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손길일지라도

신 영 애

   아직도 한낮의 뜨거움이 기염을 토해내던 시각. 한강 유원지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은 모습이 시간마저 정지된 듯 느끼게 하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며 정지된 시간을 흩뿌린다. 한 시간가량 달리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분명 조금 전 지나갈 때도 있던 아이였다. 열 살도 채 안 되게 보이는 외국인 남자아이였다. 자전거를 세워놓기 위해 뒷바퀴 부분에 설치된 킥 스탠드를 손으로 올리려다가 자전거가 힘에 못 이겨 자꾸만 그 아이 쪽으로 넘어지고 있었다. 꼭 다칠 것만 같은데, 도와주고 싶은데. 마음만 한가득한 채 그냥 지나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자전거 킥 스탠드를 펴려고 애쓰고 있었다. 자신에게로 자꾸 넘어지는 자전거를 어쩌지 못하고 혼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하면서 양팔을 벌린 채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마치 ‘어떡해. 왜 안 되는 것인데.’ 하는 듯했다. 저런 경우는 그냥 오른발로 킥 스탠드를 탁하고 걷어차면 되는 일인 것을.

  한강 유원지 부근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남의 일이라고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을 테고, 아이 스스로 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호자가 가까이에 없는 듯했다. 뛰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가면서 도와주는 게 맞는가 아닌가 하는 마음의 독백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다. 자신에게 다가가는 나를 그 아이가 빤히 쳐다본다. “hello, may I help you?” 쪼그려 앉아있다가 일어서며 양팔과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자신은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what‘s the matter your bicycle?” 자전거를 쳐다보며 양팔과 어깨를 으쓱한다. “OK. look at me.” 한 다음 나는 오른발로 킥 스탠드를 탁 걷어찼다. 그런데 잘 안된다. 보통 이렇게 하면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올라가야 하는데. 그래서 그렇게 계속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나 보다. 그 아이가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중얼거린다. 분명 자기도 그렇게 해 보았다는 듯했다.

  스페인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가 자연스러운 내 아이들은 나한테 혼날 때면 자기들끼리 영어로 말하거나, 친구와 스페인어로 전화를 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엄마 흉보느냐고 구시렁거렸다. 하루는 치사해서라도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전화 영어를 신청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와서 몇 분간 영어로 대화를 하는 수업이었다. 첫 일주일 정도는 쉬운 말로 대화가 되어 제법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서 그 전화를 받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영어는 겨우 읽는 정도이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영어를 배워둘 걸 하는 생각도 잠시, 어찌 되었든 말을 붙였으니 그냥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는데, 그 아이의 얼굴이 훅 들어왔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전해왔다. 고장이 아닌 듯하여 나는 일어나서 다시 한번 오른발에 힘을 주어 킥 스탠드를 힘차게 걷어찼다. 탁! 하면서 킥 스탠드가 올라갔다. 순간, 마치 국민학교 시절 달리기에서 1등 한 것처럼 기뻐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친한 사이 같았으면 오른손을 들어 하이파이브할 정도였다. 그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you can ride it.” 자전거 손잡이를 잡기 쉽도록 돌려준 뒤, “bye, 안녕”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고 있는 내 옆으로 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더니 저만치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뒤돌아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사람은 많은데,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줄 것 같은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또한, 어려움에 부닥쳐있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말을 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혹은 그녀)가 어떤 어려움에 놓여있는지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꼭 어린아이가 아니어도, 외국인이 아니어도. 내가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잘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한 발짝 내딛기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나도 그런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고, 누군가 도와주기를 간절한 눈빛으로 원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내밀어준 그 손길은 또 얼마나 따뜻하던가.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맙고 위로가 되던가. 도움이 필요할 때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고 애쓰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마음은 초조해지고, 어떤 경우에는 쉽게 해결 가능했던 문제조차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도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을 그 아이를 생각해보았다. 오늘 그 아이에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했다. 어쩌면 그 아이도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까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한강유원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202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