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에 부는 바람

글/홍대복

이른 봄 
두견새 울음 따라 불던 바람도
싱그러운 꽃향기를 품어 안고
길게 누운 강 언덕 하얀 찻집에 쉬어 간다

녹음 품은 소양강에 물비늘이 뛰어놀 듯
사랑 담는 은빛 사연 물결 위에 춤을 추고
연인들의 추억 만들기 찻잔 속에 머무른다

어느덧 하루해 기울어
하늘가엔 뉘엿뉘엿 노을빛 물들이니
소양강에 불던 바람도 북적이던 인파도
눈바래던 내 발길 뒤로 한 채
여객선의 뱃고동처럼 적막한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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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덫

글/홍대복

이른 아침 긴 어둠을 밀어내며
여명을 뒤덮는 연기처럼 뽀얀 안개
스멀스멀 파고드는 저주의 외침을 듣는다

아비규환의 절규 
악마의 부르짖음은 삶 속에 녹아들고
전광석처럼 번뜩이는 한 찰나의 연쇄 추돌 

무대 위의 일 막, 일장
짧은 외침과 암흑 속의 장막은 오르고 
혈흔으로 얼룩져 뒤엉킨 비극의 피비린내

두려움과 공포에 덮여버린 삶의 무대
두터운 장막이 내려진 어둠 속에서 
덫의 고리를 풀고
다른 장을 이어나갈 연출자의 몫을 묻는다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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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글/홍대복

세상 모두가 내 것인 양 
뛰어들어 사랑하고 싶었고 
훨훨 날고 싶었던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훌쩍 가버린 세월 앞에 떠오른 빛바랜 추억 

그리움과 아쉬움은 
재잘재잘 개여울에 노을져 흐르고
텁텁한 농주의 짙음처럼
잘 익은 시간 속에 머무른 중년의 존재감

새까맣던 머리카락 반백의 중후함도
계절 따라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리니
영산홍 향기 가득한 삶의 뜨락에서
지난날 회상하며 먼지 쌓인 사진첩 뒤척인다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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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글/홍대복

어머니
어느덧 계절은 또 바뀌고
여기저기 꽃들이 만발한 사월의 끝자락이네요
어머니께서 요양 병원에 머물러 계신지도
벌써 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어머니
늘 상 그러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어머니 찾아뵈오니 
마음 한구석 후벼 파이는 듯한 
아리고 찡한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어머니
계절이 바뀌었는지 
날짜가 언제쯤 인지조차 까마득히 잊으시고 
쇠약하신 모습으로 
하신 말씀 또 하시고 또 하시는 가여우신 어머니 


어머니
엊그제는 먼저 가신 아버님 기일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제사 모시지 못한 제 마음은 
안타까움에 텅 빈 허공 휘젓는 빈손 짓 되어
가련한 어머니의 혼 결만 어루만져 보았답니다

어머니
하루속히 시골집 텃밭에 푸성귀도 가꾸시고
오랍드리 휘저으며 마실도 하셔야죠
누워 계신 그 자리 훨훨 털고 일어나서
비워 둔 어머니의 빈집에 
당신의 온기 따뜻하게 불어넣으셔야죠

어머니
유난히도 쓸쓸함이 스쳐 가던 금 년 겨울에는
을씨년스럽기만 한 어머니 빈집에 
보일러 기름을 세 드럼씩이나 태워버렸네요

어머니
내일이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의 첫날입니다
언제나 오월이 오면 시골집 뒷동산에 
하얀 아카시아 꽃향기 가득 피어나는 고향 집
그곳에 바람이라도 쏘이러 가야지요 

어머니
점점 더 야위어져만 가는 당신을 뒤로한 채
병실을 나서야만 하는 이 자식의 마음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길 위에서 홀로 선 듯한 느낌이랍니다 
사랑하는 울 어머니 어서 빨리 쾌차하세요


20150430.
오랍드리: 강원도 방언 (집주변 길)
마실: 방언(이웃에 놀러 가다,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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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목시계

글/홍대복

오래전 태엽을 감아 사용하던 손목시계
애지중지 아끼시던 아버지의 시계 소리
오늘도 째깍째깍 또렷하게 들려온다

당신의 포근한 사랑이 묻어 있는 시계를
지난날 사랑의 선물로
손목에 채워주실 때의 환희와 설렘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하해와 같은 아버지의 마음 
아낌없이 내어 주기만 하던 가시고기 사랑
지금도 그 따뜻한 숨결은 
시계추의 울림처럼 툭, 툭 적막 속에서 호흡한다

20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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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글/홍대복

달콤한 생명수 촉촉이 단비 적신다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 
긴 겨울 동안 호흡해 온 고귀한 생명체 
아름다운 생명의 잉태를 위해 발버둥치며
꿈틀꿈틀 움츠렸던 몸 기지개 활짝 켠다

어둠 속에서 채우고 준비한 따뜻한 공간
긴 잠에서 깨어나 그 틈 살며시 비집으며
얼굴 내밀려는 화려한 봄날의 멋진 외출 
아직은 때 이른 듯
세상 구경 수줍어서 파르르 손사래 친다.

