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7-19 18:49

ㆍIP: 220.xxx.44

연기論

벽란 김상훈

"연기는 꿈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가 어느 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한 말이다. 물론 그의 수상 소감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소감 내용의 골자는 그랬다.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까지 인문학적 사고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적 사고까지 총동원하여 분석하고 고찰을 거듭하여도 그 정의가 좀체 내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사랑이나 인생에 대한 정의 따위다.

수십 년 간 연극배우 생활을 해오면서 그동안 동료 배우들에게 연기란 과연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선뜻 대답하는 배우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이 축척될수록 연기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나 같은 경우 대충 40년쯤 지나고 나니 정의는커녕 아무 것도 표현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은 마치 한창 앳된 젊은이가 인생이란 이런 것이고 저런 것이다라고 막 떠들 때 백 세쯤 된 노인이 그냥 헐헐헐 웃는 광경과 매우 흡사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다.

러셀 크로우의 말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왜 꿈의 여행이라고 했을까. 그의 말에 미진하게나마 촉(觸)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연습과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촉들.

처음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은 일정 기간 대본 읽기(리딩)에 들어간다. 작품에 따라 기간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략 한 달이다. 이 것은 연극에서 통용되는 과정이다. 그 한 달 동안의 리딩은 희곡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습득하는 여정이 되는데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役)에 대한 책임과 분석, 상대 역과의 감정 교류, 대사 속에 감춰진 이면(심리)까지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정이입(디테일)이 되면 대사의 고저와 장단에 따라 연출이 요구하는 것과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조율해야 한다. 촉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다가온다.

일단 시공간이 현실과 다르다.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와 전통적 풍습과 계급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며 부여된 나이가 다르다. 이것이 일차적 촉이 된다. 곧이어 분장과 의상을 입으면 이차적 촉을 느끼게 된다. 조명과 세트가 뒷받침 된 무대에 오르면 곧 삼차적 촉과 맞닥뜨리게 된다. 극 속의 시대와 인물로 화(化)함으로써 곧 꿈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배우 수업이나 메소드 연기법이 아니더라도 배우 스스로 신기에 휩싸여 광기 어린 연기를 펼칠 때가 있는데 이는 연습 과정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그때만의 신기다. 배우를 흔히 무당에 비유하곤 한다. 실제로 유사한 점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독특한 눈빛이다. 그 안광이 매우 강렬해 배우들 눈빛은 대체로 광기가 서려 있다. 그때 완벽하게 몸을 감싸는 것이 바로 촉이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촉이란, 과거든 미래든 그 누구로부터 유체 이탈 됀 혼령과의 접촉을 뜻한다.

꿈의 여행이란 배우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 모른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실제로 완벽한 세트를 갖춘 공간에서 주 조연과 수많은 엑스트라가 호흡을 맞추다 보면 꼭 연기가 아닐지라도 실제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착각의 기운이 현실로 이완될 때 글라디에이터의 막시므스! 러셀 크로우가 느꼈던 그 촉, 바로 꿈의 여행이었을지 모른다. 어느 해 연극제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나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연기란 과거와 미래의 혼령이 현재로 빙의하는 것이라고 생긱한다."

- 벌목 당한 기억 사이로 -

김상화

2019-07-21 16:02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한마디로 참 멋집니다
배우(광대) 생활을 하신 제가 40년이 되셨다니 놀랍습니다.
40년이면 강산이 4번 바뀌었습니다.
또 반평생을 배우 생활을 하신 겁니다
대학교 때 취미로 연극 활동반에 들어가 조연을 1번
엑스트라 1번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피끓는 나이라 여자들 사귀는 재미로 한 것이지요. ㅎ
재미있고 연극에 관한 진수를 배워갑니다
더위 잘 이겨내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상훈	답장이 한참 늦어 죄송합니다. 40년 세월이 그저 헛된 느낌입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하게 각인된 것은 어슴프레나마 예술인이 공인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인지된 것 같습니다.	7/23 02:05

전병일

2019-07-22 14:21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 태풍으로인한 하수구는 다복구하셨는지요?
"연기란 과거와 미래의 혼령이 현재로 빙의하는 것이라고 생긱한다.
멋진 말씀인것 같네요...
배우 연기자는 태어날때부터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봐요
다방면에 팔방미인 이어야만 관객들을 사로잡을수 있으니까요
한주의 시작 입니다
행복이 넘쳐나는 한주 되세요~~~


김상훈	애석하게도 아직 복구 중입니다. 이번 태풍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연의 위대함과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참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도요. 그저 껍데기만 두텁게 옷을 걸친 야매 배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ㅎ	7/23 02:08

장춘희

2019-07-24 11:39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인생은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어린시절에는
자신있게 떠들고 다녔는데, 이제는 인생이 뭐라는 건지
정말로 절 모르겠습니다.
소녀시절 명작을 읽고나서 세상을 다 아는 듯이
인생에 대해 자신있게 떠들고 다녔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무지했고 지금이 더 안다고도 못하겠습니다.
인생, 사랑, 꿈, 모두가 벅차고 무겁습니다.


김상훈	그잖아도 작가님이 안 뵈어서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집에 우환이 생긴 건 아닌지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시니 곱으로 반갑군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시를 쓰면 쓸수록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살아가면 갈수록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 듭니다.	7/24 23:02

이정연

2019-08-01 16:13

위원장님!
연기인생 40년 되셨다니 놀랍습니다.
무대위에서 사셨을 수 많은 삶이 존재하시기에
앞으로도 또 다른 꿈의 도전에 설레임이
가득하시겠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김상훈	대선배들에게 비하면 게임이 안 돼지요. 다만 지금 글 작업에는 많은 도움을 얻는데 그토록 싫던 그 경험이 오늘날 재산이 될 줄은 종말 몰랐습니다. 오랜만이군요.	8/2 15:23

깊은 江

노을, 참 이상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