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의 또 다른 세상

신 영 애

   7년 가까이 쓰던 핸드폰이 고장이 났다. 낡은 핸드폰을 바꾸라는 온갖 유혹을 뿌리치면서 고집해 오던 핸드폰이었다. 정확히는 핸드폰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충전이 되지 않았다. 전날 분명히 밧데리가 22% 정도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대로였다. 급한마음에 가까운 KT 대리점을 갔다.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많은 연락처와 자료들이며, 그 외 사진들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져 왔다. 대리점에서는 충전하는 곳이 불량이라면서 가까운 삼성 대리점에 가보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대리점에 전화했다.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친절한 음성은 토요일이라서 오후 1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12시 50분 정도였다. 큰일 났다. 주말 동안 핸드폰은 방전될 것이고, 그러면 KT 대리점 직원의 말처럼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데이터는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울 것 같은 심정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막 매장의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오늘 영업은 끝났습니다. 월요일 다시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아, 안 돼요.” 나도 모르게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직원에게 “충전이 안 돼요. 핸드폰 속에 저장해 놓은 자료를 모두 잃어버릴 것 같아요. 충전기가 고장 났는가 봐요.” 했다. 그러자 내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하더니 너무 오래된 기기라서 단종이 되었다면서 새로운 충전기도 없다고 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별일을 다 겪을 테고 돌이킬 수 없어서 후회도 하고 심장이 서늘해지는 경험도 많이 한다지만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미 문 닫았을 시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보더니, 한 사람이 명함을 주면서 그곳에 연락해 보라고 했다. 삼성전자 제품 중 단종 되어서 그 제품의 부품이 더는 소용없어지면 그곳으로 모두 넘겨 버린다면서, 혹시 그곳에 연락하면 충전기를 구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명함을 들고 나오는데 화창한 하늘이 괜히 미워 보였다. 우선 자료를 옮기는 데까지 하기로 하고 KT 대리점으로 다시 갔다. 새로 산 최신형 핸드폰에 전화번호와 중요한 자료들은 옮기는 과정에서 밧데리가 5%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더 힘들다고 하였다. 그래도 연락처라도 옮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명함을 받은 곳으로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 모델에 맞는 충전기가 있는데 만원이라고 했다.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이었지만 만원이라도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주문을 했다. 이제 주문한 충전기만 오면 나머지 데이터도 모두 옮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기기 하나에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이 기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문득 전화가 없던 시절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연락하는 방법은 편지나 엽서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급한 내용을 알려야 할 때는 전보를 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서울에 있는 언니한테 급하게 연락해야 할 일이 있으면 우체국에 갔다. 시외전화를 신청 해놓고 한참을 기다리면 신청자의 이름이 호명되고, 공중전화 부스 같은 분리된 공간에 들어가서 소리소리 질러가며 통화를 하고는 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도 까만 다이얼 전화가 설치되었다. 묵직한 수화기를 들고 “뚜~”신호음이 들리면 동그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다이얼을 돌린다. 드르륵드르륵 그 소리가 좋아 딱히 전화할 곳이 없어도 틈만 나면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엄마는 통화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고만 있어도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온다며 얼른 내려놓으라고 성화를 하셨다. 외국에 있던 오빠와 통화를 할 때면 가까이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신기했다. 쩌렁거리는 벨 소리가 들리면 동생과 서로 받으려고 뛰어가던 일도 추억이 되어 그립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신기했다. 

   80년대 후반 직장에는 흰색이나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가 있었다. 전화기 다이얼 옆에 ‘용건만 간단히’라고 종이에 적힌 글처럼 통화할 일이 있어도 3분을 넘기지 않도록 간단하게 해야만 했다. 시외전화를 하면 비싼 요금 청구서에 누가 시외전화를 했느냐고 하여서, 지방에서 상경한 직원들은 서로 눈치 보며 조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버튼식 전화기와 움직이면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무선전화기가 나왔다. 그 이후에는 핸드폰이 나오고, 터치폰이 나오더니 바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전화가 없어도 어떻게든 소통하며 살았겠으나 앉으면 눕고 싶고,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더니 편한 세상에 길들어서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게 해 주었다. 그 작고 가볍고 편리한 기기 속에 세상의 흐름이 담겨있고, 온갖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핸드폰으로 인해 대화가 없어지고, 가까운 사람끼리도 겉도는 느낌이 들게 한다. 밤늦게까지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면을 방해하여 누적된 피로감과 시력 저하가 염려되기도 한다. 편리함을 주는 기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시간과 공간을 정하여 적당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서랍장을 여니 그동안의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내 손길이 담긴 전화기들이 예쁘게 담겨 있다.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어서 그때의 추억이 담긴 구닥다리 전화기지만 버리기에는 차마 아깝기도 하다. 남편이 보더니 골동품 되면 부르는 게 값이 될 테니 잘 보관해 두라고 한다. 핸드폰 충전기 고장으로 애간장을 녹이던 그때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계속 고공행진 중이니 이제 또 무엇이 나타나 우리를 새 노예로 만들지 궁금하지만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냥 살아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