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5-15 03:51

ㆍIP: 220.xxx.15

빛나는 일등병

김상훈

# 칼싸움

평소 노을이 저물 때까지 벌이던 전쟁놀이가 일찍 승패를 본 탓에 아이들은 모두 하산을 했다. 골목에 모여 대빵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먼저 칼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대빵 고집이 여간 아니었다. 칼은 칼다워야 한다며 칼집까지 만들라는 지시였다. 그러니까 예전에 우리가 패했던 원인 중의 하나가 칼이 칼답지 않아서였다는 궤변까지 늘어놓곤 판자로 된 땜빵 녀석네 담 한 장을 뜯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웃기게도 그 선두에 땜빵 녀석이 앞장 섰다. 자기네 집이니 어느 쪽 담장이 허술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땜빵네 부모가 없는 틈을 타 판자 한 장이 우두득 뜯겨나갔다.

칼의 길이는 약간 제멋대로였지만 대빵 칼을 조금 길게 나머지는 모두 비슷한 길이로 만들었다. 톱과 사포질로 칼 모양을 다듬었더니 제법 그럴듯했다. 사실 칼집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미군 피엑스에서 나온 박스였다. 대빵 아버지가 미군부대를 들락거리는 사람이었던 터라 박스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대빵 말로는 계급장 없이 그냥 높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동네 어른들 말로는 하우스 보이라고 했다. 하우스 보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대빵 아버지니까 우리는 당연히 높은 사람이라고 여길뿐이었다.

판자가 모자라 다는 만들지 못했다. 결국 절반 정도만 폼나는 칼과 칼집을 지급받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준비해 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내일 전투에 빛나는 일등병을 맡은 병사는 역시 또 나였다. 연탄싸움과 달리 칼싸움은 아주 위험했고 평소 뜀박질 잘 한다는 이유로 나는 또 지목당해야 했다. 나는 굳은 각오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내일은 진짜로 빛나는 일등병이 되겠노라고.

하나같이 참 가관이었다. 귓구멍들은 있어 어디서 들었는지 죄다 망토를 걸치고 나타났다. 얼핏 보아선 저쪽 동네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방패랍시고 그 무거운 솥뚜껑을 들고온 놈, 갑옷이라며 몸통에 박스를 두른 놈, 칼은 칼인데 혼자 감당하기도 버거울 기둥 비슷한 것을 들고 온 놈은 칼이 아니라 창이라고 우겼다. 창이라고 하기엔 너무 두껍고 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긴, 아무튼 애매모호한 무기였다. 과연 저걸 제대로 한 번 휘두르기나 할는지 의문이었다. 망토도 각양각색이었다. 대부분 집에서 쓰던 보자기가 주였지만 나는 할머니가 민화투 깔개로 쓰던 군용 모포였고 대빵은 천막을 찢어 둘렀는데 압권은 오줌싸개였다. 늘 지도를 그리는 자기 이불 홑청이었다. 오줌 자국으로 등고선이 어지럽게 마구 그려진 홑청이었다. 느낌상, 오늘 전투도 조짐이 영 찝찝했다.

신호와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세 패로 나뉘어 적진을 향했다. 어느 쪽이든 무조건 연탄으로 쌓은 본진을 먼저 부수거나 적 대빵만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저쪽은 우리가 늘 두려워 하는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여포, 하나는 장비에 가까운 아주 무식한 놈 둘이 버티고 있었는데 승패는 거의 그 두 놈들 때문에 갈리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내 임무는 어떻하든 그 두 놈을 이겨야 하는 것이었지만 힘으로나 배짱으로나 내가 이길 여력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용장, 지장, 덕장이 있다면 그놈들은 당연 용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 정도 분별력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나는 밤새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고 그 묘안을 실행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힘이나 배짱이 없으면 당연히 머리로 상대하면 된다는 것을 또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었다. 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어릴 때부터 너무 총명했던 것 같았다.

우선 선두에 서서 마구 설치는 여포부터 때려잡아야 했다. 마침 우리가 밀리던 차에 여태껏 고함만 지르고 칼을 뽑지 않았던 나는 분연히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여포와 맞서 초식 딱 한 번 펼쳤을 때 여포는 내 칼에서 튀어나오는 이물질에 혼비백산을 하였다. 단 한 번의 초식이었지만 그 이물질은 여포의 얼굴과 옷에 마구 튀었다. 옆에서 칼을 휘두르던 장비와 그의 졸개들은 모두 멈칫 거렸고 하나 같이 눈알이 돌출되었다. 그런 멈칫거림과 표정은 우리 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작을 멈추곤 모두 내 칼을 주시했다.

