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빈 뜰 

고향은 누구에게나 어머니 품속 같은 마음의 보금자리다.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며, 정겨운 얼굴들이 가슴속에 숨 쉬는 땅이다. 고향 산천을 가슴에 품으며 향수에 젖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연어도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이처럼 동물의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사람에게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내 가슴에 담겨있는 고향 산천은 그대로인데, 세월이 휩쓸고 가버린 얼굴들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막힌 듯이 저민다. 기다려 주는 이, 아무도 없는 고향을 생각할 때면, 형용할 수 없는 아픔으로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던 정겨운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고향 마을의 주인 잃은 빈집들도 을씨년스레 세월에 묻혀가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못내 아프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다. 고향 분들을 대할 때면, 마음을 한없이 의지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누구네 집 아들, 누구 조카, 누구 형, 동생을 짚어가며 가물거리는 기억을 하나라도 더 들춰내 반가움을 표한다. 예전에는 상(喪)을 당하면 집에서 일일이 상을 치르곤 했는데, 세상의 변화로 언제부턴가 고향 분들이 상을 당해 조문을 가더라도, 읍내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러, 지척에 있는 고향 마을에도 들리지 못하고 올라오곤 한다. 부모님이 살고 있지 않은 고향은, 추수가 끝난, 허허로운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명절에 고향 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고향을 떠나온 지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고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고향 마을을 밟는 것이라야 고작, 한 해에 한 번, 벌초 시기에 찾는 것이 전부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나날이 줄어가는 고향 어르신들과 고향 마을 빈집들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 난데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을 싸늘하게 한다.

세월을 따라 모두가 떠나간다. 고향을 찾으면 언제나 따스하게 반겨주는, 몇 분 안 남은 고마운 분들을 뵙는다. 이제 몇 해나 더, 반겨줄지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린다. 의지하며 살던, 건넛집 감나무 집 할매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말을 전하며, 눈시울 붉히던 길동 할매의 애처롭고 구슬픈 눈물이 한없이 처량하여 가슴을 울린다. 여느 농촌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내 고향에도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들어 홀로 사시는 연로한 늙은 분들이 많다.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자식들은 객지로 떠나보내고, 인생의 동반자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후, 외로이 노후를 맞는 모습이 가엽고 처량해 보인다. 그리고 가슴을 애처롭게 만드는 것은,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하듯, 고향 마을에 스러져 가는 빈집들을 볼 때면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제아무리 깨끗하던 집도 사람이 기거하지 않고 사람의 손길 발길이 없으면 금세 허물어져 버린다. 그나마 내 고향 집은 친척이 들어와 살고 있어, 다행히 보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을 얻는다. 고향 집 담장 너머로 주인 잃은, 텅 빈 집 마당에 자라난, 잡초 속에 피어난 나팔꽃은 허물어진 담장에 몸을 기댄 채, 기우뚱 고개를 내밀고 누구를 하염없이 기다린 듯하다. 헛간은 반쯤 드러누워, 위태롭게 세월을 받쳐 들기에 바쁘고, 난간과 마루가 내려앉아 주인 없이 버텨온,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 무너질 듯 위태롭다. 고인의 손때가 묻은 농기구는 바깥주인의 부지런한 자취를 거둬 녹슬어 가고,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는 안주인의 정갈한 마음씨가 햇살에 얼비친다. 마당 한쪽에 봉숭아와 목백일홍은 피어나 주인 잃은 빈집을 밝히고 있다. 발길을 돌리려니 내 귓전에 아득히 아무개야 하고 부르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터를 잡고 살다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내려가 산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일까? 고향의 빈집 땅을 팔라고 간청해도 한사코 팔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집이야 허물어져도 마음속에 담은 고향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뿌리를 굳건히 지키고 싶은 마음의 위안일 것이다.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되는 바지만, 오래된 빈집은 철거해야 좋을 것 같다. 어느 농촌 마을이나 듬성듬성 늘어나는 빈집들이 많다.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주민들의 고충도 많아 지자체(地自體)에서도 빈집 철거 비용을 지원한다고 한다. 허물어져 가는 집들이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고향분들을 위하고 고향 마을의 미관상 좋지 않아 빈집들이 하루속히 철거되었으면 좋겠다. 고향 마을에 아이들의 우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집집이 들리고, 고향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웃음꽃이 고향 뜰을 가득 메우던 시절이 그립다. 동이 트기 무섭게 산과 들, 논두렁 밭두렁 길로 뛰놀던 동무들은 세월의 그늘에서 곤히 단꿈을 꾸는 것인가? 고향의 빈 뜰에는 바람만이 한가로이 머물다 휭하니 사라지고 침묵하는 고요만이 흐른다. 내 동무야 고향의 뜰에서 놀자 불러주어라. 시끌벅적한 그 시절의 정겨운 목소리가 그리워 이내 가슴이 하염없이 넘실넘실 파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