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간들

신 영 애

요즘처럼 겨울로 가는 길목이면 아버지는 꽁치를 한 상자 사 오셔서 마당 가운데 작은 드럼통을 두고 장작불을 피운 뒤 그 위에 석쇠를 얹어 꽁치를 구우셨다. 굵은 소금을 탁탁 솜씨 좋게 뿌려서 구우면 그 맛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 고소한 냄새가 온 마을에 퍼지면 어느 집에서는 아저씨가 안방 문을 열고 “한잔할까?”하고 아버지에게 말씀하셨고, 아버지는 얼른 건너오라고 손짓하셨다. 그렇게 잔뜩 구워서 이웃집으로 두루두루 나눠주고, 먹다 남은 꽁치는 뼈째 다져서 생선 동그랑땡을 만들어 주셨는데 어묵 같지만 절대 어묵 같지 않은 최고의 맛이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그 동그랑땡이 생각나면 엄마 몰래 들고 나가 나눠 먹었는데, 그런 나를 친구들은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아마 엄마는 다 알면서도 눈 감아 주셨으리라. 생선 요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제철 생선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는데, 생선 비린내는 싫어하면서도 아버지가 해주신 요리는 입이 짧은 나도 참 좋아했다.

  어쩌다 이웃집에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온 동네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을 어귀부터 전을 부치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고, 내 집 드나들 듯이 동네 꼬마들은 자기 엄마를 찾아왔다는 핑계로 잔칫집을 기웃거리면, 그 집안의 어르신께서 우리를 불러 기름진 음식들을 내어주시면서 천천히 먹고 놀다 가라고 하셨다. 엄마는 괜히 눈을 흘기시며 기름기 가득한 손으로 쥐어박는 흉내를 내셨다. 그때는 다 한 가족 같았다. 이웃집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였고, 옆집 아저씨도 삼촌 같았다. 김장하더라도 온 마을이 함께 모여서 했고, 수도가 없어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를 때도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한두 동이만 길어 올렸다. 요즘처럼 물이 흔하고 집안에 수도가 있는 풍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릴 때, 옆집에서는 뒤뜰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두고 감자를 통째로 넣어서 썩혔다.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썩혔는데 그곳을 지날 때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모두 손으로 코를 막고 한달음에 줄행랑을 치듯 뛰어서 지나다녔다. 감자 썩힌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할 즈음이면 썩힌 감자를 바가지로 떠서 체에 밭치고 베보자기에 걸렀다. 그렇게 며칠 두면 감자 전분이 가라앉게 되는데, 보자기로 걸러낸 감자 건더기에 가라앉은 전분을 섞어 감자떡과 감자옹심이도 만들고, 감자전도 해 먹었다. 감자 썩힌 냄새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감자떡만 좋아했다. 감자옹심이와 감자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난밤 쌀쌀해진 날씨 탓에 밖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 대신 거실에서 영화를 보면서 걷기를 하고 있었다. 10시가 훌쩍 넘긴 늦은 시각인데 갑자기 베란다 창문 밖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바깥에서는 사람들 소리가 시끌벅적하여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보니 소방차 세 대와 경찰차, 구급차도 와있고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불길도 없고 물을 뿌린 흔적도 없는 것을 보면 어찌 되었든 큰 피해가 없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소란스럽다가 베란다를 환하게 비추던 헤드라이트가 꺼지고 소방차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12층 몇 호에서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려다가 냄비까지 모두 태우면서 검은 연기가 나는 바람에, 이웃의 신고가 들어와서 소방차와 경찰차,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구급차도 출동하였다는 것이다. 인명피해는 없으니 주민 여러분들 모두 걱정하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참으로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던 그 사람은 또 얼마나 놀랐을지.

  오늘 아침 뉴스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 ‘삼겹살 굽는 것을 자제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는 이른바 ‘층간 냄새’ 사연이 보도되었다. 층간 소음뿐만 아니라, 층간 냄새도 사회문제로 대두되는가 싶어서 마음이 씁쓸했다. 특정 음식에 대하여 냄새에 조심하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하니 이는 아마도 코로나 19시대로 아무래도 집밥을 많이 먹게 되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삼겹살 냄새 때문에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파트, 빌라 가리지 않고 속출되는 갈등에 이웃 간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문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아파트를 건설할 때 가구별로 전용 배기관 등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소리나 냄새에 민감한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만의 애환은 아닌 듯하다.

  맛있는 것을 먹으려다 냄비까지 태우고, 층간 냄새로 민원이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니 문득 잊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온 동네에 퍼지던 꽁치 굽는 냄새와 감자가 썩어 가던 냄새.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맛있던 시간들. 그 기가 막힌 맛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사라져가는 맛있는 시간이 애틋해진다.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 속에 피어나던 감자떡이 먹고 싶어졌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감자떡 몇 알을 꺼내 찜기에 올린다.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