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누님의 일생

글/ 정 찬 열

1,960대 무렵에는 응당 결혼은 맞선으로 중매쟁이에 의해서 성혼되는 예가 다반사다. 그리고 전통식 혼례를 치르고 나면 3일 후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장인(丈人) 길을 떠난다. 어린 시절에 느껴본 지금은 희수(稀壽)를 맞은 누님에 대한 혼사 후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기에 대부분 부유층은 가마를 타기도 하지만 서민층 대부분은 걸어서 다녔다. 신랑 신부의 맞선에서 결혼 그리고 장인 길도 다니던 이야기다. 전통 혼례를 마친 매형과 누님이 3일 후 장인 길을 찾았었고 2~3일 신붓집에서 머 물을 때였다. 친인척 남매들이 새로 장가든 신랑 다루기도 하며 신랑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데려간 신부를 얼마만큼 보필할 수 있는가? 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또한, 신부 댁 가족을 파악도 하는 자리라고 보아야 하는 등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고 보아야 올을 것이다. 즉 신부를 옆에 두고 신랑을 신부 측 일가친척이 테스트하는 한 방법이다. 그 후 다시 사돈댁인 신랑 집으로 보낼 때는 떡과 고기 술 등을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보낸다. 그때는 양가 부락민들에게 나누어 돌릴 만큼 떡과 고기로 선물 이바지를 해 보내는 것이 양가의 예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인(丈人) 길을 방문 후 우리 집에서도 새 사돈댁에 보내줄 고기며 인절미 떡을 하고 밀주로 곱게 빚은 청주를 준비했다. 어른들이 한 짐 될 양의 선물을 보낼 준비 하였다. 우리 집에서 농사일을 수시로 거들어 주던 한마을 사시는 김*대형이 신혼부부의 귀갓길을 따라 선물 짐을 지고 가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내가 살던 나주 군 봉황면 철천리 선동 마을에서 영산포까지가 40리 길이다. 영산포에 서는 서울행 열차가 다시면 소재지를 가는 이십 리 길 교통편이 유일하다. 그렇게 가는 계획으로 신혼인 우리 누나와 매형을 따라 눈이 많이 쌓인 겨울 길에 등 짐꾼을 따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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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침 일찍 나섰는데 저녁 늦게 등 짐꾼만 집으로 되돌아오는 이변이 생겼다. 알고 보니 평소에 시골생활만 했던 분이다. 영산포는 소도시지만 그래도 오 일 시장이며 영산포 선창의 번화가는 제법 규모다운 도시였다. 그분은 황홀경에 매료되어 앞서가는 신혼부부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야 당연히 공중전화도 있는 시절이 아니므로 한번 길을 잃으면 낭패다. 난생처음 보는 도시풍경 골목이며 사람 틈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리 집에는 내 위로 세분의 형님들이 계셨지만 두 분은 객지에 취직되어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촌 형님의 수고를 빌어 그 이튿날 그 선물 짐을 지게하고 난 술병을 들고 그 형님의 뒤를 따라나선 것은 열세 살 때의 기억이다. 눈 쌓인 눈길은 고무신에 눈에 미 끌림을 방지하기 위해 세끼로 동여매고 형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정오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영산포에 도착하였다. 나 역시 난생처음 본 영산포는 상상 이상의 신기한 세계로만 보였다. 특히 영산포에서 다시면으로 가는 길가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은 난생처음 본 기차가 달리는 신기함이다.

검은 연기를 내 품는 시커먼 커다란 기차가 말 그대로 칙~칙~폭폭 칙~칙~폭폭 하고 하얀 눈벌판을 달리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그때의 감격은 무연탄으로 달리기 때문에 거기서 품어 나오는 석탄 타는 냄새는 내 기억을 지울 수 없는 한 추억이다. 쉬면서 걸고 걸어 다시면 소재지에서도 오리 길을 걸어 ‘샛골’ 마을을 물어물어 찾아 도착한 것이다. 시계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후 네 시쯤에나 도착한 것 같다. 마을 전체는 물론 매형님 댁 역시 대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초가 삼 칸 오막살이 집이다. 분명히 첫선을 보고 오신 우리 아버님 말씀에는 부잣집 기와 고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이 웬일이란 말인가.

세월이 흘러 알고 보니 술을 좋아하신 우리 아버지에게 속임수로 그 옆집이 신랑 집인 양 기와집에서 접대하고 선을 보인 것이다. 그때야 지금의 시절이 아니기에 신랑은 신붓집을 자기네 부모님과 함께 왔었다. 신부댁은 대체로 신부의 아버지만 신랑 집을 찾아 근황을 살피고 혼사를 결정하는 예가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이처럼 속임수를 쓰는 예가 많으므로 중매쟁이의 역할이 제일인 시절이다. 누님 동네 정각 옆에는 야지(野地)에서 보기 드물고 깊은 산중에서나 자라는 제법 오래된 비자나무가 서 있다. 깊은 산중에 서식하는 비자나무가 이렇게 평야지에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적응이 어려워서일까 잔가지가 많다 보니 전정(剪定)된 가지를 잘라준 흔적이 뚜렷하다. 전정된 흔적마다 옹이로 변한 것이 어쩌다 야지(野地)로 시집온 누님 같아 마음이 찡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로 부모님 뜻을 거부하지 못하고 시집간 누님과 허장 대는 칠 척(七 尺)으로 키가 크신 매형님이었다. 얼굴은 쾌남 형인데 농촌 형이 아닌 가난한 매형님 밑에서 2남 3녀의 시동생과 시누이 그리고 양친 시부모님을 모시고 갖은 고생을 마다치 않고 살아오셨다.

동네에서 인심 좋다고 호평받고 고생하시며 2남 3녀의 자녀를 낳으시었다. 자녀 키우시느라 뒷바라지에 농사일로 손에서 호미가 떠나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마을 앞 비자나무는 60년을 더했지만, 고생으로 찌 들리신 누님의 가슴속에는 비자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으신 옹이가 박혀있다. 세월의 주름살에 그토록 밝은 처녀 시절의 모습은 검게 그을린 체 희수(稀壽)가 되셨다. 자녀가 성장하고서부터 남은 삶 조금씩 박힌 옹이가 빠지나 보다. 부디 여생이나마 건강하게 살의 시고 수복(壽福) 강녕(康寧)하시기를 빌어봅니다. 누님!

2015년 02월 21일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