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애

둘째 아이가 고3 끝나갈 무렵,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친한 친구 말마따나 내 속에 본디 흥이 있는 것인지, 아님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것인지 음악과 관련된 것에는 늘 배고픈 하이에나 마냥 기웃기웃했다. 친정 작은오빠를 보면서 악기 하나쯤은 잘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던 터였다.

결혼 전에는 주로 등산을 하거나 볼링, 자전거타기 같은 스포츠를 즐겼다. 결혼 후 제일 먼저 내가 접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큰아이가 두 살 때쯤 이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는 매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몇 달 동안 쳐서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피아노를 배운다면 처음부터 간단한 곡으로 배우는 것으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피아노를 배워 어쭙잖은 실력으로 가끔 가족들에게 피아노곡도 들려주었다. 아이들 생일날이면 생일축하곡을 쳐주기도 하였고 신나게 동요를 부를 때면 반주를 쳐 주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나 혼자 좋아하는 곡을 연습 삼아 주야장천 매일 치기도 했다. 가끔은 성가를 쳐보기도 했는데 성당에서 듣던 오르간과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좋아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피아노는 거실 한쪽에 자리만 차지하는 모습으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요즘은 그저 간단한 악보 정도 겨우 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늘 뭔가를 배우고 싶었던 차에 우연히 영화 ‘위플래쉬’를 보게 되었다. 그 통쾌하고 짜릿한 전율에 나도 드럼이 배우고 싶어졌다. 마침 집 가까이 수서청소년수련원에서 드럼 강좌가 있어서 일주일에 두 번 퇴근하고 한 시간씩 배우기로 맘먹고 등록을 했다. 드럼 역시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처음 한 달간은 스틱으로 강약만 계속 연습하는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한마디씩 곡을 연주하게 되면서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가 수능이 끝나 함께 다니자고 꼬드겨 둘이 등록해서 같이 다녔다. 드럼 수업 끝나고 밤늦은 시각 집까지 걸어오면서 열심히 배워 함께 연주하는 얘기도 했다. 삼성의료원 근방을 걸어서 집으로 오면서 서로 마음의 얘기도 나누었다. 둘째는 나보다 더 재미있어 했고 성실하게 배웠다. 이러다가 드럼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얘기도 했었으니까.

잘하지는 못했어도 즐거워했었다. 그러나 회사 일로 잦은 야근이 계속되면서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뭐든 한 가지를 진득하게 오랫동안 하지 못한다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피아노, 드럼, 볼링, 요가, 자전거, 헬스, 등산 등이 그랬다. 그런 취미를 시작하면서 준비하였던 준비물들이 집에 쌓였다. 뭐든 시작만 하면 남들처럼 척척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인내와 고통의 연속이었을지는 헤아려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득하고 오랫동안 묵혀야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시작만 크게 해놓고 늘 꼬리가 잘렸다. 위플래쉬를 보면 주인공 앤드루가 최고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다가 스틱을 잡은 손가락에 피가 묻어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재미있으면, 얼마나 좋으면 저 정도로 할까 생각했다. 나는 피는커녕 굳은살조차 박히기도 전에 끝내버렸으니 재능이나 소질하고는 상관없이 순간적인 호기심이 컸던 것 같다. 주위에서 내가 드럼을 배운다고 했더니 색소폰에 장구에 난타, 창까지 본인들이 배우고 있거나 앞으로 배우고 싶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뭐든 3년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했는데 3년은커녕 3개월도 제대로 넘겼다는 이가 없다. 작은오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기타 하나로도 즐겁게 사는데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오늘도 기웃거린다. 비록 한 가지를 쭉 이어가지는 못해도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자화자찬이다. 아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중이다. 하다가 그만두면 아니함만 못하다는데 요즘은 한 만큼 이익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시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나를 위해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