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엇이 들었길래

신 영 애

  퇴근해서 오니 현관 앞에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택배 상자가 놓여있다. 인절미 몇 조각, 다져 얼린 마늘, 각종 밑반찬과 잡곡들, 참기름 들기름, 그리고 땅콩 묶음과 함께 한쪽 구석에 까만 비닐봉지에 겹겹이 싸인 은행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 즈음이면 시어머님은 기침에 좋다고 누누이 강조하시면서 봉지에 몇 번씩 묶어서 은행을 보내주시고 있다. 냄새가 고약해서 먹지 않던 은행이었지만, 감기에 걸려 기침할 때 구워 먹었더니 거짓말처럼 기침이 잦아들게 되면서, 지금은 자주 구워 먹고 있다. 청국장도 그렇고 은행도 그렇고 그 특유의 냄새가 꼭 어머님 냄새 같아서 싫어했었다.

    결혼해서 처음 부딪힌 문제가 먹거리였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다는 강원도 음식과 달리, 전라도 음식은 풍부한 양념과 강한 젓갈 냄새로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별다른 투정을 하지 않지만, 수저를 금방 내려놓는 남편을 위해 시어머님께 구조요청을 보냈다. 애써 농사지은 작물로 정성 들여 만드신 반찬들 속에는 어머님의 잔소리가 수고로움이라는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되어 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오랫동안 품고 계셨다가 보내주신 것처럼. 말씀 끝에는 항상 음식도 못 하는 둘째 며느리 때문에 당신 아들의 밥상이 행여 부실할까 걱정이 가득 전해왔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게 농사지어 보내시는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막 담은 생김치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계절마다 온갖 종류의 김치가 오고,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들이 더없이 좋은 먹거리로 왔다. 고구마 줄기가 그렇고, 호박잎이 그렇고, 토란대가 그렇다. 조선간장과 고추장, 된장은 말할 나위도 없었고, 여름철 옥수수는 밥보다 더 많이 먹었다. 미워하며 정든다더니 어느덧 나도 조선간장으로 끓인 미역국이 맛있고, 나물무침에는 들깨를 넣어 깊은 맛을 내며, 젓갈 듬뿍 들어간 김장김치를 찾는다. 포기째 꺼내 밑동만 잘라낸 체 밥 위에 척 걸쳐 먹는 김장김치는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그뿐인가, 멥쌀가루를 물에 이겨 풀을 쑨 다음 물김치를 담가놓으면 여름 내내 입속에서는 시원함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김장을 끝내고 남은 무는 굵은 소금항아리에 그대로 푹 꽂아두면 맛깔스러운 짠지가 되는데, 총총 채 썰어 짠맛을 뺀 다음 갖은양념으로 무쳐 내거나 볶아내면 두고두고 맛있는 반찬이 된다.

    산후조리를 해주신다고 오셔서 딸만 둘이나 낳았다고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돌아오기도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신 시어머님은 그 이후에도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켰다. 수박 한입 베어 물고 후루룩 뱉어내는 수박씨의 흩어짐 같은 시어머님의 잔소리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애써 이해해보려 온갖 사유를 하던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남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생활들이 유독 내게만 파도치듯이 꿀렁거리고 힘겨웠던 세월이다. 그러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어느 날, 내 손을 잡으시고 그동안 나에게 모질게 하셨던 마음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하듯이, 마디가 굽어진 주름이 가득한 거친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리며 “애썼다, 애썼다.” 만 무슨 주문처럼 계속 말씀하셨다. 당신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속 깊이 박힌 옹이 같은 생채기를 보듬어달라고 하시는 것 같았던 어머님의 잔소리도 끝났다. 동시에 삐딱한 마음으로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했던 미움 가득한 마음도 차츰 퇴색되어 갔다.

  밭농사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들이 많고, 농부의 발소리에 농작물이 자란다고 한다. 땅과의 약속을 위해 깜깜한 새벽에도 찬바람과 함께 시작하고, 여름이면 더워지기 전에 밭으로 나서야 하며, 이른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질긴 삶의 여정을 그리듯이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거둬들인 배추와 무로 김치를 담가 보내주신 김치 통 안에 맛이 잘 베도록 반질반질한 누름돌 하나가 얹어있다. 그 누름돌을 보면서 마치 어머님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서러움 같은 것을 꼭꼭 눌러 담아 함께 보내 주신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싸아해 온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고 난 뒤의 질척거림 같은 감정들이 문득문득 살아나기도 하지만, 봄날의 따뜻하고 눈이 부신 햇살 아래서 차츰 건조하게 말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택배 상자를 열어 펼쳐놓고 보니 마음속에만 있으면 몰랐을 어머님의 미움과 온갖 잔소리가, 사랑이라는 묶음으로 얼기설기 한가득 담겨 온 것 같아 애틋함이 어른거린다. (20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