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 찬 열]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다 자기 때문에 이렇게 힘 드는데” 하면서 말이다. 2008년 2월 4일 구정(舊正)을 이틀 앞에 두고 아니 내 인생에 드는 환갑 이틀을 앞두고 일이었다. 전남대학교 병원 측의 긴급 전화를 받고 전남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아내의 눈앞에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나를 본 것이다. 아침에까지 아무 일 없이 출근했던 남편이 오른팔이 커다랗게 붕대에 감겨 응급조치했으니 빨리 구급차로 한강 성심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은 것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서울로 빨리 가야 한다는 황당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구급차로 올라오는 심경은 어찌했겠는가? 아무런 의식을 찾지 못한 체 다행인 것은 서울에서 아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아들을 성심병원 응급실로 오라 했단다. 대다수의 특고압 22.9kv 감전사고는 80~90%가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천운이 도왔다고 말 한다.일주일간의 응급실에서 보내고 일주일 후 일반 병실로 올라와 확인할 수 있었던 증상은 이러했다. 등 오른쪽 상부에는 지름이 대강 15~18cm 크기의 동공이 뚫렸다. 그리고 오른 팔꿈치 아래서 팔목까지는 뼈만 남은 체 갈기갈기 찍혀나갔다. 그리고 손톱과 발톱 끝이 전부 터져 성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또 머리 정수리에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뻥 뚫렸단다. 그 상태에서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아들과 아내가 내린 결정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릴 수 있는데 까지 최대한 살려 달라고 담당 주치(主治)에게 협의했다는 것이다.

정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는 우선 급한 오른팔을 살려내기 위하여 근육이며 정맥 피부 이식수술을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만약 온전한 정신을 차렸다면 그때의 오른팔을 절단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8시간~11시간 정도씩 걸리는 4회의 이식수술은 등 뒤에 커다란 구멍은 계속해서 소독만 했을 뿐 98일 만에야 급한 팔 수술이 이루어지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3개월 가까운 날들을 침대째 끌고 다니며 매일 하는 소독과 대소변을 처리해온 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백 명의 병 위문을 오신 분들의 기도가 나를 살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5개월 만에 광주 북구 용두동 희망병원으로 옮기여 2개월 입원에 3년을 그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왔다. 3년이 넘고부터 더는 희망이 없어 재활도 접었다. 남은 과제는 계속 아파져 온 오른팔의 진통을 진통제로 버티고 살아왔다. 추워지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전기 충전용 손난로며 발열 팩 등으로 겨울나기에 힘겨운 싸움이다. 그동안 해마다 몇 차례의 크고 작은 화상으로 오른손가락이 정상인 것이 거의 없다. 모두가 감각이 둔한 신경 탓으로 아침에 영하의 온도에 따뜻하게 해두면 따뜻할 때 못 느끼는 증상은 신경이 둔한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3일경 아침 온도가 영하 3도에 낮 온도가 21도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저녁때 집에 와서 발열 장갑을 벗으니 검지와 중지가 커다란 화상에 약지 끝이 화상을 입은 것이다. 자꾸만 화상을 조심하라고 당부한 아내의 말도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7년 이상 “H "병원의 통증약 처방을 받으러 간 병원 외과에서 화상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광주 남구 끝쪽에서 북구 끝쪽에 있는 병원에 치료를 받기 위해 매일 외래를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마침 동네 의원에 문의하니 치료를 해보겠다는 자신감이다. 60여 일간의 동네병원 치료는 화상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중지와 검지 손톱은 통째 빠져나가고 문드러진 손가락은 끝 마디뼈가 돌출되어버린 것이다. 그때야 의사는 봉합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은 소견서를 받아서 광주에 새로 생긴 북구 운암동의 화상병원을 갔었다. 서울 한강 성심 병원에 근무한 경력도 있는 굿모닝 병원의 김종현 원장님이 상태를 보더니 아무래도 애초 시술한 성심병원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도 손가락 때문에 서울로 가는 것보다는 지방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만 같아 오후에는 빛 고을 전남대학교 병원 외과에 의뢰한 결과 역시 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애초 시술한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손가락 손상이 급하고 당초에 나를 담당한 이종욱 교수님의 외래진료가 금요일 오후뿐이었다. 목요일 결과가 이러다 보니 다음 일주 후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급하게 서둘러 아침 일찍 입원준비를 대강하여 한강 성심병원을 찾은 시간 오후 3시 40분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와 교수님께 화상 부위를 보시더니 고개를 갸웃 둥 하신다. 조금은 힘들겠다는 표시다. 손가락 수술의 완치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의 왜소한 상태에 신경과 혈관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나는 재빠른 판단으로 그렇다면 손목의 연골 탈퇴부위와 통증에 시달려 척수 자극기를 심었던 이야기 등을 하며 차라리 팔을 잘라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한참을 생각하시던 교수님 그것이 좋겠다는 답변이다.

그때였다. 아내는 한사코 팔을 잘라 냈을 때의 문제점 등을 거론하는 것이다. 이대로 진행이 이루어지면 내가 뜻하는 바가 허사가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막았다. “자기가 결정한 결과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고” 그동안 남편을 위해 고생과 희생을 다 한 아내에게 말이다. 사고 당시 나의 병간호에 시달려 병까지 얻은 아내가 아닌가? 아내의 가슴에 상처를 크게 내버린 말 한마디의 탓일까? 아니면 잘라낸다는 충격 때문일까? 그만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충격적인 발언을 자제해왔던 나는 곧바로 후회를 크게 한다. 내뱉은 말 한마디는 주워 담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당연히 환자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고 의사판단의 결과에 따라 9일 후의 예정된 절단 수술도 원거리의 불편을 감수하시어 2일 후인 2월 29일에 강행해 주었다. 67년간의 나의 오른팔 분신은 굳어진 결심으로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병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뱉은 말의 후회

일판을 냈다. 결국

간곡히 말리는 아내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이번에 해야 하는 수술대신

장해로 찌든 팔을 잘라달라고

8년째의 고통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한참을 생각하든

의사 선생님의 결정

진전 없고 쓸모없는 고통보다

못 쓰는 손의 수술대신 팔을 절단하기로

아내의 급부 반대의 논리가 시작될 무렵

비수처럼 품은 말을 토해 막는다.

당신의

결정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토록 참아왔든 폭언의 장면이었다.

남편을 위한 희생과 결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눈물을 쏟아낸다

참아왔던 아내가

팔을 잘라내는 아픔이란 말처럼

성질 급한 나는 무척 후회한다.

뱉은 말은 파란불을 이미 통과해버렸다.

[2016. 02. 26. 기(記) ]

2016년 03월 06일 한강성심병원 병상에서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