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20-06-12 06:32

ㆍIP: 220.xxx.205

나의 거울, 타인

김상훈

생각해 보면 그 어떤 타인도 항상 나의 일부였다. 내가 생각하는 잣대에 비친 타인은 비록 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나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하여 내가 쥐고 있는 나의 잣대조차 낯선 존재인 동시에 전혀 다른 타인과 동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습게도 나는 아직 삐걱거리는 生의 계단을 밟으며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사람처럼 종종 썰(舌)을 푼다. 확실히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십 년 동안을 배우 수업 기간으로 삼았다. 그 기간 동안 누군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와도 나는 천연덕스럽게 백수라고 답했다. 나를 아는 이들이 대신 말해주지 않는 한 나는 끝까지 백수였다. 당당하게 배우라고 말할 만큼 품이나 격이 갖춰지지 않아서였다. 더 중요한 본질은 배우다워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배우답지가 않다. 답지 않다는 것에 대한 본질을 필설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요소나 걸리는 부분이 있다. 간단하게, 연기만 잘 하면 될 일이지 다른 게 무에 있으랴 싶어도 결코 그렇지가 않다.

늘 목격하는 거지만 확실히 묵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면 무엇인가 꽉 차는 느낌을 준다. 등장 횟수가 적고 대사가 적어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훌륭한 조연이 주연을 압도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제법 긴 세월 동안 배우생활을 해오면서 종종 목격하는 것이 있다. 대충 익은 것들의 가벼움이다.

배우 생활 10~15년 차 정도 되면 흔히 중닭이라고 부른다. 햇병아리 껍질은 벗었지만 완숙 단계까지는 아직 먼 길 위에 서 있는 배우를 일컫는다. 그쯤의 경력이면 가장 왕성하게 혹은, 빈번하게 출연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연출자들 역시 많이 부르는 층이다. 연출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을 때여서 중닭쯤에 이르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배고픔을 이겨내는 에너지가 분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배우로 뜰 수도 있다는, 아주 희망적인 미래도 엿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자주 보이는 광경이 있다. 연습 도중에 후배의 연기를 끊어 몸소 실연을 보인다든지, 구석에 끌고 가서는 호되게 야단을 치며 마치 모든 연극의 고뇌를 자기 혼자 지고 있는 양 일장 연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훈육은 곧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곤 마치 큰 어른이 어린아이를 엄하게 다스리는 것처럼 심한 모욕감과 굴욕감을 주는 행태를 종종 펼친다.

예술 집단의 특성상 후배를 가르치는 것은 사실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우리도 줄곧 그래 왔으니까. 한데 이 글의 핵심은 바로 그거다. 줄곧 그렇게 해온 것, 그것이 오늘날 타인을 통해서 내 눈에 비친 내 과거 모습의 일부라는 것. 생각해보니 참 부끄럽다. 내가 그렇게 설칠 때 한 수, 두 수 위에 있던 선배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가끔 연습을 참관하러 왔던 원로 연극인들의 시각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연극학 박사처럼 줄줄이 쏟아내던 이론들 하며 나만의 것일 수밖에 없었던 사적 관념, 개념 따위까지 들이댄 것을 생각해보니 참 우습기 짝이 없다.

국문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습작 기간을 평생으로 잡았다. 지나친 자학 또는 위선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 때의 어리석은 짓인지 아집인지 모를 세월로 신춘문예와 문학 월간지에 혼신의 힘을 다해 도전했다가 붓을 꺾었다. 등단의 깜냥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겸손치 못한 자가당착이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을 움직인 가장 본질적인 화두는 막상 출신 학교 따지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었으니 과거의 아집과 현재의 내려놓음이 문학에 대한 정체성에 약간 혼란이 오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시인이라는 견장이 재봉틀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등단에 대한 성취감과 희소성은 떨어지고 양적 팽창과 더불어 저급화의 평준화" 라고까지 혹평한 문학 칼럼을 본 적이 있다. 반론을 제기하게엔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고 나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감 이백 프로다. 그렇다고 신춘문예에 대한 맹점과 그 허(虛)에 대해서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곳은 순수성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 글의 결론이나 다름없는 말이 되겠지만 남의 글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 때 나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곤 한다. 나도 저랬겠구나. 맞아, 저랬어. 이러한 자성과 함께 그럴수록 나를 더욱 옥죄는 것이 있다. 더 습작에 몰두하고 제발 착각하지 말자, 다. 등단을 하고 책을 낸 뒤에 나는 자성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남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평생을 예술에 온몸을 바쳐온 사람들과 무림의 세계엔 오늘도 글 한 줄 앞에서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앞에 겸손하게 머리 숙이고 매순간 비명횡사 하는 내 글에 대해서도 깊이 머리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문학에 대한 내 습작 기간은 평생이다.

