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의 정자 루 (亭子 樓)

멀리 남쪽에서 북상한다는 장마의 소식이 기상 매체를 타고 들려오는 유월의 중심에서 산책을 나가노라면 사방이 꽃 세상으로 뒤 덮였던 전경들도 짙어오는 실록에 자리를 내주고 이제는 한 두길 걷고 나면 등 뒤로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면 으레 이 찾는 곳이 나무 그늘을 찾는다. 그것도 좀 오래 쉴라치면 요즘 이곳저곳 지자체에서 경쟁하듯 만들어 놓은 마을어귀정자나무 아래 만들어진 정자 이다. 그런가 하면 등산로 곳곳에 규모 있는 쉼터에는 현장에서 조립하듯 반제품을 조립 설치하는 현대판 정자루가 지어져있다.

지난 토요일 우리가족은 가끔은 하던 대로 그리 멀지않은 곳으로 산행을 준비를 하면서 맞벌이 생활을 하는 딸네의 여섯 살 배기 외 손주를 함께 데리고 가야하는 것도 처음 일이 아니었다. 토요일에 유아원을 가지 않은 탓으로 금요일 오후 유아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외할머니가 봐주기로 되어 있는 목, 금, 토요일에 해당되어 순환 도로 따라 20여분 걸리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제법 능숙한 말을 하는 외 손주는 외할머니와 함께 자는 것을 외할머니 한번만 외할머니 하고자자며 그리도 즐거워하는 외 손주의 재롱도 한목이다. 60대 중반을 살아가는 나의 일이라기보다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느낌이겠지만 손자손녀의 재롱을 반기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치도 성가심을 하지 않은 외 손주 온방을 헤집으며 자고 일어나 아침 조반도 군소리 없이 먹어주는 것이 대견스럽다. 이튼 날 집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걸려 도착한곳은 어린이나 나이 먹은 우리에게도 부담이 가지 않고 지자체에서 2년 전 힐링 길로 다듬어 진 화순의 만년산 중턱을 가로 질러 만들어 놓은 산행 길을 돌아 고향집을 지키시는 중형님 댁까지 들려오기로 계획하고 간편한 중식까지 준비하여 10시 가 넘어 집을 나섰다.

외할아버지 오늘은 어데 로 갈 거야? 질문을 던진다. 아니 오늘은 만년 산으로 갈 거야 하니 난 강천산(전북 순창군 군립공원)이 좋은데 한다. 아마도 서너 번 어릴 때 함께 갔었던 기억은 폭포수와 강천산 계곡위에 설치된 구름다리며 흐르는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팔각정에 쉬고 있을 때 다람쥐가 가까이 주는 땅콩을 받아먹든 등등의 기억이 좋았던가 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언 만년산 아래 주차장에 다 달았고 벌써 많은 차량들이 주차장 입구 까지 가득 메워있어 불가피 주차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 만년 사 사찰 공터에 차를 두고 산행 길에 오른다. 비록 경사가 심한 곳은 인공으로 데크 판으로 깔아놓고 그늘숲을 따라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만들어져있고 전경 좋은 곳에는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자에 쉼터를 만들어놓아 왕복 2시간 이면 코스는 외 손주의 성화에 정자마다 쉬다보니 3시간이 넘는 길이였지만 쉬엄쉬엄 어린 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안성맞춤 이 초여름의 숲속의 정자에서 그리고 초여름의 그늘이 더욱 반겼다.

정자(亭子)하면 옛날 선비들이 산수 좋은 경관에 풍류(風流)를 즐기는 생각이 머릿속을 앞지른다. 광주의 인근에서 볼 수 있는 광주호의 상류 기슭에는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뜻이 담긴 송강 정철의 유적이 있다.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성산별곡”을 지어낸 식영정(息影亭)이라는 정자 말이다. 또한 담양군 봉산 면 에서 성종24년(1493) 출생한 송순(宋純)(1493-1583)의 자(字)는 수초(守初), 호(號)는 기촌(企村), 면앙정이 유명하다. 광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극락 강 철교를 지나 극락 역을 못미처 산모퉁이 극락 강을 내려다보이는 영산강 지류를 흐르는 강가언덕에 적송에 둘러싸인 풍암정(風菴亭)이 옛적 선비는 정자에 앉아 내려다보이는 강물을 풍류삼아 시를 읊조리며 세상을 노래하는 풍류 시인 이였을 거라는 생각에 사전을 찾아본다. <명사>로 자연 경관을 감상 하면서 한가로이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주변 경관이 좋은 곳에 아담하게 지은 집, 벽에 기둥이 없고 지붕만 있으며 팔각이나 육각 지붕을 한 단층(單層)이다. 라고 정리 되어 있다.

