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려

신 영 애

   거칠고 긴 사막횡단에 성공하였다는 어떤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자들이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흔히 갈증이나 뜨거운 태양, 혹은 외롭게 홀로 걷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실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발 속으로 들어왔던 작은 모래알이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아, 정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어떤 일들이, 더구나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어떤 일들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간혹 있다. 수건을 각을 맞춰 개켜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는 사람, 음료수를 마시다 만 컵은 바로 씻어야만 개운하다고 느낀다는 사람, 직장에서 어느 한 사람이 이유 없이 자신을 괴롭혀서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사람. 길을 걷다 보면 그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마시다가 만 음료수 컵들. 빨간 불인데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 지하철에서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지만, 실상은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자꾸만 신경이 쓰이면서 예민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정말 많은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걱정의 대부분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따지다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감정이 상하고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작고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생각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이 너무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이며 이 일만 해결되면 살 것 같은데, 정작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상대방은 본인의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아니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한다. 그런 사소한 갈등이 시작되어 더 큰 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나만 옳다거나 상대방은 잘못되었다기보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다.

   아는 지인이 아파트 분양을 받았는데 30층이라고 하였다. 아파트가 몇 층높이인데 30층이냐고 물었더니 꼭대기 층이라고 했다. 여름에 덥다고 하던데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은 층간 소음으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위층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면 족하다고 했다. 처음 층간 소음으로 고생하던 때를 얘기하면서 밤 11시만 되면 아이들이 뛰어다녀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였다. 위층과 자꾸 부딪치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너무 예민한가 자책도 하고, 층간소음을 별 분쟁 없이 마무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결국, 큰 소리로 싸우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어색한 분위기와 자신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 때문에 괜히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하면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큰아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층간 소음으로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자주 올라와 어른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까치발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까치발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여 뒤꿈치를 들지 않고 걸으려고 해도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걸어온 습관으로 아킬레스건이 퇴화하였다고 했다. 결국, 큰아이 친구는 종아리부터 발뒤꿈치까지 절개하여 아킬레스건을 늘리는 수술을 하였다. 종아리 부분에 흉터를 남기게 되었다면서 아이 엄마는 속상해했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층간 소음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뉴스에 나온다. 신발 속의 작은 모래알처럼 시시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러한 일들은 사실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주위를 불신하고 미워하고 협박하고 비난하면서 우리들 자신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신발 속의 모래알을 털어도 다시 신발 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괴롭힌다. 사막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데 한번 털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아무리 조심을 하려고 해도 어느새 신발 속으로 미움, 시기, 질투, 불신, 비난 같은 모래알이 스며들어올 테니까. 물론 각자 얘기를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다. 사막을 걷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커다란 돌덩이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작은 알갱이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미움과 불신의 모래 알갱이는 과감하게 신발을 벗고 털어버렸으면 한다. 물론 또다시 모래가 들어올지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조금만 생각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모래 그거 털어내면 그만인데, 뭘 그리 힘들다고 그러지? 하는 생각보다 차라리 옆에 있다면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내어 주면 어떨까.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털어내도 신발 속으로 자꾸 들어오는 작은 모래 알갱이. 분명 의도적으로 신발 속으로 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들어와 우리를 지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큰 역경도 잘 이겨낸 사람이 간혹 작은 모래알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큰 희생을 치르면서 지켜온 우리의 많은 행복하고 소중한 것을 겨우 작은 모래알 때문에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 마음속의 작은 모래알을 잘 털어내고 견디어 낼 때 비로소 즐거운 인생의 사막 여행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혹시 나는 누구 발의 모래알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