똥이었다.
그 이물질은 내 칼끝과 몸통에 아주 진득하게 묻혀있던 똥이었다. 그 똥 칼 앞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는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포와 장비를 쫓아버리고 졸개들을 물리쳤다. 내가 쫓아가면 심지어 무섭다고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대빵과 우리 병사들은 오직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사실 그것은 칼싸움이 아니라 똥 뿌리기였다. 똥 탄알도 얼마든지 있었다. 칼집에 미리 반쯤 채워놨기에 탄알이 떨어질만하면 얼른 칼집에 칼을 꽂았다 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고로, 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여세를 몰아 적진까지 돌격한 우리는 똥 칼 앞에서 절절매는 대빵을 포로로 잡았고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적장의 박스 갑옷은 온통 피 투성 아니, 똥 투성이었다.

저물지 않은 노을 속에 눈이 내렸다. 신기했다. 마른하늘에 소나기가 내리면 호랑이 장가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노을이 있는데 눈이 내리면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무슨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는 기사처럼 칼을 높이 들었다. 빛나는 일등병의 똥 칼을.

그 오랜 군사정권 시절을 우리는 계급장과 똥 칼 앞에 주눅이 든 채 살아야 했다.

* 연탄싸움이 1부지만 내용이 길어서 생략하고 2부인 칼싸움만 올린다.

- 벌목 당한 기억 사이로 -

장춘희

2019-05-15 09:37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본래 앞장군은 힘만 세고
무식하고, 뛰어난 두뇌를 가진
참모의 계락에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나는 건데, 선생님은 어린시절 부터
이미 뛰어난 참모셨습니다.

어린시절 음력설이 지나고 진눈깨비가
오는 날 한복을 입고 골목에 나가서
놀다가 꼬리치마를 흙탕질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여자아이들이 노는 게 고작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인데 비해 사내아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전쟁놀음을 했으니
어른이 되면 한번쯤은 실전에 나서봐야 하나봅니다.
그래서 전쟁아니면. 군대, 것도 아니면 국가와
국가끼리 공갈이라도 처보나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김상훈	사실 그 당시엔 여포와 장비가 참 무서웠습니다. 그 두 놈이 너무 무서워 더 심하게 칼을 휘둘렀던 기억이 나는데 그 덕분에 놈들은 유달리 인분 세례를 더 많이 받았지요. ㅎㅎ 그 당시의 민초들이 그랬던 듯싶습니다. 데모를 해도 극렬하게 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런 심리가 내면 깊이 깔려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차라리 그때가 그리운 것은 오늘날 내 조국의 어지러움 때문인지 모릅니다.	5/17 20:57

정찬열

2019-05-17 15:23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우리세대의 군생활은 아니고 어릴적
동네 어린이들과의 전쟁놀이인가 아니면
작가님의 직무상의 각본을 올려주신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배람을 하다보니 realism한
서술문으로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
읽고 나니 1부의 "연탄싸움"까지 궁금해집니다.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기온차가 심한 무더운 날씨에
항상 건강고하 편안 하시옵기를 손 모음니다.


김상훈	좀 그랬을 겁니다. 문맥상 1부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텐데 뚝 잘라버리고 올렸으니까요. 사실 수필이 너무 길어도 방문하시는 분들껜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제 딴엔 배려 차원에서 생략했습니다. ㅎㅎ 참 덥네요. 벌써.....	5/17 21:00

김상화

2019-05-18 12:37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r김상훈 위원장님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컴퓨터 앞에서 혼자 배꼽을 쥐고 웃는 모습을 본 처는
무슨 경사스러운 것이 있소 하고 묻는다.
그것도 모른 체 혼자 10여분간 웃기만 했나 봅니다
갑자기 병정놀이에 똥이 튀어나오니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오늘을 힐링시켜준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김상훈	언젠가 조위제 이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연인즉슨, 새벽에 무심결 들쳐본 빛나는 일등병을 보고 똥 칼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새벽에 거실에서 혼자 마구 웃었노라시는...... 다행입니다. 웃으셨다니.^^	5/19 17:00

김경렬

2019-05-19 08:31

개구쟁이들의 전쟁놀이가 웃음을 자아 냅니다.
신나셨네요.
어째되었든 격침을한 완승이었군요.
축하 합니다.똥칼!


김상훈	짧은 댓글이지만 격침, 완승, 똥칼!에 제가 반대로 웃습니다. ㅎㅎ 다녀가심 감사합니다.	5/19 17:02

김종덕

2019-05-23 19:25

김상훈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그 때의 위력으로 장군이 되셨어야 독재를 타도하고 세상을 평정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정도의 판단이면 무슨 쿠데타를 잡지 못했겠습니까. 일등병이 아니라 장군으로 계급을 바로 잡아야 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상훈	그잖아도 우리 영감님 소원이 육사에 들어가는 것인데 눈 나쁜 것을 핑계 대고 피했습니다. 실은 몸 속에 흐르는 광대피를 주체할 수가 없었던 탓이 크지만 그런 조직은 이상하게 싫더라구요. ㅎㅎ 그냥 자유롭게, 넉넉하게 살고픈 욕망이 제 몸을 감싸고 있었으니까요.	5/24 18:58

수염

화두, 그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