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해마다 벌초 시기가 되면 종손인 큰형님이 벌초 일정을 전화로 통보해 온다. 벌초 시기는 절기상,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는 지라지 않는다는, 처서(處暑)와 기온이 이슬점으로 풀잎에 맺힌다는, 백로(白露) 사이에 하는 것이라 한다. 산소가 있는 어느 집안이나 해마다 추석을 전후해 한번은 연중행사로 벌초 날짜를 잡는다. 벌초는 묘소에 난 풀을 깎아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로, 조상의 묘를 가능한 한 깨끗이 단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후손들의 조상에 대한 섬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묘소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하여 벌초에 많은 신경을 써왔다.

이맘때면 여느 집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집안도 해마다 추석을 이 주일 정도 앞둔, 주말을 이용해 벌초를 해왔다. 벌초 일정이 잡히면 시골에 사둔, 예초기 손질을 친인척께 전화로 미리 부탁드린다. 벌초 때면 삼촌, 사촌 형제, 조카 등, 열 명 정도가 움직인다. 고향이 먼 탓에, 벌초하려면 큰마음 먹고 집을 나서야 한다. 경북 울진이 필자의 고향이다. 교통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5시간은 족히 걸린다. 예전에는 하루 전에 출발하여 자고, 아침 일찍 벌초하러 산에 올라갔으나, 연로한 친인척께 민폐가 되기에 십상인지라 토요일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을 읍내에서 해결하고, 인척이 사는 시골집에 들러, 예초기 두 대를 챙기고, 낫, 깎지 등을 챙겨 피곤함을 뒤로하고 벌초에 나선다.

우리 산소는 시골집에서 10분 정도로 차를 타고 이동하여, 강변에 주차하고, 강 건넛산에 오르면, 얼굴도 모르는 증조부님을 위시하여 산소가 총 10기다. 선산에 증조부님의 산소와 등이 있고, 산 너머 산등성이 골짜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좋은 풍수를 찾아 산소를 흩어 놓았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옛날 어떻게 산소를 그 높은 곳까지 썼을까 싶다. 산에 오르다 보면,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이 산골짜기 저 산골짜기에서 울려 퍼지는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는 잠들었던 산을 깨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벌초하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산소에서 모여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필자의 기억 속에 처음으로 기억되는 벌초는, 필자가 10살도 채 되기 전, 할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따라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코흘리개가 벌초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께서는 조상 묘의 위치와 당신의 정성을, 어린 손자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예초기도 없던 그 시절, 당신께선 나를 그늘에 앉혀두시고, 따가운 가을볕을 맞으시며, 일일이 낫으로 조그마한 풀까지 깎아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당시만 해도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산에 나무도 지금처럼 무성하지도 않았고, 오솔길도 나 있었지만, 지금은 나무가 무성하여 산에 들어가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가 되었다. 혼자 산에 들어가라면 망설이게 된다. 더군다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멧돼지 등, 산짐승 발자국이 많으니, 사람을 해코지하는 산짐승이라도 마주칠까,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깊은 산에 있는 산소는, 성묘하고 산소 위에 소주를 붓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도 산소에서 떨어진 곳에 버린다. 멧돼지가 산소를 훼손할까 싶어서다. 요즘 같은 벌초 시기에 해마다 일어나는 사고는, 예초기 사고와 말벌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는 통계가 있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초기 사용 시, 예초기 칼날이나 돌이 맞아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의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후, 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안전하게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벌초를 하기 전, 돌이나 나뭇가지를 풀숲에 던져, 말벌이 있는지를 확인 후, 벌초하는 것이 좋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에프킬라는 반드시 챙기기를 당부한다.

요즘 들어 장례문화도 장묘(葬墓)에서 화장(火葬)으로 바뀌는 것이 대세다. 이렇게 벌초하는 문화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업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고향을 떠난 자손이 돌보지 않아, 묘소가 산이 되다시피 한 무덤을 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깨끗하게 정리되던 묘소였다. 앞으로도 차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세대야 윗대부터 산소를 돌봐 온 것을 손수 몸으로 체험했으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글쎄 우리 다음 세대들은 이름도 모를 험하고 높은 산등선 골짜기를 찾아다니며 성묘하리라 여기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대의 흐름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우리 세대에서 끝날지 모를 조상 산소를 돌보는 일정이 힘이 들지만, 그래도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면, 한동안 마음이 가볍고, 무엇인지 모를 전율로 가슴이 뿌듯하게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