201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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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죽음

글/홍대복

가장 어두운 곳에서 
별처럼 빛나는 주황색 천사
그대의 고귀한 희생과 봉사는
불철주야 살신성인 촛농 녹이듯
거룩하게 타오르며 어두운 세상 밝혔다

별처럼 반짝이는 순결한 사랑 이기에
절망과 아비규환 속에서도
소중한 생명의 존귀함을 저버릴 수 없어
불길로 뛰어드는 그대의 숭고한 희생
화마 속에 사라진 등신불의 성찰 장엄하다

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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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놀이

글/홍대복


상생이란 양의 탈 뒤집어쓰고
쭉정이뿐인 근로자의 권익 보호
허울 좋은 명목으로 짖어대는 사측 똥개
사모관대 흡혈귀의 가면 놀이 흥에 겹다

하늘이 내린 억대 연봉 귀하신 몸 
진흙탕에 나뒹구는 최저 임금 천하신 몸
비리와 부폐로 얼룩진 버려진 양심
나 모르쇠 답변 아래 빈부 격차 각혈한다

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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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글/홍대복

미운 투정 고운 투정 안고 살아온 인생길
예쁜 꽃잎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불모의 가시밭길 일구면서
행복의 열매 맺기 위해 걸어온 긴 여정
어찌 풋풋한 과일처럼 싱그럽기만 하였겠소

때로는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렸지만
잡초같이 모진 세월 이렇게 잘 견디어 왔잖소
애환과 슬픔에 젖은 과거와 현실
인연으로 지켜 온 여로 가만히 돌아다 보니
그대와 동행한 길 나에게는 참 행복이었소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이해하고 배려할 때
사랑과 행복의 싹 움튼다는 소중한 진리와 
부족함을 미덕으로 감싸주던 포근한 사랑
온유한 그대와 교감함은 커다란 기쁨이요
아름다운 여행길에 진정한 동반자라 생각하오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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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삶

글/홍대복

의식주마저 사치인 찢어지게 가난한 삶
베이비붐 세대인 내가 지나온 여정이다
피폐와 궁핍한 과거의 생활이란
허기 곱씹으며 냉기 품은 빈곤 바닥에 누웠다

세태에 휘어진 나의 삶 또한 
가난을 짊어진 일상의 목마름으로
먹잇감 낚아채는 독수리 마냥
인생의 날갯짓 퍼덕이며 세상에 비상한다

봄날은 가고 서리 내린 긴 세월 
익어가는 뜨락에 외롭게 선 중년의 나
인생길 항해하는 항해사의 번뜩이는 눈빛으로
역풍 맞는 돛 내려 세파의 비릿함도 잘 참아 낸다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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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꽃 무리

글/홍대복

사월이 오면
볕 고운 산마루에 연분홍빛 참꽃 무리
꽃잎 따서 입 맞추는 두견새의 속삭임에
파란 하늘 베물고 청초하게 피어난다

사월이 오면
샛바람 불어오는 앞산 언덕에
볼연지 색깔인 양 수줍은 듯 떨림으로
초연의 예쁜 사연 온 산 가득 물들인다

사월이 다 가기 전
아침 이슬 머금은 듯 새초롬한 고운 꽃잎
그리움의 물결 되어 함초롬히 피었다가 
봄비 속에 스러지며 툭` 툭` 꽃무덤에 눕는다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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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빈집

글/홍대복

덩그러니 내버려진 어머니의 빈집
따뜻한 온기 사라지고 
얼음장 같은 냉기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거미줄에 매달린 역겨운 곰팡이와
방바닥에 나뒹구는 주인 잃은 집기들
어둠을 움켜쥐고 울컥 그리움을 토해 낸다

겨우내 걸어 둔 처마 밑의 씨앗들
울 어머니 기다리듯 꼼지락거리고
사무치는 모정 널브러져 내 주위 감싸든다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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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존재하는 너

글/홍대복

꼬물꼬물 생활 속에 밀접하여
가장 밝은 눈으로 세상 속에 존재하는  너
나날이 변화하는 자태 세련된 모습으로
익살스러운 세상 풍경도 잊지 못할 추억도
심술궂은 내 표정까지도 세세히 담아낸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함으로 다가서는 너
일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조리개의 미학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는 한 역사의 증인처럼
똑똑한 너의 시야에 비추어진 세상 풍경은 
언제나 미래 지향적 원색의 현재 진행형이다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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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화상)

글/홍대복

서리 내린 하얀 계절
스치듯 휭하니 지나버린 세월을 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메마른 잎새처럼
각박한 생활 속에 지나온 흔적의 자화상
들판에 나부끼는 쓸쓸한 잡초와 같아라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온 외로운 삶
홀로 우두커니 한세상 바라보는 시선은
귀하거나 천하거나 걸어온 빈 발자취뿐
인생이란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은
이름 없이 초라한 들꽃과 같이 허무하여라.

201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