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

신 영 애

  아버지가 먼 외지에서 돌아오시면 창고에 있던 자전거는 마당으로 나오게 됐다. 녹슨 부분을 닦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은 다음 자전거 안장을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툭툭 치셨다. ‘음, 아직은 탈만하구나.’ 하신 듯 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외출 하시는 날이면 그날 저녁은 항상 고기와 맛있는 반찬이 상에 올라왔고, 가끔은 과일 상자나 우리들의 군것질 거리들이 자전거 뒷자리에 실려 들어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쯤 이었다. 자전거 뒤 안장에 앉아 아버지 허리를 꼭 잡은 채 장 날 구경을 갔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만난 친구 분들과 술을 드시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안장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고 오셨다. 혹시라도 내가 넘어지기라고 할까봐 꼭 잡으라고 당부하시면서 불콰해진 얼굴로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셨다. 비록 노래를 부르고 계셨지만 왠지 쓸쓸해 보여서 나는 아버지에게 착한 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다 올 때 즈음이면 아버지는 나에게 자전거 벨을 울려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우리집 마당에서 잠자던 누렁이가 일어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우리를 반겼다. 나도 자전거를 직접 타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좀 더 크면 타보라고 하셨다. 언젠가는 나도 아버지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작은오빠가 중학교에 가면서 선물로 자전거를 받았다. 이전까지 내가 자전거를 탄 기억은 아버지가 외출 하실 때 데리고 가면서 태워주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먼 길 출타중이면 자전거 타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오빠에게 자전거가 생겼으니 잘 보이면 나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면서 어떻게든 오빠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 오빠가 자전거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여 집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배우게 되었다. 오빠는 그럴 듯하게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면서 바퀴가 구르는 과정과, 브레이크를 잡으면 자전거가 멈춰서는 원리를 설명해 주었지만, 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에 그런 얘기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빠는 뒤에서 안장을 잡고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며, 그럼에도 넘어져서 무릎이나 손바닥에 피가 나면 그러면서 배우는 거라고 위로했다. 나는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여 멀리 타고 갔으면 하고 바랬고, 내리막길도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자전거를 잘 탔던 사람처럼 손잡이를 잡지 않고 타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안장에 올라앉기도 했으며,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 오빠가 너무 멋있어서 나도 빨리 자전거를 배워서 오빠처럼 묘기도 부리고 싶었다. 오빠는 그렇게 잘 타기까지 넘어지고 다쳤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겁을 주기도 했지만, 충분히 연습하면 잘 탈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무렵, 내리막길에서 나무와 부딪쳐 팔에 깁스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한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던 기억만이 아련할 뿐이다.

  자전거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달리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살면서 자전거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어린 시절 다친 기억 이후로 자전거를 많이 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안장에 오르자 자연히 페달을 밟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안장에 올라앉을 수는 없지만, 가끔은 두 손을 놓고 타면서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주말이면 양재천을 따라 서너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도 했는데, 내 귀를 스쳐가던 바람의 속삭임과 아버지 등에 안겨 달리던 추억, 그리고 시간을 내어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던 오빠 생각도 많이 났다. 자전거를 탈 때 어릴 적 다쳤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손에 땀이 차기도 하지만, 그래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길을 가다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속도를 줄이면 자전거는 멈추거나 넘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넘어지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타고 갈수가 있는지 참 신기했다.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자전거와 함께 하면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믿음과, 살면서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다. 커서가 깜빡거리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어릴 적 자전거를 배우던 때가 생각이 났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여 결국 스스로 달릴 수 있었던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많이 읽고 써봐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을 갖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작은 오빠가 몇 번 가르쳐준 것만 믿고 잘 탄다고, 괜찮다고 하다가 꼬꾸라지고 다쳤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자만하지 말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일어나는 법을 알 수 있듯이, 어떤 실패나 실수가 없이 무엇인가를 한 번에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루고 싶은 무엇을 오래도록 간직한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고, 또한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런 열정이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그래미상을 세 번 수상한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 위더스는 “‘괜찮아’를 거치지 않고 ‘훌륭해’에 다다를 수는 없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정도가 아닌 ‘이만하면 괜찮은 정도’일 때에도 칭찬이 필요하다고 했다. 넘어지고 다쳐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는 내게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었던 나의 가족처럼. 대부분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하니 섣부른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한발 한발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싶다. 오늘도 나는 자전거 안장에 오르며 양 손을 어깨에 올려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잘 하고 있지?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