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습관

신 영 애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강릉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분이 기차를 타기 쉽도록 내려준 곳은 청량리역의 후문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출입문 입구 중앙에서 머리는 언제 감았을지 추측하기도 힘들고 계절에 맞지 않는 누빔 옷을 입은 남루한 행색의 남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고 있었다. 딸아이 보기가 민망하여 눈을 돌리면서 역사에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도 아무도 통제를 하지 않음을 투덜거렸다. 그러자 딸아이가 대뜸 “엄마와 나는 MBTI 유형이 많이 다른가 봐” 한다. 그러면서 그 아저씨 몸이 불편하니까 휠체어에 앉아있는 듯한데 단지 행색이 그러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그 아저씨도 화장실을 찾았을 테고, 누군가에게 물어봤을 테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지나가거나, 행여 자신한테 그 아저씨의 더러움이 묻기라도 할까 봐 회피하면서 갔을 거라는 거였다. 생리현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현상인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 그 아저씨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었는지 어른들은 추측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속으로 뜨끔하였다. 마치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그런 얘기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은 MBTI 유형 같은 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고 했다. MBTI 유형은 옳다 그르다, 혹은 틀리다 맞다가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 그 MBTI 유형을 검색했다. 나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족을 보호해야겠다는 상황에서는 내가 냉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달려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미리 방어하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강릉에서 우리는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항에 갔다. 철 지난 바닷가였으나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묵고 있는 호텔 직원에게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하였더니 주말이라서 더 그렇다고 하면서 안목항은 계절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도 못하는 내가 바다는 참 좋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무엇인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한 모퉁이에 바다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을 준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강릉에서는 코로나 19 확진자가 아직 없다고 하였으나, 그래도 서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적당한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잊지 않았다. 안목항은 차에서 숙박하는 사람들로 밤늦게까지 시끄러웠다. 그들 주변에 쌓여있는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떠날 때는 잘 정리하고 가겠지 하고 믿어 보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강릉역 입구에는 안면인식 열 체크와 손 소독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차에 오르고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다섯 칸 정도 앞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부채로 옆자리의 누군가에게 계속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직은 기차에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고, 여름 끝자락이라 그다지 덥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계속 부채질을 하고 있어서 의아한 마음으로 엉거주춤 일어나서 바라보았다. 그 아주머니의 옆자리 남자분은 지친 듯 어깨는 축 처진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딸아이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느 젊은 남녀가 통로 맞은편 쪽의 의자에 자리 번호를 확인하고 앉았다. 그러다가 그들도 나처럼 그 아주머니의 부채질을 눈여겨보더니 뭐라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혹시 코로나 19 확진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니나 다를까 그 젊은 남녀는 짐을 주섬주섬 챙겨 들더니 기차 통로로 나갔다. 아마 거기에서 계속 서서 갈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슬며시 얘기했다. 청량리역에서 딸아이로부터 상대방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혹시 남모를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조심스러웠다. 그러자 아이는 “아마 코로나 확진자라면 분명히 책임자가 뭔가 조치를 취했겠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엔 오히려 그분이 거동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한다. 순간 머릿속에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과 같이 느낌이 들면서 멍해졌다. 세상을 나의 수준에서 바라본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로 들이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어른들은 정답이라는 허울 속에 핏대를 세우며 힘주어 말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고. 청량리역 출입문에서 본 그 남자를 피해 가자고, 열차 안에서 옆에 앉은 아들인지 남편인지 모를 사람에게 계속 부채질을 하는 그 아주머니는 개별이동을 해야 했던 거라고. 그러나 그건 정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였다. 내 아이는 나의 말을 존중해주고 공감하고 격려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름날 저녁 붉게 타는 노을에서도, 코끝을 간지럽히고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서도 우리는 ‘의미’와의 씨름을 해야 한다. 그 속에 삶의 은유가 있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뜻이 있으며, 교훈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섬세한 마음결을 가지고 민감하게 자연이, 세상이, 사람들이 걸어오는 말을 들어야 한다. 나는 타인과 자연과 주변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과 의미를 두었는가 생각했다. 혹시 무감각하거나 무감동한 건 아닌지. 행색이 남루한 그 아저씨를 보고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나, 기차 안에서 그 아주머니의 행동을 보고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한 것이 마치 나의 고정된 습관 같아 부끄러웠다. ‘마음의 습관’이라는 책을 쓴 심리학자 아치발트 하트는 마음에도 습관이 있다고 하였다. 습관은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무의식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좋은 점만 보고 있다면 겸손한 것이며,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면 교만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면을 놓치고 단편적인 한 장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이와 강릉 여행길에서 나는 문득 어떤 마음의 습관을 지닌 사람인가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폭넓은 시각과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생각을 전환하는, 그러한 열린 마음의 습관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일깨워 준 여행이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마이어(Myers)와 브릭스(Briggs)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성격유형 검사 도구이다. MBTI는 시행이 쉽고 간편해 학교, 직장, 군대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외향-내향(E-I), 감각-직관(S-N), 사고-감정(T-F), 판단-인식(J-P) 등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른 결과에 의해 수검자를 16가지 심리 유형 중에 하나로 분류한다(다음 백과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