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애

  퇴근길. 조금 출출한 것도 같고 뭐가 먹고 싶은 것도 같다. 다들 목적한 곳으로 서둘러 가기 바쁘다. 슈퍼에 들러 고기를 샀다. 집에 가서 구워 먹어야겠다. 며칠 전 냉장고를 보았을 때 고기가 없음을 확인했다. 고기를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이건 비상시국 같은 현상이다. 아이들이 고등학생 시절, 아침에 소고기 한 덩이 구워주면 그것으로도 밥 한 공기 뚝딱 먹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사는 김에 넉넉하게 맛있는 부위로 골고루 샀다. 집에 가서 먹을 생각에 기분도 좋다. 체중계가 나한테 잘못하지만 않으면 된다. 예를 들어 너무 진실하다거나 솔직하다거나. 그래서 체중계를 의심하고 고장 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누군가는 맛있으면 영 칼로리라고 한다. 물론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체중계를 다시 신뢰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해보니 남편이 먼저 고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들어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식탁위에는 고기와 야채, 마늘, 쌈장을 차려놓고 보니 남편이 중요한 게 하나 빠졌다며 냉장고 문을 연다. 미네랄워터.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고 적당히 감정을 이완시켜주고 상대방에게 가졌던 경계심을 해제시키는 자연적인 위로의 물. 그렇게 맛있는 고기와 더불어 목을 축여주는 맑은 물과 함께 남편과 마주앉아 주거나 받거니 먹고 마신다.

  이제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고 느닷없이 땅이 솟아오르려고 하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간다. 어디로? 노래방으로. 남편이 먼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노래를 예약해 놓는다. 이때 최소한 세 곡 정도는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첫 곡을 부를 때 다음 곡을 예약하고 나머지 두곡을 부를 때 박수치며 함께 호응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변수가 발생한다. 바로 100점이 나올 때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경쟁구도로 돌입한다. 갖은 기교와 액션으로 100점의 고지를 향하여 열창한다. 나도 통제할 수 없는 음이 이탈을 해버리면 큰일이다. 상대방은 100점이 나오는데 나는 아무리 열창하여도 계속 저조하다면? 그때는 그냥 가차 없이 상대방이 예약해 놓은 곡의 번호를 모두 취소한다. 계속 100점 나오는 상대방을 보면서 상대적인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맛보는 것은 노래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본인이 예약해 놓은 곡을 삭제 당하기 싫다면 너무 잘 부르면 안 된다.

  그렇게 한 시간정도 부르다보면 주인 사장님이 보너스 타임을 넣어주는 것을 확인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내기를 한다. 물론 사장님이 보너스 타임을 주지 않거나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직접 가서 정중하게 말씀드리기도 한다. 상대방이 100점 나오면 만원씩 주기로. 아, 적극적이고 화려한 열창이 필요한 때이다. 음 이탈을 조심하고 음정 박자에 주의하여 최대한 멋들어지게 불러야 한다. 오늘은 남편이 승리했다. 3만원을 잃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함. 남편의 노래실력이 일취월장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노래방에서 얻은 수익금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남편과 함께 3차로 포장마차 횟집을 간다. 물론 3만원어치 한도 내에서 3차를 즐기려고 하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순간이 오면 그건 순전히 물주가 책임져야 한다. 누가 노래방에서 100점을 받으라고 그랬느냐고. 그건 잘못한 것이다. 3차를 마치고 나오면서 흐뭇해 하는 남편과 알딸딸해 있는 나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는다.

  “고기가 잘 못했네.” “고기가 왜 맛있고 그러냐고.”

  냉장고 안에는 사랑이 가득 쌓여 있다. 사랑을 한꺼번에 다 사용하면 안 된다. 뭐든 소중할 때 지켜야 하는 법. 사랑도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다 사용하고 나면 그 다음이 허전하므로 적당히 조절해 가면서 사랑을 즐겨야 한다. 오늘도 사랑을 먹고 내일도 사랑을 먹다가는 자칫 사랑에 체할 수 있다. 사랑이 소화되어 내 몸에 스며드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최소 하루정도는 시간을 주어야 사랑에 체하지 않는다. 남편은 매일매일 사랑이 고프단다. 나는 매일매일 사랑을 준비한다. 우리는 사랑 예찬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