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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6-09 20:13
ㆍIP: 115.xxx.86
베팅 (54회)

금문성 사무실 빌딩 입구에서 ‘천사의 집을 지켜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혜원이 일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무관심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그녀가 소
 
리쳤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을 보육원 운영만 하시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친구 분의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되어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 빚이 눈덩이로 커져 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고 이제 곧 보육원도 악덕 사채업자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정신장애우와 신체장애우와 고아들인 ‘천사의 집’ 가족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
 
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다가와 무지막지하게 끌어내려는 어깨들에게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한 곳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선우는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고 도와주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가슴이 찢어졌다. 참다못한 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끈끈한 액체가 미미하
 
게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날 밤 선우는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첫 잔을 유리컵에 벌컥벌컥 따
 
르고는 단숨에 마셨다. 전신에 퍼지는 알코올 기운은 쓰나미처럼 모든 세포와 신경들을
 
휩쓸어버리는 듯 했다.

 원장님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한 잔. 혜원이 발버둥 치며 지키고자 하는 ‘천사의 집’
 
을 위해 한 잔. 어깨들에게 끌려가는 그녀를 위해 한 잔. 그리고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한 잔. 정면 승부도 좋지만 세상에 가진 것 없는 자기 같은 사람에게
 
는… 이런 방법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작업의 성공을 위해 마지막 한 잔.
 

 원룸 2층 난간으로 걸린 철제 계단에 가을비가 부서지고 있었다. 토닥거리는 빗소리가
 
유리창을 뚫고 방안으로 들려왔다. 선잠을 자던 선우는 반사적으로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났다. 시계는 새벽 3시를 지나고 있다. 담배를 질끈 물고 배란다로 나갔다. 빗발은
 
쉼 없이 오다 그치는가 싶더니 바로 전열을 재정비하고는 더 매섭게 뿌려댔다. 세찬 비
 
가 이내 폐부를 찌를 듯이 가시비가 되어 내렸다. 

 저 멀리 골목길로 걸어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이 혜원으로 투영되어 보였다. 차곡이 쌓인
 
그녀와의 추억을 허공으로 퍼지는 연기에 담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천막에 떨어지는 봄비소리를 안주 삼아 서로 취했던 포장마차. 아담한 계곡을 끼고 함
 
께 걸었던 산책로.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으스러지게 포옹했던 공원의 벤치. 한잔의 술
 
에 발그레 달아오른 볼과 쫑긋하는 입에서 진달래 향기를 내뱉던 목로주점. 노을이 지는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던 라이브 카페. 파도소리를 들으며 파라솔 밑에서 회를 먹
 
던 항구....
 
 그녀와 뒷모습이 닮은 사람만 봐도 가슴 철렁 내려앉으며 못내 아쉬워 뒤돌아보던 설렘
 
의 시간들.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사랑이란 표현이 단 한번 허용된다면 기꺼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자 했던 님이여! 그러나 지금 나는 그녀에게 버림받아 파티가 끝난 탁자
 
밑의 빈병처럼 뒹굴고 있다.

 사랑은 시작될 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고, 사랑은 진행할 때 나보
 
다 누군가를 위할 수 있는 용기를 생기게 하며, 끝이 날 때 세상에서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난다. 나의 첫사랑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이 났다.
 
 빗줄기는 세차게 휘몰아치고 길 위에는 도랑이 형성되어 콸콸 흐르고 있었다. 하수구가
 
있었지만 그리로 빠져나가는 물의 양보다 몇 배나 많은 빗물로 인해 마치 거대한 어항이
 
된 듯했다. 어느새 자신이 산소없는 어항 속의 금붕어가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름아이콘 정찬열
2015-06-09 23:50
회원사진 		이인철 작가님
베팅 54회 사체업자에게
고아들과 신체장애우들이
치뤄야하는 고통이 눈에 선하게
밀려옵니다.
다음호를 기대할께요
늘 승필하세요
   
이름아이콘 이인철
2015-06-18 20:36
회원사진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저도 글을 쓰면서 아픈 사연들을 접할 때는
마음이 울컥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붓의 힘은 강한가 봅니다.
늘 작가님의 관심과 격려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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