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래 정말

                                                                   신 영 애

 그날따라 술을 한잔하고 불콰해진 얼굴로 늦게 귀가한 남편과 이 시국에 웬 술이냐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답답한데, 뉴스를 봐도 좋은 소식이 없으니 세상이 사람을 쓸쓸하게 한단다. 꿀물을 준비하여 건네주면서 얼른 마시고 자라고 툴툴거렸다. 그때였다. ‘삑삑’ ‘삑삑’ ‘삑삑’ 계속해서 현관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남편을 쳐다보았다. 아이들도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 야심한 밤에 누군가 우리 집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술에 취한 남편은 꿀물을 마시다 말고 심드렁하게 ‘이 시간에 누구야.’ 하면서 현관으로 갔다. 나는 겁이 나서 남편의 팔을 잡으며 ‘열지 말아요. 누구냐고 물어봐야지. 경비 아저씨한테 인터폰으로 연락해보자’ 했다. 그 사이에 또다시 ‘삑삑’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 렌즈 구멍으로 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귀를 가만히 대고 입에 검지 손가락을 세우면서 남편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인가 봐’ 하는 소리에 남편은 ‘귀신이 어디 있어.’ 하면서 현관문을 열려고 했다. 맞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으려고. 그런데 요즘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밤중이기는 하지만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연락했다. “아저씨, 우리 집 앞 복도에 사람이 있는데 자꾸 우리 집 문을 열려고 해요.” 경비 아저씨는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5분 정도 시간이 흘렀으나 마치 다섯 시간이 흐른 듯했다. 문밖에서 웅성웅성 사람 소리가 들려 렌즈 구멍으로 보니 경비 아저씨가 보인다. 현관문을 열었다. 웬 낯선 남자가 제집 안방인 듯 현관문 옆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경비아저씨는 위층 사장님이라고 했다. 한참 전에 올라가시는 걸 보았는데 여기로 착각하신 듯하다면서 부축해서 모시고 갔다. 그 사람도 사는 게 퍽퍽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연말이 다가오니 위드 코로나 속에서도 모임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모임에서 술은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숨통이 트인 듯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된 듯했다. 물론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마시지 못하더라도 그런 모임에서의 한 잔의 술은 소원했던 만큼 어색했던 시간과 긴장감을 풀어준다. 누군가는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도 하겠지만, 우선은 서로의 고충을 헤아려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죽하면 마시랴. 술과 동고동락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는 초등 동창 친구는 술만 마시면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보고 싶다, 친구야.’를 외친다. 직장생활의 애환과 인생의 고락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세상사는 거 뭐 별건가. 그렇게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하고, 알아가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이 늘어나면서 가구당 주류 소비량도 상승하였다고 한다. 누구 말마따나 술꾼들에게는 오조 오천만 개의 술을 마실 이유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야 비단 술꾼들에게만 그럴까.

 현상만 보면 술에 취해 한밤중에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퍽퍽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의 무게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답답한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현진건은 이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후 100년이나 지났건만 여전히 세상은 답답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 후보들의 행보가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국민을 위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고 목청 높여 얘기하기 바쁘다. 예전에 우리에게 희망을 얘기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멍들어 있는 불신의 사회는 우리에게 한잔 술을 권한다. 위층 아저씨도 그런가 보다. 그래도 자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초인종을 누르기가 미안했는지 버튼을 누르고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던 것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생각했을까. 차가운 바닥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자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여 픽 웃음이 났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아유. 왜들 그래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