< 잠시 인사드립니다>

우선 수필촌 작가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지난 몇 개월 위원장이라는 직에 어울리지 않게 자리를 비웠습니다.
급작스럽게 눈부터 시작한 몸의 균열이
허리, 좌골, 엘보까지 이어지면서 치료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몸을 혹시 시킨 인과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치료에 전념하겠습니다.

가능한 글 쓰는 작업과 폰, 컴 사용을 자제하라는 요청에
제 개인 공간을 제외하곤 거의 활동을 멈추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 주시고 하루빨리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자리가 크든 작든 자리라는 것이 늘 무겁게 작용합니다.
마음은 항상 수필촌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자리를 지켜주시는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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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화

2020-06-13 00:02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더위가 매일 기분이 상할 정도로 괴롭힙니다
위원장님께서는 긴 시간을 병원에 계시는 군요
가서 뵙지도 못해 대단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빨리 완치하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연극을 하는 배우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안력이 심하군요
그러나 위원장께서는 그 세계를 버티고 계시니 참 대단하십니다
아마도 마음씨가 곱고 인내력 때문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김상훈	인사드립니다. ^^	10/25 05:29

정찬열

2020-06-13 12:47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벽란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때에 가장 중요시한 시력에서부터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여러 곳이 불편하여 고생을 많이 하시는 시군요

한참을 배람 하다 보니 “문학의 문자도 모르던 이들이 넓은 문을 통과해”
“시인이라는 견장 하나 달랑 달곤 떠들 때 나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곤 한다.”
“나도 저랬겠구나. 맞아, 저랬어. 라는” 문구에 제 자신인 것만 같아 얼굴이
붉어지며 더욱 노력하고 습작에 몰두하여 제 자신을 자성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6월에 접어들어 좀 수그려 들 듯 한 코로나 가 또다시 시끄럽습니다.
부디 건강에 유념하시고 불편하신 몸 잘 추스려 쾌유되시길 기원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


김상훈	인사드립니다.^^	10/25 05:30

한영택

2020-06-13 06:32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한해, 때 이른 더위에 어제는 이젠 장마철로 접어드는 거 같습니다.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지 않는 법,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 저하에 회복력 또한 더디니 특별히 건강관리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젊었을 때 열정적으로 하던 사회생활도 정년이 되면 그만두고 쉬라는 것이
이유가 있겠지요?

예술인의 세계에서도 일반인이 잘 모르는 고뇌를 작가님의 글을 통해 잘 알게 되는군요.
평생에 있어서 각자는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때에 따라서 자신의 능력, 생각과는 달리 특정집단에 대한 관례나 방식에 따라 순응하며 구성원을 형성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어느 세계든 약자는 강자의 비위를 맞추며 생존하는 법, 예외는 없다 하겠습니다. 경우야 어쨌든 주어진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 늘 공부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떻든, 문학에 대한 내 습작 기간은 평생이다. 글을 쓰는 한 말입니다 ㅎㅎㅎ
심신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김상훈	인사드립니다. ^^	10/25 05:30

장선희

2020-06-17 16:40

김상훈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배우도 연극인도 문학인도 열심히 하시는 위원장님
훌륭하시고 대단하신 예술가이십니다
몸이 건강해야 모든걸 할 수 있습니다
작가방은 염려하지 마시고
건강부터 치료하시고 돌아오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상훈	인사드립니다.^^	10/25 05:31

이길선

2020-06-25 17:32

5개월을 결석함에 아직도 제 공간이 살아있어 흔적을 남기며 고맙게 생각하며,
먼저위원장님께 보고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달려왔습니다만,
위원장님의 병원생활 소식을 접하며 놀라고 걱정합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김상훈	인사드립니다.^^	10/25 05:31

박목철

2020-07-26 14:35

아직 불편 하시다니, 어서 툭툭 털고 날으시기 바랍니다.
사회는 곳곳에 장벽을 치고 나름의 텃세를 부리는 풍조가 있지요,
제가 체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무시를 꺽으려고 3급, 2급, 1급의 도전을 했답니다.
사람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박사급의 자격을 갖추면 박사 대우를 하는 세상입니다.
문학, 글은 결국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일이고 설득하는 일 입니다.
원칙이라고 내 세우는 이론은 다 부질없는 하품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연극배우야 말로 최고의 예술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다시 윗트 넘치는 글을 많이 대하고 싶답니다. 위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