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8-16 19:14

ㆍIP: 115.xxx.86

베팅 (64회)

그는 입장권을 끊은 뒤 각 층을 오르며 분위기를 살폈다. 여기도 과천경마장처럼

층마다 설치된 십여 대의 대형 모니터 중계를 보고 환호성과 탄식소리와 욕을 내뱉

기는 똑같았다.

같은 경마팬이라도 입장권 가격 차이에 따라 VIP층은 예약한 좌석에서 무료 경마지

와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받으며 제한된 인원으로 여유롭게 안락한 의자에서

베팅을 즐기고 있었다. 반면 일반층은 자비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딱딱한 의자

에 무제한 인원으로 복작거리는 매점을 이용해야 한다.

돈 잃는 것은 마찬가진데 입장서부터 빈부의 차이로 대접이 다르다는 것에 그는 픽

웃음이 났다. 마사회 입장에서는 돈을 더 많이 잃어주는 VIP 손님들을 우대하는 것

이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인지도 모른다.

먼저 선우는 VIP층으로 올라가 지정석이 없어 뒤에 서서 사람들을 눈여겨보기 시작

했다. 이 건물에서 작업에 필요한 3명을 물색하여 선택해야 한다.

경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구매표에 마킹하고 창구로 가서 돈과 마권(구매권, 예치

권)을 교환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마감 3분 전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배당판을 뚫어

지게 쳐다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창구 앞으로 몰려갔다. 두꺼운 유리 사이로 여직원

들의 손놀림이 바빠지며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고시 공부하듯이 경마지를 보고는 대부분 전 경주를 베팅한다. 매 경주를

베팅한다는 것은 욕심이고 그만큼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경주에

뛰는 말을 평균 12두로 잡아도 하루 15~17개 경주에 출전하는 약 200두 말들을 어

떻게 전부 분석할 수 있다는 말인가!

“100만원 죽었어요. 뭐 좀 보이는 거 없나요?”

화장품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적당히 생긴 아주머니가 옆에 앉은 50대 쯤의 남자에

게 물었다. 여자의 손을 보니 고생을 많이 한 것이 느껴진다. 서로 초면인 것 같았

다. 이어 남자가 한술 더 떴다.

“어제 200만 원 죽고 오늘도 300만 원 죽었어요. 지금 저도 눈앞이 깜깜합니다.”

그들의 자리 밑바닥에는 미적중 마권들과 현금인출기의 영수증만 수북이 쌓여 있

었다. 두 사람의 행색으로 보아 돈이 없어 보이는데 무얼 믿고 저리 사는지 궁금했

다. 옆의 젊은 사내는 몇 경주 만에 100만 원 정도를 날리고 퇴근했다. 오른쪽 중년

의 아저씨도 꽤 많이 잃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앞자리 부부는 벌써 200

만 원 가량 죽고 지쳤는지 불편한 자세로 앉아서 자고 있다.

이렇게 매 경주 베팅하는 사람들 틈에서 몇몇 사람은 경주를 관전만 하다가 가끔

일어나 창구로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들 중 오래 입어 색이 변색한 고르덴

마이와 밑창이 낡은 구두로 보아 행색은 초라하지만 연륜도 있고 대기업 회장처럼

풍채가 좋은 한 남자를 주목했다.

그의 손에는 스마트 폰이 아닌 폴더 폰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여기있는 대

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그 흔한 스마트폰을 구경하기가 드물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

싼 스마트폰이 경마에 직접적인 무기가 아니므로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어쩌면 그 돈으로 베팅을 하는 게 더 짭짤한 장사라고 확신하

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몇 경주 전에 그의 옆 사람이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자 선우가 얼른 가서 앉

았다. 남자 앞에는 암호 같은 표시가 빽빽이 적혀 있는 수첩이 놓여 있었다. 그는 경

마지와 그것을 번갈아 보며 골똘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지금 어느 말이 나오는가를 살피는 게 아니고 어떤 경주에 무슨 편성이 짜

여 졌는지를 꼼꼼하게 본다. 그의 생각에 쏜다 혹은 쏴먹는다는 표현은 그 편성에

기인한다. 그것이 어디에 숨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며 5개 경주를 그

냥 보냈다.그렇다. 그는 한참을 관전만하며 참아왔던 것을 이번 경주에 베팅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경마는 기다림과 절제가 최고의 미덕이다. 이 두 가지가 안 되는

사람은 경마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예시장에서 말들이 돌 때 거의 70%는 끄집어내야한다. 그가 예시 상태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것 중 하나가 뒷다리와 머리이다. 걸을 때 구보를 하는 것처럼 통통 튀는

말이 좋다. 걷고는 있지만 뒤발 관절 쪽이 걸을 때마다 심하게 제껴지는 말과 목이

높은 말은 인기도가 높아도 우선 지운다. 예시 20분동안 목을 크게 휘졌거나 자꾸

바닥으로 처박는다면 이 말도 일단 뒤로 미룬다. 정수리부터 입까지 일직선으로 딱

서있는 말과 목이 활처럼 앞 몸체로 딱 당겨서 때려 박을 기세의 말을 눈여겨본다.

그는 신경을 집중한다. 예시장에서 걷는 모습을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기수가 안장에 앉을 때와 비교해 가며 본다. 혼자 예시할 때와 기수가 윤승

했을 때의 차이가 거의 없이 좋다. 주로에 나갈 때에도 기수에 순응하며 사뿐사뿐

걸음걸이가 가벼운 게 이상이 없어 보인다.

이번 경주에 나오는 기수 중에 오랜만에 나와서 전전 경주에 선행몰이를 하다가 직

선서 퍼졌지만 나름 경주 운영을 잘했던 기억이 났다. 그 경주를 다시 생각해 보며

그 기수가 5착한 것을 유심히 봤었다. 1,700미터 경주인데 초반기록이 좋은 선행마

다. 라스트가 약한 게 흠인데 선행마들은 보통 라스트 기록이 약간씩 뒤쳐진다.

‘가는구나.’ 촉이 서서히 오기 시작했다. 축으로 팔리는 말들을 몇 두만 살펴본다.

전형적인 2파전 경주인데 2두를 중심으로 배당판이 춤을 춘다. 그 말을 놓고 축으로

팔리는 1두에 강배팅하고 나머지 1두를 방어한다.

절대가 없는 경주라 몰빵은 위험하다. 늘 최악의 변수를 생각하고 들어올 거 같은

말은 몇 번을 관찰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 놈도 될 거 같고 저 놈도 쏠거같은 경주는

하는게 아니다. 단순하게 내가 노리는 말과 능력마 1두와 능력기수가 탄 1두를 해서

2방 안에서 배팅해야 한다. 구멍수를 늘리면 맞을 확률은 많지만 환수적인 측면에

서 손해다. 압축해서 때리고 받히는 마권이 이상적이다.

배당판을 본다. 마지막으로 체크를 한다. 그가 구매표를 들고 창구로 가 구매하고

자리로 돌아와 미동도 않고 모니터를 보았다.

백낙은 2015-08-17 15:10	이인철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방문했습니다. 매 회가 다 그렇습니다만 제가 실제로 경마장에 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놀이문화가 변변찮은 우리 사회가 경마 같은 놀이로 자꾸만 사행심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여 걱정됩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未踏의 세계를 잘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은안하소서.

정찬열 2015-08-18 17:05	이인철작가님 경마에 "경"자도 모르는 이사람 작가님의사실같은 경마베팅에 마냥 즐겁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작가님은 경마베팅에 얼마나 잘하시는 선수 이실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즐겁게 배독하고 갑니다. 이인철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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