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8-20 14:57

ㆍIP: 220.xxx.15

갈숲에 앉아

김상훈

하늘의 저 희귀한 무연(無緣)의 이치를 모르면 샛강의 푸르름이 바다로 가는 이치를 어찌 알랴. 부둣가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니나노 가락에 가슴 시림이 없으면 어찌 인생을 논할 것인가. 인생을 종종 부운 몽(浮雲夢)이라고 설(舌)을 푸는 이유는 이생(二生)의 올곧은 경작을 위해 견고한 탈곡기를 준비하라는 전생의 권유가 아니었을까.

인생을 흔히 소풍 길에 비유하거나 부운 몽에 비유하지만, 이왕 부모님 몸 빌려 세상 빛을 보았으니 죽음 앞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옹골찬 생의 경작을 해야 하거늘 돌이켜 보니 생은 이미 잘 구획된 논밭이었는데 연장 투정으로 세월만 허비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생이 이미 정해진 코스로 가는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 그만한 허무도 그다지 환영받을 일은 못 될 것이다.

출세와 성공이라는 가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튼튼한 종마의 샘플을 모아 놓곤 누구나 그렇게 돼야 한다고 강요하는 시대, 어쩌면 이러한 사회적 DNA 구조가 진화를 거듭하여 먼훗날 우리는 출세와 성공이라는 두 줄의 직조만 짜는 기술자가 될지도 모른다. 자궁 안에서 부여받았던 인간 본성의 DNA가 퇴화하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진짜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이러한 조짐은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지금도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비상식이 상식처럼 통하고 비이성적인 일들이 아무런 제제나 통제가 없이 횡행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본능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오직 출세와 성공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온다면 이 시대는 그저 애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얘기가 약간 옆으로 새는 듯해 다시 본론으로 가 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에 대한 도(道) 틴 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제법 오래전 조선고승한시선(朝鮮高僧漢詩選)이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신선함에 한동안 매료되었었다. 그러나 거듭 읽어볼수록 대부분의 결론은 우리 인생을 부운 몽이나 소풍 길로 결론을 맺는 것들이어서 현생에 대한 지표 따위는 없었다. 인연으로 이 세상에 왔으니 어떤 허상이나 욕망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자연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럽게 살다 가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역설적으론 그것이 곧 지표가 되겠지만, 어째 좀 싱겁기 짝이 없는 느낌이랄까. 지나온 길 잠시 멈춰서 돌아보면 지금까지 무엇인가에 이끌려 온 듯한 느낌이고 어느 것 하나 뜬 구름 잡는 일 아닌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사악한 것도 결국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이니 그것은 그것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고 말하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도 실은 획일적인 부분이 있다. 가령, 모든 인간이 성직자로 산다면 그게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탄이 있어야 천사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 반대로 모두 범죄자로 산다면 그 또한 인간다운 삶이 결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전생과 현생, 그리고 이생의 삶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니 모든 삶을 뜬 구름 잡는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될 노릇이겠다. 열심히 살되 너무 높은 것만을 바라보는 삶은 되지 말자는 충고쯤으로 받아들이면 현실에서 부대낌들이 조금은 덜 무겁지 않겠나 싶다.

언젠가 들판이 익어가는 갈대밭에 앉아 하늘이 내게 준 일 몫이 과연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오래전의 나는 본래 비존재이므로 죽어서도 갈 곳이 없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 벌목당한 기억 사이로 -

전병일

2019-08-20 18:17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갈대밭에 앉아서 심오한 생각을 하셨군요
1억 5천만분의1의 좋은 DNA로 태어났으니
지금까지 이어져온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너무 높은곳도 낮은것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건 확실합니다
천국으로 갈것입니다


김상훈	중년이라고 느껴지는 나이테에 다다랐을 때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지요. 지천명 전까지 세상을 다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세상이 나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요.	8/21 16:15

장춘희

2019-08-21 10:35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인류의 정신 문화에
기여도가 높은 것이므로,
선생님의 생은 이생에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래도 지금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굉장히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리와 철학을 탄생시켜야
하겠지요?


김상훈	새해가 되면 매년 연극협회 주최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은근 기대를 걸곤 합니다. 덕분에 몇 번의 외국 구경을 가곤했는데 소위 문명국가는 지엔피나 지디피로 결정짓는 게 아니라 단연코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 첫 손가락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나의 조국을 생각해 보면 사대주의 발상이 아니라 아직 한참 먼 것 같습니다. 정책이나 행태, 국민의 문화의식으로 볼 때 말입니다. 오랜만에 나타나셔서 곱으로 반깁니다.	8/21 16:23

이정연

2019-08-21 14:51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선생님!
벌써 갈숲에 앉으시어
생.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사색으로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참으로 옹골찬 생의 경작을 해야 하거늘...깜짝놀라 뒤돌아
보았습니다.
출세와 성공이라는 두 줖의 직조만 짜는 기술자... 인간세상
콕! 찝어 주시어 시원하면서도 씁쓸합니다.
바람에 제법 선선함이 묻어납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김상훈	행간을 잘 짚으셨군요.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해법이 있었기에 참 다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청문회를 보면 이미 기술자 제조기들만 모여 있는 것 같더군요.^^	8/21 16:28

김상화

2019-08-23 00:15

인생의 옳고 그른 삶을 논 하는 글 감동입니다
바쁜일이 생겨 댓글이 늦었네요
지금 어떤 한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매우 시끄럽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국가에 빨때를 꼽고 빨아드렸는가하면
출세를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거짓을 밥먹듯 해도 되는 세상이 온 듯합니다
위원장님의 갈숲에 앉아 라는 글을 읽으며 좀더 사색하며 살아야 하는 나이건만
하도 나라 돌아가는 꼴이 잘못 되는 것 같아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위원장님
글의 댓글에 호소를 하네요
많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매우 덥네요
건강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김상훈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 전형적인 패턴이지요. 좌든 우든 그런 것에 젖어있으면서도 애꿎게도 백성들에게만 올바르게 살라고 소리치며 뒤에서는 그런 짓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지요. 다시 후진국으로 떨어짐 조짐이 있어도 권력자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축척해 놓은 것들이 많을 테니까요.	8/23 21:59

적당히라는 가치

당신은 지금 어느 별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