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손이 많이 가

신 영 애

     날씨가 추워지면서 베란다 밖에 있던 화분을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했다. 무심했던 시간의 흔적이 마른 나뭇잎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행운목 잎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면장갑을 끼고 마른 수건에 물을 묻혀 하나하나 닦고 나니 금세 잎이 반짝반짝 윤이 나기 시작했다. 집안에 들여놓은 화분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마른 잎을 솎아내고 주위를 정리하고 닦아주는 동안 반나절이 갔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빛을 내니 보기도 좋았다. 무엇인가 정성 들여 가꾼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꽤 오래전 TV에서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나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던 적이 있다. 탤런트 고두심이 친구들 모임을 다녀온 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목주름을 보면서 영양 크림을 듬뿍 바르던 장면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굳혀진 주름이 하룻저녁 영양 크림으로 쉬 펴질 리도 없건만 자신의 목을 박박 문지르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이었다. 나도 거울을 보면서 내 목의 주름살을 쳐다보았고 그것이 나이 듦의 징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도 모르게 거울을 볼 때면 목의 주름살을 유심히 보기도 했다. 손이 가는 만큼 나이가 젊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 손을 기다리는 집안에 쌓여 있는 일들이 있다.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도 나지 않으며, 돌아서면 다시 쌓여버리기가 일쑤다. 며칠만 손을 놓아도 구석구석 먼지가 눈에 띈다. 부농의 둘째 며느리로 시집을 와보니 농사일은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온통 손이 가는 일들이 지천이었다. 식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농사는 정말 손이 많이 갔다. 특히 밭농사는 무엇인가를 파종하기 위해 흙을 다듬고,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면 새가 쪼아 먹지 않도록 돌봐야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열매가 맺히면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도록 기둥을 세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수확할 때면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다치지 않도록 거둬들여야 한다. 논농사는 남에게 맡길 수 있으나 밭농사는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청소년기까지는 그런 귀한 농작물로 웬만하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대추와 밤과 잣을 듬뿍 넣은 약식, 송편이나 시루떡, 경단, 수수 팥떡, 김밥, 식혜에 넣을 고두밥까지. 주변에서 사람들이 뭘 그리 손이 많이 가는 음식만 만드냐고 해도 생각해보면 내 손길이 가장 많이 가던 그 시절이 행복했다. 

   옛 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10살까지 백설기와 수수 팥떡을 해주었다고 한다. 생일날 아침에 삼신할머니께 삼신상을 올리며 무탈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달라고 소망의 기도를 했다. 백설기는 신성한 백색 무구한 음식이고, 수수 팥떡은 붉은 팥고물을 묻힌 찰수수 경단으로, 빨간색이 액(厄)을 물리친다는 토속적인 믿음에서 비롯한 풍습이다. 아기 생일에 수수 팥떡을 해주어야 자라면서 액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은 한국 전역에 걸친 것으로 아기가 10세가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준다고 한다. 특히 수수의 붉은 색이 귀신을 물리치고 액을 방지한다는 생각에서 수수로 떡을 해서 동서남북으로 한 조각씩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수수는 목숨 수(壽) 자가 둘씩 들어가므로 자손이 번성하고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 때문에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 때마다 수수 팥떡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면서 아이들이 인생의 굴곡에서 넘어지지 않고 큰 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시루떡과 경단을 접시에 담아 아이들에게 이웃집으로 인사를 보내면, 이웃 어르신들은 “넘어지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그저 자식을 위한 작은 소망 하나였다.

   아이들을 위해 주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면서 남편은 굳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꼭 집에서 해야 맛있는 게 아니라면서 그냥 사 먹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때로 성가신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상대방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내가 먼저 챙겨주고 나서주는 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자신의 마음속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고 챙겨준다는 것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또한,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정성이다. 알아서 잘하기를 기다려 주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 전에 알뜰살뜰 마음을 써준다는 것이 어디 마음만 먹는다고 그리 쉽게 되는 일이던가. 요즘은 내가 주위로부터 고마운 손길을 많이 받고 있다. 아이는 출근하기 위해 옷 때문에 고민하는 나의 코디네이터가 되기도 하고, 회사에 가지고 가야 할 서류를 잊지 않고 챙겨갈 수 있도록 잠들기 전 식탁 위에 메모를 남겨두기도 한다. 코로나 19로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다 보니 식탁 위에는 항상 아이가 챙겨놓은 마스크가 놓여있다. 찬장 높은 곳에 올려놓은 접시를 꺼내기 위해 의자를 밟고 올라서면 혹시라도 내가 넘어질까 봐 걱정된다는 듯이 “잠시만, 잠시만”을 외치며 달려온다. 아무튼 손이 많이 간다고 하면서. 나는 그 소리에 행복해진다.

  그렇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어쩌면 수고로움을 직접 감수하는 일이고, 정성이며 사랑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자동 보장되니 앞으로도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