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5-17 19:29

ㆍIP: 115.xxx.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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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경주가 끝나고 나니 정문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서둘러 한시라도 빨리 나가려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의 패배를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원망의 소리와 간혹 승리들 자축하

는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입구에서 아주머니들이 일회용 라이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세 사람의 손에도

라이터가 하나씩 쥐어졌다. 민기가 예의 그 부지런함으로 얼른 다른 아주머니에서 몇

개를 더 받아와 그들에게 줬다. 두 사람은 거절도 안 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애연가들이

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가격 대비 라이터의 효용가치다. 비록

400원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살 때는 왠지 억울하고 돈이 무척 아깝다. 차 안에도 몇 개

있고 집의 서랍에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없을 경우 사람을 허둥지둥하게 하고 초

조하게 만드는 물건이 바로 라이터이다. 꼴초들은 이 심정을 알기에 라이터가 생기면 무

의적으로 모은다. 선우가 라이터를 언뜻 보니 ‘휴대폰 소액결제’라는 낮익은 문구와 휴

대폰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가끔 자기의 휴대폰으로 이런 스팸메일이 도착했을 때 관심

없이 삭제하였었다.

“민기야, 이 라이터에 적힌 휴대폰 소액결제라는 것이 뭐야?”

“그건 통신사에서 휴대폰으로 한 달에 보통 30만 원 정도 선결제해 주고 고객은 다음

달에 갚으면 돼요. 한마디로 신용카드 결제 방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차이는 할부가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경마장하고 소액결제가 무슨 관련이 있어?”

“소액결제는 원칙적으로 물건을 사는데 사용해야 되지요. 그런데 돈이 급한 사람들이

그 번호로 전화해서 물건 산 것 하고 돈을 융통하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카드 깡처럼 휴

대폰 깡을 하는 거지요. 또 다른 것은 카드깡은 수수료를 20% 정도 떼는데 휴대폰 깡은

40~50%를 제하고 절반 정도만 줘요. 30만 원 승인이 나면 15~18만원을 받는다고

보면 돼요. 게임머니 등을 사고 되팔기에 자기들도 수수료가 많이 공제된다고 하는데 그

걸 누가 알겠어요. 둘 다 불법인 것 마찬가진데요.”

“휴대폰 깡이 단속만 피하면 쏠쏠한 장사라고 하더라고. 그러니 경마장까지 와서 영업

하는 거 아니겠어?”

준식이 라이터를 괜히 켜며 말했다.

“남 애기 하시네. 형도 한때 거기 단골이었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언제가 한 달 휴대

폰 요금이 50만 원 가까이 나온 청구서를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었지.”

“아니야 인마, 그건 포커 게임머니 산 거야.”

“아니긴. 형이 하는 게임머니 회사와 승인해준 PG사가 다르던데 뭘. 내가 모를 줄 알

고.”

“그래 내가졌다. 저 놈은 귀신이야. 속일 수가 없다니까. 그래도 지금은 안 하잖아!”

준식이 혀를 내두르며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여 서민들의 벼

룩의 간까지 빼먹는 먹이사슬이 경마장까지 파고든 것에 선우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울

컥했다.

세 사람은 차를 놓고 왔으므로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 시간대의 경마공원역은 출

퇴근 시간대의 환승역처럼 인파로 붐볐다. 선우의 눈에 몇몇 사람이 잠깐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담장 넘듯 개찰구를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는 유유히 계단을 내려가 사람들

속에 파묻혔다. 차비가 없는 건지 아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 풍경이 왠지 서

글펐다.

오늘 완패한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같은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부근의 순댓국

집으로 향했다. 민기가 자리를 잡자마자 오링 된 원흉이 준식이라고 질타하기 시작했

다.

순댓국을 다 먹을 무렵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 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으로 보아 한 눈에도 걸

인임을 알 수 있었다. 선우의 무의적으로 부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주인아저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다음에 와요”

아이는 방향 감각이 없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더금거리며 의자

를 만지는 아이의 아빠는 장님이었다. 주인은 그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눈치 챘다.

“저어.... 아저씨 순댓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이 손짓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 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

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나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손바닥에 꽉 쥐어 눅눅해진 1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 후 주인은 순댓국 두 그릇을 그들에게 갖다 주었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자기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 모두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담아주었

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였다. 부녀의 모습에 선우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와 계산대에 있던 주인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선우가 의식적

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주인은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뉘우침인지 얼

른 창가로 눈을 돌렸다. 선우는 부녀의 음식 값을 같이 지불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는 천

사의 집과 원생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만약 이 아이도 저 아빠마저 없다면 보육원으로 가 외로운 천사가 되겠지."

백낙은 2015-05-17 21:09	이인철 작가님. 벌써 50회가 나왔군요. 이번에는 장님 아빠를 모신 어린 아이의 사랑이 감동적이군요. 선우가 음식값을 대신 지불하는 모습도 훈훈합니다. 잘 살펴 보면 우리 주변에 이런 인정이 아주 마르지는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 기법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홧팅입니다.

박정근 2015-05-19 18:31	이인철 작가님 안녕하시지요? 내려주신 글 감사히 배독합니다. 늘 평안하시고 향필하시길 기원드리며 다음회를 기다려 봅니다. 화요일 오후도 편안하세요 작가님~~^^

이인철 2015-05-26 19:03	《Re》백낙은 님 , 백낙은 작가님! 늘 변함없는 격려와 용기주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소서. 샬롬!!

이인철 2015-05-26 19:07	《Re》박정근 님 , 박정근 작가님! 부족하고 졸필인 서재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께서도 향기로운 글 다산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한번 작가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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