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6-05 11:47

ㆍIP: 115.xxx.86

베팅 (53회)

매주 일요일 경마장에 나온다는 ㄱ씨(47)는 야외관람석 한쪽에 팔짱을 낀 채 다리를 떨

며 앉아 있었다. '춥지 않으시냐'고 묻자, ㄱ씨는 '경마하는 사람들은 겨울도 불경기도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건설사 현장반장이라는 ㄱ씨는 주로 서민들이 경마를 많이 한다

고 했다. ㄱ씨는 '내가 데리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 가운데 일주일 동안 번 돈을 전부 여

기에서 잃는 사람도 있다'며 '1~2만 원으로 대박의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레저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도 80% 이상은 도박으로 하고 있다'며 '규정

은 1인당 한도가 10만 원이라고 돼 있는데 한 경주당 500만~1천 만원 거는 사람도 많

다. 무인발매기로 뽑으면 되는데 못할 게 뭐 있나. 사람이 발급해 주는 창구에서도 못할

것 없다. 창구마다 돌아가며 받으면 된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탕!’ 게이트가 열리고 경주마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말 등에 앉은 기수는 엉덩이를

들고 잔뜩 웅크린 채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 관람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경주마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아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던 소리는 점점 커졌다. '○○야, 힘

내라!' '야! 그래!' 실내관람석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경주마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몰

입한 모습이었다. 경주마가 결승선에 들어서자 환호와 탄식이 섞여 나왔다.

1천m 경주에 걸린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1분 동안의 경주에 걸린 금액은 41억8천5

백2십만 원. 20년째 매주 금, 토, 일요일 경마장에 나오고 있는 ㄴ씨(45)는 '오전보다

오후 경주에 더 많은 돈이 실린다.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오전에 잃은 사

람들이 오후에 무리하게 더 싣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20년 동안 경마를 하며 잃

은 돈이 20억 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돈을 경마에 쏟아부은 그는 현재 대리운전을 하

고 있다. 경주가 끝난 뒤 ㄴ씨에게 어떻게 됐는지 묻자 그는 '죽었지 뭐'라며 다음 경주

에 베팅하기 위해 실내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ㄷ씨(56)는 야외관람석에 앉아 김밥 한 줄과 바나나우유로 점

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ㄷ씨는 '경마는 정부에서 허가해준 도박'이라며 '경기가 안 좋아

서 대부분 한방을 노리고 온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결국 빚을 지고 사채 쓰고 자살

하기도 한다'며 '여윳돈으로 하면 괜찮은데 빚지면 패가망신이다. 돈 없는 노인들은

100원짜리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뚝섬경마장 시절부터 경마장을 다녀 올해로 다닌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ㄹ씨(60)

는 '경마는 스포츠가 아닌 도박'이라고 말했다. 매주 하루는 경마장을 찾는다는 ㄹ씨는

“경마는 마약보다 더해 한번 빠지면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마는 답이 없다.

수학처럼 되는 게 아니라 말이 결승점에 들어가야 답이 나오니까 안 하는 게 답'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 4시, 쌀쌀한 날씨에 빗방울까지 떨어졌지만 실내 모니터 앞과 마권 발매창구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동입출금기(ATM) 앞에는 현금을 인출하려는 이들이

길게 줄서 있었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이도 있었다. 백발의 노인은 땅에 떨어진 마권

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흡연석을 기웃

거리며 빵 사먹을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경마장 한쪽 구석에는 ‘초보 경마교실’이 있었

다. 직원은 경마에 입문하는 30대 초반의 남성에게 베팅하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마장 어디에도 ‘중독예방교실’은 없었다.

기수, 조교사 등 경마 관계자와 관람객 사이의 불법거래를 말하는 경마비리와 불법 사

설경마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포스터가 경마장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도박

중독과 관련된 글귀는 한 마권매표소 위에 적힌 ‘과도한 구매행위는 습관성 경마로 이어

질 수 있습니다’가 전부였다. 힘들게 찾아낸 중독예방 치유센터 포스터 옆 안내센터로

가서 중독 예방에 관한 안내책자는 있는지 찾았다. 수많은 안내책자 중 중독예방에 관한

것이 없어 안내데스크에 물었다. 안내원은 답했다.

“중독예방 안내문은 따로 없습니다.”

모두 대박을 꿈꾸지만 결국 다 잃고 빚지는 경마장 어디에도 중독예방에 관한 안내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밥 굶고도 20억 잃고도 탕! 게이트가 열리면... ‘한탕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마꾼들의 삶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선우는 오늘 자기가 보고 느낀 경마장을 떠올리며

이 기사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정찬열 2015-06-05 16:47	이인철 작가님 ! 경마장의 풍경 그리고 경마장 배팅 족들의 현실이 눈에 선합니다. 한탕주의 의 유혹은 우리 주위에 수없이 많지요 "롯도복권" "토토복권" "주식" 도박" "포카" 내기장기" "내기축구" "내기 골프" 무례한인 경마 배팅 화폭처럼 그려보며 잘 그려내신 글 배독하고 갑니다. 다음호를 기다립니다.

백낙은 2015-06-05 21:51	이인철 작가님.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많은 공부가 필요한 듯합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정찬열 작가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가고 있는 각종 도박들과 내기들이 모두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그것도 더러는 나라에서 권장하기도 하고요. 앞으로 후세들이 오염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작가님.

이인철 2015-06-18 20:26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저도 사회의 암울한 부분을 나타냄에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문우분들과는 상관없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생활상은 사실 저의 글과 일치하는 점이 많습니다. 저도 간접 경험이다 보니 부족한 면이 많지만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늘 정 작가님의 격려에 힘을 얻습이다. 감사합니다.^^

이인철 2015-06-18 20:32	《Re》백낙은 님 , 백낙은 작가님! 작가님이 늘 부럽고 존경스럽네요. 본인의 작품활동을 하시면서도 문우분들의 글에 성의를 보여주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도 지금 준비하는 공모전을 마치면 나름 노력하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향기나는 삶에 가르침을 받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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