어 내겠는가 하는 생각에 적당히 눈감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사 오던 날도 아래층에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차마 위층에 올라갈 수 없었다.

   신혼 초, 1층에 살던 시절, 아이들은 침대에서 뛰거나 소파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일들이 많았다. 식탁 의자가 제힘으로 움직이지 않아 질질 끄는 소리가 났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파트 2층으로 이사하던 날, 유치원에 막 다녀온 아이들은 친척들이 다 모인 집에 들어서며 “잔칫집 같아.”하면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더니 사촌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통에 뛰지 말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당연히 식탁 의자 다리 밑에는 고무 받침대를 달았다. 어느 날 이웃들 모임에서 층간소음 얘기가 나왔다. 과거에는 대부분 주택에 살아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뛰어다니며 살았는데, 요즘은 아파트 문화라서 이런 것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우리 아래층은 고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데 큰아이는 수험생이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생각이 나서 과일 바구니를 준비하여 아래층의 초인종을 눌렀다. “문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세요.”안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과일바구니를 들이밀면서 쥐구멍으로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죄송해요, 위층에 이사 온 사람인데요. 저희 아이들이 너무 많이 뛰어서요. 늘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많이 불편하셨지요?” 했다. 아래층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나오면서 “보시다시피 제가 걷기가 불편합니다. 우리 아들은 고3이라서 학교에서 끝나고 학원 갔다가 12시에 들어옵니다. 아이들 클 때는 다 그렇지요, 뭐. 저들 딴에는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정말이지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아래층 남자 같았을 테다. 아이들이 뛸 때마다 소음으로 왜 말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그렇게 말해주니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었다.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에 더욱 조심시키겠다고 말하고 올라왔다.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20년 전의 아래층 남자가 되어 위층의 소음을 듣고 있다. 그런 우리 가족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어느 날 저녁 위층 여자가 딸기 한 바구니 들고 찾아왔다. “좀 시끄러웠지요. 아무리 뛰지 말라 해도 저희 아이가 말을 듣지 않네요. 죄송해요.”한다. 사실 계속된 소음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심란해졌다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그 소음으로 인해 날카로웠던 마음과는 달리 “괜찮아요, 아이들 클 때는 다 그렇지요. 애들 금방 크더라고요.”하고 말았다. 이후 조심하는지 소음은 점점 약해지더니 어느 날부터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무슨일인지 급하게 이사를 갔다고 했다. 친해질 시간도 없이. 하마터면 이기적이고 못난 이웃이 될 뻔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힘차게 뛰며 달리고 있을 그 꼬마가 참 궁금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