이곳 산 행로를 포함 2013년3월4일 21번째의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 승격하면서 주변에 30곳의 정자와 사찰 등이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었단다. 그 후 부족한 곳을 정비 하느라 산자락을 오르내리기에 용이한 특수 차량이며 미니 굴삭기가 동원 되어 보수공사에 한창이다. 걷기를 조금 하다가 정자(亭子)만 나오면 쉬어가자는 외 손주의 응석에 덩달아 쉬엄쉬엄 늦은 점심도 겸 장소를 물색하였다. 마침반환점 주차장에서 조금 내려와 최근에 제방아래 새롭게 단장한 유원지에 지어진 정자를 찾았다. 준비해온 빵과 과일 음료를 점심으로 대신하고 팔각정 정자마루에 누어 쉬는 시간은 하루의 피곤인가 깜빡 한숨 쉬는 시간도 함께해준다. 외 손주 역시 눕지도 않은 채 마냥 좋은 가보다. 외할머니에 게 더 쉬어가자며 졸라대지만 화순에서 나주의 고향집을 갈려면 직통하는 길이 없어 거의 한시간가차이 걸린 것 같아 외 손주를 달래어 정자를 떠난다. 고향 가는 길가의 몇 곳의 마을 앞을 지나면서도 곳곳에 지어진 현대판 정자는 흔히 볼 수 있는 정각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내 고향 큰 마을 어귀에서 산비탈 소로를 따라 5분여 달려 비탈길을 돌아서니 산자락아래 4호가 모여 있는 나의 출생지 고향집이 보인다. 운전을 하느라 앞만 살피는 내게 아내가 말한다. 아니 뭐 정자를 짓는 가 봐요 하며 말이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시뉘대가 집 앞을 가리고 있었는데 3년 전 빈집으로 있는 고향집을 지킨다며 형제들의 타협 끝에 5형제 중 둘째이신 중형님께서 고향으로 내려 가셨다. 허물어져 가는 몸체를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쓸어져 가는 아버님이 거쳐 하시던 사랑채를 허물고 앞을 가린나무며 대나무도 말끔히 정리하여 시원하게 탈바꿈된 고향집이 새롭게 정비된 것이다. 역시 도착하고 보니 치워버린 사랑채 자리 한쪽에는 현대식 사각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신 형수님과 형님께 아니 이런 좋은 정자를 지었으면 형제라도 모여 거창한 준공식이라도 했어야지요? 뭐 모두가 바쁜데 그냥 그것 까지는 생각 못 했다. 하시며 도시로 나가 있는 아들딸들이 선물했다는 것이다. 한쪽 천정아래 조그마한 준공팻말에는 2014년4월 사위 증정이라는 글씨가 노년에 고향을 지키시는 위로 글이 절절함을 느끼며 생각해본다. 농촌경제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 하고 있는 안목 깊은 조카사위 한서방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껴본다.

조금 있으니 한 대의 승용차가 들어오는데 도시에 계실 때 형수님의 친구들이 휴일 이 되어 놀러 오신 것이다. 오시는 길에 무안 지도를 들려 병어를 사오셨단다. 바쁘게 서둘러 형수님께서 병어 무침과 술상을 내오셨다. 또한 내가 오는 길에 사온 수박을 쪼개 어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이 그 옛날 시골집이 변화된 모습이 이것이 진정 별장 아닌 달라진 정겨운 시골 풍경이 새롭게 느껴진다.

주위에는 미처 따지 못한 매실이며 빨갛게 익은 보리앵두가 지난시절의 시골생각을 겹쳐온다. 그 틈에도 어제 따서 삶아 놓았다는 죽순이며 싱싱한 상추 열무를 챙겨주시는 형님내외의 정성을 받아 차에 실었다. 놀러 오신 형수님 친구들을 생각해서 서둘러 고향집을 나선다. 세상이 만이 달라져 이런 정자를 지금은 반제품으로 사전에 만들어져 차량으로 운반하여 주춧돌로 위치를 잡아 그 위에 조립하듯 하루에 다 지어 버렸다는 형님 말씀을 되 세기며 옛날에는 풍류를 즐기는 정자가 아니라 쉼터로 변해버린 어데 마주할 수 있는 달라진 정자(亭子)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 옛날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풍치 좋고 햇빛이 빨리 든다하여 조양 리(朝陽理)라고 이 마을을 이름을 작명(作名)하였다. 이렇게 훌륭한 정자를 지어놓고 준공식이라도 했었다면 정자의 이름도 조양 정(朝陽亭)이라는 현판이라도 걸어 들였을 텐데.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들 도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하는 아쉬움만 뒤로 하며 찌 들린 도심으로 귀가(歸家)를 서둘러서 광주로 돌아왔다.

2014년 06월14일 오후에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