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애

    납골당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며 유난히 햇살이 쨍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이 쉽게 가셔지지 않았다. 잘 할걸. 잘 해드릴걸. 두 딸은 내게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은 결국 눈물을 쏟게 했다. 살갑게 구는 딸이 아니었음에도 이제는 마음 편히 쉬어갈 곳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른손을 이마에 받치고 양미간을 찌푸린 체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짧은 투병 기간 동안 한밤중에 여러 번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호출을 받아서인가 모두 덤덤한 듯했다. 아니 그들도 속으로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겠지. 이제는 따뜻하게 안겨 투정 부리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슬프겠지. 만만한 핑계처럼, 사느라 바빠서 엄마를 잘 찾아뵙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명치끝에 걸려서 찌르르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독 예쁨을 많이 받았던 나지만 어쩐 일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동안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표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남매와 덩그러니 남겨진 엄마에게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하는 고단함이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듯 했다. 곧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써야 하는데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계집애가 배워서 뭐 할 거냐고 하셨다. 팔자만 세진다고 입을 모아 엄마를 몰아세우던 집안의 어르신들. 그러나 한의원댁 할머니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엄마를 채근하셨다. 엄마도 그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하셨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 어쩌지 못하고 계시는 듯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시절이 나에게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나를 응원해주던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누구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여 엄마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었다. 여고 시절은 나에게 있어서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게 했다. 엄마를 생각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집안 어르신들에게도 보란 듯이 바르고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차지한 우울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밝고 활달했던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렸다. 사소한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고 마음에 담아두고 털어내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렸다. 졸업 후 서울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자연스레 고향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 지금도 내 형제들은 나는 원래 얌전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래 그런 사람은 없지 않은가. 형제들을 이해하고 잘 어울리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나는 그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긴 세월 각자 살아가는 동안 나는 물 위의 기름처럼 그들 속에서 겉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울지도 않는다고 혼이 났던 기억과 함께 엄마는 내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단지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서운함. 마치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던 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벽을 더욱더 단단하게 세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연로해져 가는 엄마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얌전하고 말이 없던 아이는 어느덧 엄마 앞에서는 의젓하고 점잖은 딸이 되어있었다. 가족이기에, 가족 앞에서 힘든 내색 한번 없이 그저 애틋하고 믿음직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참고 이겨온 세월. 그렇게 억누르며 살아온 감정은 엉뚱한 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 화를 내며 반대하는 나에게 “너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왜 이리 화를 내는 거냐?”며 오히려 섭섭함을 드러내던 엄마.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울며 매달리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김 서방 보기 미안하다며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던 엄마. 나는 오히려 아직도 엄마는 나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소리치며 화를 냈었다. 나는 엄마에게 손님이냐고 어처구니없이 대들던 못난 딸. 엄마가 병원에 입원 해 계시는 동안 두고두고 내 가슴을 후벼팠던 사실. 일주일마다 엄마를 보러 가면서도 편하지 않던 내 마음의 응어리.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고 생각했다. 착한 딸, 우애 좋은 형제가 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골당 아래에서 우리는 이방인처럼 각자 자기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가난했던 그 시절 우리를 사랑했던 엄마에 대하여. 자식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들의 엄마에 대하여. 형제들과 떨어져서 객지에서 혼자 살아가는 둘째 딸의 안부를 늘 걱정하였다는 엄마에 대하여. 나는 그들에게 항상 이방인 같았는데.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 밑에서 올라오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나에게도 좋은 엄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