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신 영 애 

   해가 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문자를 받았다. 2년마다 한 번씩 직장 건강검진을 받게 되는데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짝수인 사람은 짝수 해에, 홀수인 사람은 홀수 해에 건강검진을 받는다. 코로나 19로 가능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미루고 미루다 지난 주말에 예약하고 다녀왔다. 진료 마지막에 치과 검진이 있는데 건강검진 센터 부속 치과의원에서 검진을 받으라고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겠지만, 주사를 맞는 게 무섭고 통증을 잘 참지 못하는 나는 아무튼 병원에 가는 게 너무 싫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진료받은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었다. 치석 제거를 해야 한다느니, 충치 치료를 해야 한다느니 한다.

   내가 제일 가기 싫어하는 병원도 치과인데 진료 시작 전부터 겁이 잔뜩 났다. 나는 접수를 하면서 가능한 한 아프지 않게 치료해주시는 원장님으로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내 이름이 불리고 들어갔더니 상냥하게 미소 짓는 여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엉거주춤 의자에 앉으면서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어찌 되었든 의사 선생님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치료하기 위해 누워서 입을 벌려 보라고 한다. 충치는 없으며, 치석 제거를 조금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그 상상만 해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아파서 안 하겠다고 했다. 자기는 이 병원에서 아프지 않게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치료 도중에 아프면 왼손을 들으라고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프다면 언제든지 손을 들 준비를 한 채 몸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렇게 힘을 주고 있으면 치료가 끝난 후 더 아프니까 힘을 빼라고 하는데, 치과 치료를 위한 각종 도구만으로도 이미 겁을 먹은 상태였다.

   치석 제거는 걱정과는 달리 정말 아프지 않게 잘 치료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잘 관리를 해 와서 충치가 없지만, 앞으로 생길 수가 있으니 어금니에 충치 방지로 레진 치료를 하기를 권했다. 충치가 없다면서 왜 굳이 해야 하느냐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남의 입속을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보다 보면 구강구조나 치아 상태 등을 보고 충치가 생길 것 같은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치아가 단단하면서 건강하지만, 나이 들수록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무엇보다 전혀 아프지 않음을 강조했다. 레진 치료를 하기 위해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몇 해 전 돌아가진 시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아버님께서 어느 날, 치과를 다녀오셨는데 의사 양반이 시원찮게 치료했는지 자꾸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읍내에 가신 김에 제대로 치료를 받고 오셨어야 한다고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셨다. 당시 큰 병원의 수간호사였던 손위 동서는 언제 시간을 내서 서울 한번 다녀가시라고 하였다. 계속 아프다고 하시는 아버님 말씀에 나는 치료 받으신 쪽이 어느 쪽이냐고 여쭈어보았다. 아버님은 마치 그렇게 물어봐 주길 기다리셨다는 듯이 이쪽이라고 하시면서 입을 크게 벌리셨다. 아버님 입속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데 그곳이 오늘 치료하신 곳이냐고 여쭈었다. 그렇다고 하시면서 의사가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뭐가 자꾸 걸린다고 하셨다. 내가 봐서 뭘 알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버님께서 아프다고 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공감해드리고 싶었다.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일 때 “조심하지. 왜 그랬어? 별거 아니네.” 하는 말보다 “많이 아프겠구나. 얼마나 힘드니? 잘 참고 있네. 괜찮아질 거야. 힘내.” 그런 한마디에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을. 어쩌면 아버님도 나처럼 치과가 무서워 잔뜩 긴장하신 나머지 당신의 불편함도 제대로 말씀하시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오신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 손을 꼭 잡고 다시 치과에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그 치과에서 흉을 볼 거라면서 다음에 가겠다고 하셨다. 다음 치과 갈 때는 같이 가서 아프지 않게 찬찬히 봐 달라고 해야겠다고 하였더니, 서울에서 내려오기가 어려우니 아버님께서 시간 봐서 올라오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버님 입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동서는 입속을 며느리에게 보여주는 시아버님이나, 그렇다고 고개 들이대고 쳐다보는 동서나 똑같다면서 놀렸다. 나는 단지 아버님의 무섭고 아프셨을 그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싶었다.

  마음의 상처든 몸의 상처든 아프면 다 위로받고 싶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아프고 힘들 때는 시간이 늘어진다고 한다. 시간이 매우 늦게, 더디게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는 고통의 시간보다 훨씬 오래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20년 가까이 다니는 내과 원장님은 주사 맞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유독 통증을 못 참거나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시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해 주셨다. 아프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내 상처를 보이지 않지만, 그럴 때 누군가가 내밀어 주는 손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온몸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레진 치료를 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아프냐고 물으셨는데, 치과 특유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어서 괜찮다고 했다. 어쩌면 치료하면서 계속해서 내게 괜찮으냐고, 아프지 않으냐고 물어봐 주었기 때문에 정말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치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끝내고 내려오니 내 입속을 다 들여다보신 선생님의 미소가 정말 친절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사소할 수도 있는 ‘괜찮아?’ 하고 물어봐 주는 그 한마디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