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에 젖은 추억의 정월

구정이 지난지도 어언10여일 귓전에서는 아련히 얼룩덜룩 색깔 띠를 매달은 옷을 입고 색종이로 만든 인조 꽃 을 단 고깔 쓰고 신명나게 장구치고 꽹 가리 치며 북치고 징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던 고향마을 추억이 말이다. 해마다 구정이지나면 어김없이 마을 에는 굿 노리가 신명나게 들리며 그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명난 굿판을 보는 생각 은 멀리 징소리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나도 크면 저렇게 신나는 굿판에 놀아보아야지 하고 보낸 세월이 지금은 환갑이 넘은 내 나이 64세 의 황혼기의 생각은 그 옛날 고향에 얽힌 추억의 굿판에서 이맘때면 불쑥 불쑥 생각이 되살아나는 것이 있다. 겨울 이 되면 으래 히 집집마다 가을걷이 지은 농사의 벼 단을 네발을 나무 목 의로 우리의 허리춤에 세운 홀테 에 나이어린 우리가 한줌씩 떼어주면 어른들은 그것을 부체 살처럼 펴서 홀태에 벼를 털고 벼는 잘 말려 소재지에서 날을 받아 수매하는 공판에 네다 팔고 추수하고 남은 집단을 한쪽 켠 에 수북 히 단을 쌓아 둔 짚단을 설날이 오기 전 까지 하루도 걸 으지 않고 새벽부터 아버님의 부름에 쌓아둔 집단을 한단씩 내려서 검불을 털어내고 짚단 한단을 두 단 으로 나뉘어 넓적한 바위를 땅 바닥위에 묻어둔 돌단에서 나에게는 벅찬 두툼한 나무 메로 수없이 치고 패서 짚단이 부드러워 질 때까지 치고 패 고 패고 쳐서 촉촉한 물을 뿌려 두었다가는 보리밥에 김치상이전부며 운이 좋은 날이라야 외할머니가 화롯불에 구어주신 김 이 그것도 귀한지라 한 수갈 이라도 나누어 식구들이 먹기 위해 우리형제동생과 32등분으로 흠뻑 장맛으로 아침을 하고 나면 아침 전에 짚단에서 털어낸 좋은 검불로 용변 후 화장지를 대신하던 시절 마음은 뛰어놀고 싶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전기불도 없는 소를 키우는 소여물 끊이고 끊이는 소죽솥에 양푼 바케스 로 물을 데워 그 시절 그토록 추운 아침 세수며 부엌의 설거지를 하던 그 생각은 지금은 돌이키기에도 힘겨운 추억의 세월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맘때면 가장 뛰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 탓에 눈이 많이 나리면 뒷산 언덕바지에서 나무로 만든 틀 위에 앉기 좋은 판자를 붙이고 두 다리를 세로로 만든 바닥에는 왕대를 쪼 개에 마디마디 다듬고 앞쪽에는 160도로 둥 구스래 불에 꾸어 만든 틀 밑에 고정한 썰매에 한척되는 손에 바로 쥘 수 있는 나무막대에 큰 대못을 대가리를 떼고 거꾸로 박아 만든 지팡이 꼬 쟁 이로 썰매치기 에 손발이 다 부르트고 얼굴이 얼어도 신나게 썰매를 지치고 그것도 지치면 바람받이 등에 가서 높게 날린 연줄을 집안 에 바람막이가 되어준 짚 둥지에 서 날리기가 고작하며 연 아연아 높이 날아 내소원이나 들어다오 속마음만 하늘높이 띄우고 띄우면서 저 건너 마을에서 들려오는 풍악소리에 신났던 시절. 휘영청 떠오른 정월 대보름이 가차 워 오면 우리 동네 마을과 건너 마을 사이에서는 서로 편 갈라 동네 청년들이 때지어서 돌싸움(투석놀이)이 한창이던 시절 에 우리 집에서는 둘째 형님이 꼭 빠지지 않고 편싸움에 가시면서 우리는 어리다고 얼씬도 못하게 하면 먼발치동네 어귀에서 우리 마을 이기라고 응원소리는 신나는 어른들의 풍악소리에 묻혀갔었다.

그때의 추억이 또 하나 있다면 손재주 좋은 나는 권총 모양으로 나무로 깎아 서 구멍 뚫은 탄피를 끝에 붙여 고무줄로 꽁꽁 묶고 커다란 못을 그쪽반대에 1~2cm남겨 90도로 구부리고 시뉘대로 목의 통로로 못의 대가리와 고무줄로 감아둔 탄피 머리에 서로 맡 다치게 간격을 고정하고 탄피의 뒤통수에 조그만 구멍을 두어 탄피 속에는 그 시절에 많이 쓰는 성냥의 머리(황)만 떼어 탄피에 가득 채워 끝은 마 게를 튼튼히 하고 소재지 에나가 구한 화약을 한 장씩 떼어 못과 탄피의 만난점 사이에 두고 고무줄로 구부려 만든 못에 탄력과 장력을 두어 총소리가 크나크게 울려나오는 총 싸기 놀이는 중형님이 가르쳐준 패싸움의 가장 두려운 무기란다 . 어쩌면 이 놀이는 먼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전쟁놀이의 발단사라고 할까? 잊혀 지지 않는 추억속의 한 토막은 지금도 귀전에 들려온 풍악소리와 함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정월대보름 날이면 형아 들은 그 싸 움 놀이에 나이어린 우리는 정월 대보름 오후부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논두렁 불태우기에 신명났고 부엌에 어머님은 오곡밥을 큰 시루에 안치시고 아버님은 집 뒤 왕대밭에 가셔서 볼품없는 생대나무를 한 짐 묶어다 집단도 사이에 넣고 텃밭에서 걷어온 가지 대며 고추 대를 함께 쌓아 마당 한가운데 쌓아두고 정월 보름날은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며 우리는 밤늦도록 논두렁 태우고 집에 들어와 서숙 쌀(조)이 주가 된 오곡밥도 먹고 새벽 4시 무렵이면 우리 형제들을 불러내어 달집 태우는 불 위를 수없이 뛰어 넘 의며 어머님은 차려둔 제상에서 자식들의 무병장수를 비셨던 것이다. 정월은 한해를 시작 하는 달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신중하게 여겨왔기에 입춘 날이면 입춘대길(立春大吉)을 기둥마다에는 뱀 입춘을 붙이고 마당을 쓸지 않는 날 칼을 쓰지 않는 날 산에는 가지 않는 날 하며 조심-스럽 게 일 년을 시작하는 선조들의 지해와 정월 설날과는 사뭇 다른 생동감 넘치는 추억의 풍경이라고 할까?

설이 집안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마을 전체가 어울러 지고 마당밟이를 하느라 풍물소리 그치지를 않았고 집집마다 돌면서 마당 굿 이며 부엌 굿이며 안녕 과 일 년 농사의 풍년과 염원을 빌어주던 부락공동체의 한 가족 같은 그 시절은 지금은 세월의 흐름이기 이전에 달라지는 세습풍습이 보름 제사까지 잊게 해버린 급격한 도시화속에 이런 대보름 민속이 점차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우리세대가 끝나면 그런 기억은 먼 나라 풍속으로 밀려 나 겠지? 현실의 과학에 잊어져가는 풍속이 아 쉬어 하면서 이제는 아련히 들려오는 풍악 소리마저 도 망상의 세계로 생각 속에 묻혀 버릴 뿐이다.

2012년 2월1일 입춘을 나흘 앞둔 어느 날 燦悅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