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신 영 애

  그 아이는 몇 개월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7살 남자아이였다. 해마다 반복되는 숫자와의 지루한 싸움에 염증을 느낀 내가 이직을 하겠다고 면접을 보러 간 유치원 입구에서 마주쳤다. 두 손을 배꼽 앞에 고이 모은 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나를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손님에 대해 인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얘기를 듣고 나오면서 흘깃 쳐다본 창문 너머로 다리에 보조기구를 착용한 체 조금은 불편한 모습으로 앉아서 열심히 꿈나무를 그리고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나는 5세 병아리 반의 보조 담임교사였다. 첫 출근 하던 날, 어색한 분위기와 낯선 환경 속에서 등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 입구에서 부모님 손을 잡고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이 꽉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면서도 신발은 벗지 않은 체 멀뚱멀뚱 서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손을 내밀고 맞이하는 거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온 젊은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자녀가 있는 엄마 선생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이들은 나를 신기해했고, 고맙게도 내가 보내는 손길에 별다른 경계심 없이 다가와 주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 등원 맞이를 모두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려던 순간, 어디에선가 다급하고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였다. 화장실에서 응가를 했는데 뒤처리를 부탁하는 소리였다. 나는 무슨 반이냐고 물어본 다음, 해당 교실로 가서 선생님께 얘기했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다른 아이가 어질러놓은 교실 바닥을 닦으면서 나더러 대신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아이에게 다시 가서 선생님이 지금 조금 바쁘시니까 내가 도와주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그 아이는 고개를 앞으로 숙여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기 교실로 돌아간 아이는 점심시간에 막대사탕 하나를 갖고 왔다. 신세를 졌음에 대한 인사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겨우 7살인 그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나는 꼭 안아주었다.

  그 이후 툭하면 그 아이는 화장실에서 ‘병아리 반 선생님’을 불러댔다. 선생님들은 담임선생님이 하도록 못 들은 체하라고 했지만, 내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 같아서 나는 수업에 큰 무리가 없으면 가서 그 아이의 뒤처리를 해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도 은근히 내가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는데, 생리적인 현상을 두고 아이를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비위가 약한 내가 밥을 먹다 말고 뛰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불러서 가보면 아직 멀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또 어느 날은 아침에 아빠한테 혼났다는 얘기도 했다. 변기에 앉아서 “선생님, 거기 계세요? 선생님, 어디 가지 마세요.” 하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쫑알대며 했다. 하루는 왜 나만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제가 싫으세요?” 한다. “아니, 싫은 건 아닌데. 사실 선생님도 비위가 약하거든. 그런데 네가 계속 나만 찾으니까 그렇지.” 그러자 “나는 선생님이 좋은데. 앞으로는 선생님 식사하시면 알려주세요.” 한다. 심장 한쪽이 저릿해 왔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서도 내가 미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둘 때까지 유치원에 와서 일과를 얘기하다가 갔다.

   지난 추석에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작년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24시간 엄마를 병간호했던 일을 얘기했다. 그 일에 대하여 언니는 평생 살면서 엄마를 위해 한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엄마를 가까이에서 보살피면서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엄마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아주 작고 소소한 일에도 엄마는 아기처럼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다가도, 어느 때는 눈을 흘기면서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어느 때는 먼 허공을 바라보시며 슬픈 눈을 하고 계셨다고 했는데, 어쩌면 엄마는 언니의 병간호를 받으시면서 당신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얻는가. 어느 날의 어느 한순간을 함께 했던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가슴 저 밑에서부터 따뜻해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친근한 손길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행여 잠을 설치지나 않을까 자리를 돌봐주며,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도 세심한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게 되는 작고 사소한 일들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힘들고 외로울 때 가까이에서 손을 잡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누군가의 삶에 의미 있는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소중한 존재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우리들을 사랑으로 키워주신 것처럼, 그 아이에게 내 손길이 필요했던 것처럼, 언니가 엄마의 마지막 길을 보살펴 드린 것처럼. (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