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부질없는 생각

부질없는 생각이 나뿐일까? 밤새 오락가락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른다. 단층 주택에 살면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 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그런데 도심의 아파트는 비바람이 낙뢰와 함께 몰아칠 때가 아니면 밤중에 내린 비는 알기도 힘들다. 우리 집도 다행인 건 베란다 창밖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아니면 듣기 힘든 비 오는 소리다. 간밤에는 함께 하든 아내마저 지난 금요일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 외 손주를 집으로 데려왔다. 토요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의 고충 탓이다. 평소에 잠자리를 마음대로 굴러 잠자는 여섯 살배기의 잠버릇 탓에 침대에서 함께 잘 수 없는 탓이다. 평소에야 막내딸과 셋 이사는 단출한 도시 살림이 허전한데 그래도 외 손주라도 와 준 날이면 사람 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아마도 대다수 기성세대가 느끼는 현실일 것이다. 2년 전 아랫집 정년퇴임을 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손녀를 앉고서 하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에는 우리 집에도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이다. 며칠 전만 해도 안방 창문을 열어두고 홑이불 한 장으로 덮고 잤는데 추위를 느껴 커튼으로 가림막을 하고 잠을 청한다. 삼경을 알리는 시계 소리에 또다시 추위를 느껴 아예 열린 창문을 닫아 버린다. 그 시간 거실에 왜 손주와 함께하는 아내는 깊은 밤중인 것 같다. 아마도 낮에 왜 손주와 우리 가족이 함께 다녀온 산행길의 피로와 늦게까지 내 컴퓨터에 밤 11시가 넘도록 매달려 늦은 잠에든 왜 손주 탓일 거다. 다시 잠자리를 청해보지만, 왠지 등이 차갑고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이 다된 시각 4시 40분이다. 그때야 평소에 아내가 등에 깔고 자는 미니 전기장판이 생각나 그쪽으로 옮기고 잠을 청하니 평소에 5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일어난 내가 그만 깜빡 깊은 잠에 취했나 보다. 6시 가 다되어서야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때 누운 체 TV 리모컨을 켜니 KBS 2TV에서 『혼자된다는 것』이라는 프로에서 고독 사(孤獨死)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 화면이 나오고 있다. 혼자 산 지 20년이 되었다는 75세의 천 종렬 씨 온종일 외롭단다. 왜냐하면, 말할 때가 없어서 말이 하고 싶어서란다. 또 다른 74세의 이 정자 씨 혼자 살아온 지 3년인데 본인이 아플 때 가장 힘들다는 것이란다. 나이가 든 세대라면 그렇다 치자, 그런데 51세의 이 성용 씨 홀로 산 지 5년째인데 쓸쓸하게 삶을 마감 하고 싶지 않다며 역시 젊음이 당찬 생각이다. 방송은 혼자 산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나온다. 혼자 산다는 것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 남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면 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그것만 생각해 왔었다며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따른다.

한때 중견 회사 국외지사에서 근무할 정도로 중산층을 살았다는 한 분은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게 되고 새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빛이 생겨 사업을 그만두게 되었단다. 그 뒤로 사업의 실패로 혼자 살게 되게 되고 그런 분들이 고독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작년 1년 고독 사는 1,717건으로 사망 후 발견된 수치까지 포함하면 연간 11,002명으로 하루 평균 4.7명이라니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수치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고 혼자 사는 노인과 젊은이의 동거 제도로 2003년 불볕더위 때 노약자 1만 오천여 명이 사망한 계기로 프랑스에는 “코로카시움”이라는 제도가 있단다. 홀로 된 사람끼리 모여 함께하는 생활이다.

식사부터 혼자 식사하는 것과 같이 식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단 나 혼자 있으면 대충 먹거나 둘 중 하나니까 말이다. 같이 있으면 더 신경이 써서 챙겨 먹는데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대충 먹는 것이 대다수 사람이 생활 습관이니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간밤의 혼자 잠자리가 괜스레 괴리를 불러온다. 이제 환갑을 넘기고 반 십 년을 넘겨 살아온 내가 이렇게 약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둘뿐일 우리 부부 오른팔을 쓰지 못한 장애인의 나약함일까 봐 평소에 나의 손발이 되어준 아내 물론 잔병치레에 나에게 오른손을 대신해준 사람 만약 이라는 단어 앞에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오늘따라 왠지 나약해지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자아의 모습에 나 혼자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늘 생각해본다.

2014. 07. 06. 새벽에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