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추억과 삼양 목장

요즘 세대들 앞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 옛날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뜸 하는 소리가 라면이라도 드시지 그랬어요. 하는 대답이다. 하긴 밥을 대신하는 라면은 대용식의 대명사이니 먹고살기 힘든 세대들의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1960년대 무렵. 이른 봄부터 시작된 보릿고개,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국내 최초로 라면을 만들어 어렵던 식량난에 일조하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2014년 7월 10일 숙환으로 타게 했다는 신문에 광고처럼 크게 난 부고(訃告)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라면을 만든 내용 속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고인 이 된 회장님께서 동방 생명(현 삼성생명)근무 때 해외를 드나드시다가 라면의 원조인 일본의 묘조(明星)식품에 가서 한 달 가깝게 현지에서 기술을 배우고 정부를 설득하여 5만 달러를 지원받아, 라면 만드는 기계를 도입하여 1963년 9월 15일 삼양라면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빛을 봤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처음 생산된 라면 한 개(100g) 가격은 10원이었단다. 자장면 한 그릇에 20~30원 김치찌개가 30원 하던 시절 있으니 얼마나 획기적인 발상이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시골 산골 마을에 지금처럼 신문이나 TV 같은 언론 매체는커녕 우리 고향 나주의 봉황면에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해가 1968년 무렵이었으니 라면을 먹어본 것이 군대 입대하여 군 내무반에서 회식파티를 할 무렵에야 먹어본 귀한 음식이었다.

월남 전선에서 라면의 추억

1970년 8월 어느 날 해병대 청룡부대 사령부가 다낭에서 가까운 호이안서 밤이면 부대 외곽방어 근무를 나가 근무를 서고 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그날따라 바닷가 근무조가 되어 대낮처럼 밝은 조명 불빛 아래서 파도에 밀려 떠밀려 왔다 밀려가는 삼양라면 봉지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 있는 라면 봉지가 어떻게 이곳까지 위문공연을 왔을까?. 그때의 생각은 고국 한국에서 여기까지 떠밀려 왔을 것이라는 일념이 온통 고국의 생각이 아른거렸다. 라면 봉지가 먼 이국 다낭바닷가에 떠다닐 수 있었던 것은 1969년부터 베트남을 비롯해 해외에 처음 수출했다니 내가 파월한 것보다 2년 빨리 베트남에 들어온 것을 이제야 알았고 그 수수께끼도 그때는 몰랐던 것이 당연지사다. 그곳에서 5개월을 지내고서야 베트남의 민가도 외출을 나갈 기회가 있어 밖을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나를 자꾸 괴롭히던 3개월 선임(신 병장) 수병이 어느 날 나에게 호의를 제안한다. 정 수병 나하고 함께 외출 한 번 해볼 거야? 조금은 멈칫했지만 궁금한 베트남 민가를 가보고 싶음이 간절할 때다. 함께 해주시면 감사 하지요. 그래서 함께 총과 탄창을 메고 통신병 선로 점검을 한다며 외출증을 받는다. 다낭 시가지가 아닌 외곽 마을에서 안심하고 그곳 음식을 먹기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선임들의 주지사항을 떠올리며 식사를 하려면 라면을 시켜 먹되 지켜 서서 끓이는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도 통하지 않던 현지인 다 끓인 후 연녹색 가루를 흠뻑 넣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그 사람들의 습관대로 후춧가루를 그렇게 넣었다는 것이다. 매 쾌한 매운맛이 혀끝을 자극하지만, 함부로 먹을 수 없는 현지식에 한국에서 생산된 그때는 귀한 음식을 이국땅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대관령 삼양목장의 인연

1982년 시골뜨기 나에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때 당시 프랑스에서 수입한 젖소를 5마리 신청 중 2마리를 배정받아 젖소를 기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배정 결정이 되자 나주 군 에서는 젖소를 키우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1박 2일간의 선진지축산 농가 시찰을 가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사방이 고속도로망이 좋아졌지만 80년대의 고속도로 사정은 경부선은 편도 2차선이었지만 호남선이나 지방도로는 대부분 편도 1차선 고속도로가 고작이었다. 25인승 미니버스를 전세하고 군청 직원도 함께 대동하고 첫날 찾은 곳은 안산의 축산 연구소를 둘러보고 교육도 받고 그곳에서 가까운 천안 시내에서 일박하고 이튿날 일찍 출발하여 찾아간 곳은 말로만 듣던 강원도 대관령 목장이었다. 그곳 대관령 목장은 고인이 되신 전 중윤 회장님께서 쇠고기 라면 수프에 진짜 쇠고기를 넣기 위해서 1972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 600만 평 부지에 조성한 대규모 축산 목장이었다.

널따란 잔디 위에 그림같이 뛰어놀던 소 떼 그리고 목초 부지 교육장에서는 그곳의 목장 관리장으로부터 유익한 교육을 받을 수 있던 인연 그것이 인연이 되었다. 나는 그때 용기에 가득 차 시골 고향에 5,000여 평의 산을 목초지로 바꾸고 전기 철책 울타리도 직접 만들며 꿈에 그리던 목축업을 시도해 20여 마리의 젓 짜는 소와 7마리의 송아지를 사육했었다. 결국, 결의에 찬 시도는 지금처럼 기계화가 되지 못하고 목부(牧夫)를 구하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고 보니 두세 개의 사업에 동분서주하는 나는 결국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없는 환경에 1987년 수천만 원의 손실만 남기고 축산업을 접어야 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 널따란 초지는 잡초 산으로 변했고 커다란 우사(牛舍)는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고인(故人)이 되신 분의 타계에 추억 깊은 생각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4년 전 강원도 평창에 가족 휴양 목적으로 방문한 대관령 목장은, 지금은 명맥만 유지한 채 지금은 풍력 발전소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렇게 대기업이 운영하는 목장이라, 하면서 새삼 삼양식품 창업주이며 라면의 대부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님의 명복을 빈다.

2014년 07월 12일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