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고속 질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좋게 말하면 부지런한 우리 국민성을 말하는 것일 테고, 나쁘게 말하면 여유 없이 조급하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 일상의 단면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쫓아가기에 숨이 벅차다. 현대인들의 삶은, 속도 전쟁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현대사회를 정보전쟁시대라 일컫는다.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자연적으로 보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을 따라잡을까 말까다. 남보다 한치라도 앞서가려 속도를 내는 뭇사람 속에서, 한 발짝이라도 뒤처질까 안달이나, 현대인의 무리 속에, 기(氣)를 쓰며 끼어들어 탑승하려 한다. 탑승하지 못하면, 공연히 자신만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어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이런 현상을 “속도 증후군”이라고 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속도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하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현대인들의 속도 경쟁은 성공의 향방을 좌우한다고들 한다. 빠른 속도만이 현대인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시대라 한다. 조금이라도 느려지거나, 뒤처지거나 하면, 사람이든 기업이든,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다. 요사이는 속도 중에서도 초고속으로 질주해야 살아남는 시대다. 남들보다 빠른 초고속 운송수단, 간편하고 빠른 식생활, 조립식의 빠른 건축, 초고속 인터넷 등, 남보다 발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빠름이 곧, 성공이요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느리거나,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도로에서 교통 신호를 기다릴 때나, 운전할 때, 차량 속도도 남보다 앞서가려 규정을 위반해 가며 속도를 낸다. 3분 먼저 가려다가 영영 세상을 앞서 떠날 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기어코, 남을 밟고서라도 앞서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 제일주의가 되어간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심보가, 너나없이 널리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즘은 기성세대들이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속도를 은근히 부추기는 추세다. 다른 아이보다, 자기 자식을 앞세우려는 조급함으로 밤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쉴새 없이 돌리는, 학부모들의 극성이 정도를 넘어선 듯하다. 우리 세대들은 대체로 방과 후, 아이들과 어울려 냇가에서 고기를 잡거나, 물장구치며 놀고,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자연에서 뒹굴며 자라났다. 이렇게 말하면, 현재 학부모들은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냐면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라며 역정을 낼 것이다. 아무튼, 요즘 아이들은 극성스러운 부모 밑에서 하루 24시간 감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반복되는 시곗바늘의 오차 범위를 벗어 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공식 하나를 더 풀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였으니, 우리 사회가 점점 개인주의에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새겨 볼 때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일진대 말이다. 모두 공감하면서도 시대 상황을 놓고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풀어나갈 방법이 있을는지 요원하기만 하다.

현세대들처럼 빨리빨리 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리고 무조건 현실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빠름과 느림의 조화를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혼용하는 것도 지혜라는 것을 일깨워 줘야 한다. 우리 세대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우던, 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아마 저학년 국어책에 실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익히 모두 아는 내용이겠지만, 다시 한 번 상기(想起)해본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에서 발 빠르고 꾀 많은 토끼가 자만심과 자기 꾀에 빠져, 느리지만 성실한 거북이에게 경주에서 졌다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던지고자 했던 교훈은, 꾸준히 노력하는 자만이 승리 즉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세대들은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용을 접어 두고서라도,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은, 달리기 경주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란다. 토끼와 거북이가 왜, 땅에서만 달리기 경주하느냐고 되묻는단다. 물속에서 경주한다면, 당연히 힘들이지 않고, 거북이가 이긴다는 현실적 논리이다. 현실적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하! 맞아 이것이 세대 간, 사고의 전환이라는 인식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음을 통감했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매체를 보고 자라나, 생각 따위가 명석하기는 하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충분히 불공정 시비가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운 해맑은 동화를 꿈꾸는 상상력으로 커가는 것이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길일진대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는 빠른 속도를 내며 질주하기에, 모든 것들이 간편화해졌다. 옛날에는 종이 신문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했지만, 요즘은 스마트 폰 하나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편리함이 주는 만큼 우리는 잃어버리고 사는 것 또한, 무수히 많다. 요즘 들어 느림의 미학을 힘주어 제창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주변을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이 여유를 찾는, 인간 본성의 순수한 삶을 추구를 동경하는 이들이다. 빠르게 빠르게 앞만 보고 질주하다 보면, 서두르다 놓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남보다 앞서간다 한들, 두 번을 살 것도 아닌 인생,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을 잃고 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느림을 지루하고 답답하다고만 생각지 말고, 즐기는 여유를 가져보자. 우리는 흔히 게으르다는 것과 느리다는 것의 의미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다. 느리다고 해서 게으른 것이 아니며, 빠르다고 부지런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가끔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풍경 속에서 자신의 일상도 되돌아보며, 삶의 질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느림의 미학이 안겨줄 행복을 누리시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선물을 보따리를 스스로 풀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삶의 오묘한 굴레는 화려한 듯싶지만, 투시되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행위 예술의 춤사위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