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걸음

신영애

   “빨리 좀 걸어. 왜 이리 느릿느릿하니? 엄마하고 같이 가기 싫은 거야?” “엄마가 너무 빨리 가니까 그렇지.” “네가 엄마하고 같이 가고 싶으면 엄마 걸음에 맞춰 쫓아와야지. 뭐 하는 거야?” 바쁘게 걸음을 내 딛다가 뒤돌아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고 있었다. 함께 가려면 엄마가 보폭을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엄마는 마음이 급한가 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집에 달팽이를 키운 적이 있다. 마트에서 사 온 상추에서 나왔는데 꼬물꼬물 움직임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키우고 싶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다. 혹시 목이 마를까 봐 욕조에 물을 흠뻑 묻힌 상추를 두기도 하고, 오이도 얇게 썰어서 두기도 했다. 과일 껍질이 나오면 주변에 놓아주기도 했는데 저렇게 느릿느릿 걸으면서 언제 먹으려나 했다. 그런데 몇 시간씩 잊고 있다가 보면 상추를 갉아 먹고 가로질러 저만큼 욕실의 벽을 타고 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오이를 먹었는지 실처럼 가는 초록 똥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나날이 커가는 달팽이가 신기했다. 유리 위에 올라가도록 하여 달팽이의 이빨을 구경하기도 하고, 느릿느릿 걸으면서도 먹을 거 다 먹고 참 부지런히 움직인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달팽이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나, 사과만큼 거리를 갔어요’하는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느 날, 1박 2일 가족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살아서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어찌할까 고민했다. 그렇다고 데리고 간다는 것도 좀 그래서 야채를 넉넉하게 두고 습기도 충분하도록 분무하고 갔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아이들은 달팽이의 안전을 먼저 살폈다. 그런데 달팽이가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세상에 하룻밤 사이에 욕실을 지나 거실을 지나 집 밖으로 나갔다고? 의아해하면서 이리저리 찾았다. 달팽이를 데리고 갈 걸 두고 가서 이런 사달이 났다고 아이들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서 아이들은 달팽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선 엄마가 이리저리 다 찾아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아무리 찾아도 달팽이는 보이지 않고, 사라진 달팽이를 대신해서 어디서 달팽이를 다시 구해 와야 하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달팽이를 만나기 위해 매일 상추를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달팽이가 집을 나간 모양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느릿느릿 걸으면서 어떻게 집을 나갔는지 신기하다며 반신반의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실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죽은 채 멈춰있는 달팽이가 있었지만,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 일은 잊었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 시절 외출하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는 지쳤는지 뒤처져서 걷고 있었다. 나는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내 손을 잡고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 나는 지금 달팽이예요. (느릿느릿)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집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 했다. 자신의 생각에는 열심히 걷고 있는데 자꾸 재촉하는 엄마가 서운하다는 듯했다. 나는 하하하 웃으면서 “그래그래 달팽이 딸이니 엄마도 달팽이지 뭐. 급할 게 뭐 있어? 천천히 가면 되지.”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을 비교하고 상처받고 슬퍼하며 살기도 한다. 남들보다 늦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 가려나 하던 달팽이도 욕실에서 나와 거실 한가운데까지 걸어가기도 하지 않던가. 각자 자기만큼의 보폭이 있고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거리를 보폭에 맞춰 성실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함께 가는 길이라면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면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늦으면 어떤가. 허겁지겁 바쁘게 걸어온 인생을 뒤돌아 보니 숨이 가빴을 내가 보인다. 조금만 천천히 걷자. 그리고 함께 가자.(202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