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도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지만, 당나라 유종원의 시 ‘강설(江雪)’이 고전 산문을 본다. 온 산에 나는 새 한 마리 없고(千山鳥飛絶)/ 온 길에 가는 이 하나 없구나(萬徑人踪滅)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孤舟蓑笠翁)/홀로 낚시하는 차가운 강에 눈이 내리네(獨釣寒江雪). 이 시(詩)를 읽고 나니 한겨울의 친구와 함께 떠난 낚시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나에게는 무척 낚시를 좋아하는 고교동창생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나를 대할 때마다 “자기 평생의 취미를 망쳐놓았다고 탄식을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고 전 수십 년간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남도(南道)를 누비듯 낚시를 함께했었으니 말이다. 20여 년 전 어느 토요일 오후에 일이었다. 낚시에 들뜬 우리는 그날도 사전에 약속하여 준비해둔 낚시도구를 내 승용차에 싣고 해남반도 ‘송호리’ 방면으로 낚시를 떠나는 중이었다. 광주에서 남평 신교를 건너기 전 사거리의 직진신호를 따라 나주 영암 방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 사거리 우측에서 우회전하든 차량이 빠르게 중앙선 가까이 침범하여 우회전하는 것이다. 그 탓에 그만 80~90km를 1차선으로 진행한 내차와 접촉사고가 나버렸다. 결국, 교통사고 접수를 경찰서와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후속 대책을 취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승용차는 남평에 있는 자동차정비 업소에 입고했다. 그곳에서 렌터카 차량을 빌려서 내 차에서 낚시 도구를 옮겨 싣고 예정했던 낚시를 떠난 일이 있었다.

그때 운전을 했던 나는 신체에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친구는 조수석 앞 유리창에 이마를 찧고 오른 어깨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통증을 앓으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낚시 여행을 갔던 것은 두고두고 우리 집사람의 조롱거리 일화로 남겼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낚시를 함께 떠났다. 술을 좋아하든 그 친구는 음식 요리도 현장에서 거침없이 잘한다.

낚시 또한 상당히 프로급으로 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낚시로 끈끈하게 맺어진 친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단금지교(斷金之交) 우정 깊은 친구다. 그런데 2008년 2월 나는 갑작스러운 감전 화상사고를 당했다. 그 친구의 취미가 어느 사람과 맺으려도 나와 같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친구가 나와 함께 낚시 가는 것을 워낙 좋아하던 터였다. 가끔은 시간을 내어 함께 해주지만 한 손을 못 쓰는 나로서는 낚시현장에 가면 그 친구가 던져놓은 낚시를 옛날의 실력으로 챔~질만 해놓는다. 친구는 감아올리고 또 밑감을 꿰어 던져주고 해도 나와 함께 만 하면 마냥 즐겁다는 것이다.

갑오년을 보내고 을미년 정월 두 번째 맡는 토요일 오전에 전화가 왔다. 난 전화를 받으면서 혹시 거동이 불편하신 친구 노모님이 작고 소식일까? 하고 으아 해하며 전화를 받고 보니 슬픔에 찬 음성은 아니었다. “친구! 잘 있는가?” 응! 잘 있네! “그럼 내일 무슨 일정(日程)이라도 있느냐?”라고 묻는다. 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하고 물으니 “영광에 한빛 원전 수로에 낚시가 잘된다는 데 내일 시간이 어떻게 되느냐며 묻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 바다낚시가 웬 말인가?” 그래! 자네가 가고 싶다면 급한 일을 없으니 내가 시간을 내볼게. 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곳을 갈려면 사전 한빛 원전사무소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라며 허가방법을 대강 이야기해준다. 사고 후 나는 낚시할 수 없음을 판단하고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낚시용 구명조끼며 낚시도구를 친구들께 주어버렸다. 낚시는 때로는 세밀한 사전 정비를 해 두어야 한다. 현장에서도 낚싯줄을 메야 하고 두 손이 함께 해주지 못하면 낚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말 한대로 낚시허가를 받으려 한빛원전 인터넷에 접속하니 “오늘은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 한다.”라는 자막만 뜰뿐 그곳 당직실에 전화해도 더 기다려 주시라는 답변뿐이었다.

친구의 약속을 위해 몇 차례 시도 끝에 오후 늦게야 ‘www.ygfish.co.kr 에 접속되어 새롭게 ID, PSW, 로 회원 등록을 했다. 그리고 허가번호 37번을 받았다. 얼마 후 내일 아침 9시부터 입장이 되며 입장 30분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휴대전화문자 전송을 받았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나는 친구 집에 들러 준비된 낚시도구와 친구를 태우고 한 시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사람이 두꺼운 점퍼와 구명조끼를 걸치고 낚시도구를 가지고 피난민처럼 철조망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9시 가 다될 무렵 안내인이 열어준 철조망으로 된 문을 열어주니 서로 앞다투어 한참을 철조망 안내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예약된 번호와 신분증을 내미니 출입증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서해안 바다의 겨울 찬바람이 한빛 원전 수로를 따라 떠내려갈 듯 고개를 정면을 향할 수 없는 새 찬 바람이 우리 낚시 객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새 찬 바람에 떠있는 갈매기도 제 속력을 힘을 잃은 듯 힘들게 날고 있다. 원전에서 물방울을 함께 싣고 떠내려오던 물보라도 바람에 부서진다. 차가운 바다 수로는 세찬 바람은 파도를 일으키며 시 멀 건 흙탕물로 변하여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바닷물이 흙탕물이 되어버리면 물고기도 시야가 흐려 먹잇감을 찾지 못해 고기잡이는 망쳐 버린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허가받고 준비하고 사온 낚시준비물 탓일까? 모두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대로 쌓인 수로 변에 자리 잡고 낚시를 편다. 난 잔심부름만 해줄 뿐 친구가 펴준 낚시를 감시할 뿐이다. 20여 분이 지나자 내가 주시한 낚시 끝이 바람에 흔들리는 반응이 아닌 이상 반응을 감지했다. 적당한 기회를 포착해 챔~질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낚시 릴조차도 감을 수 없는 나로서는 챔~질만 하고 친구에게 넘긴다. “역시 낚시 도사야! 한다.”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은 낚시하는 사람 중 제일 먼저 농어 한 마리 낚아 올렸다.

 이렇게 춥고 상황이 좋지 않은데 낚아 올렸다는 것이 추위를 잊게 했다. 그 칠 줄 모르는 찬바람, 구름 속에 가린 햇빛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차가운 날이다. 이렇게 한겨울이면 다른 바다에서는 낚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수로에는 발전소에서 뿜어 나온 냉각수로 수온이 다른 곳보다 높다. 그래서 겨울에도 낚시가 되고 원자력 발전소의 홍보차원에서 낚시해도 되는 곳으로 검증되어 있다. 주민의 편의를 위해 허가를 내주며 무료 바다낚시를 하는 유일한 겨울 낚시터다. 계속되는 찬바람에 50여 명의 낚시 객들은 12시가 못되어 대부분 철수해버렸다.

나 역시도 속내의에 점퍼며 든든한 옷을 입었지만, 발이 시려 참기가 어려웠다. 잠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자동차 속에서 히터를 틀고 녹였다. 다시 친구와 합류하여 추위를 감내하면서 그리 많지 않은 고기를 낚았다, 우리의 우정은 그 추위 속에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하루였다.

☻.일생동안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 둘은 많고 셋은 거의 불가능하다. <H 아담스>

2015.01.11. 한빛 원자력 수로 낚시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