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거주자 내쫓기

우리 집 아파트 큰아이 방 앞,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안쪽에, 주인의 허락 없이 숨어 사는 무단 거주자 가족의 정체를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집에 비해 우리 집 베란다에는, 거실과 큰방 실외기 에다 큰아이 방 실외기가 아래위로 이중으로 놓여 있어, 비둘기 가족이 숨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 아니었나 생각 듭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옛말에 날짐승이 집에 찾아들면 복이 들어 온다고 하여, 내치지 않는다는 말을 자라면서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있기에 내심 좋아라, 반기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안쪽에도 비둘기의 하얀 알 두 개가,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둥지 안에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암수가 번갈아 가며 20여 일을 품는가 싶더니, 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알을 깨고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처음 안 사실이지만, 비둘기는 모유로 새끼를 기른다고 합니다. 새끼는 어미의 모이주머니 안쪽 벽에서 분비되는 즙(젖)을 먹여 기릅니다. 여느 어미나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성애는 같은가 봅니다. 비둘기 부부도 혹시나 자기 새끼를 해하지 않을까 무척 경계합니다. 비둘기의 수명은 10~20년 정도라 하며, 암수가 한 쌍이 되어 살아간다 합니다. 아무튼, 간에 비둘기와 우리와 동거를 한 지도 5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간간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기도 했나 봅니다.

이제는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우리 집뿐 아니라, 여러 집이 비둘기의 막무가내식 점령지가 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겨울철이면 몰라도 여름철에 배란다 창문을 열어 놓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란다 난간에 비둘기 배설물과 방충망에 비둘기 털이 붙어있고, 특히 휴일 이른 아침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구구국 구구국 하는, 비둘기 특유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랫집에 비둘기 배설물이 떨어져 이웃 간에도 실랑이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배설물이 쌓이고 어지간한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나서기에 이르렀습니다. 관리사무실에서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집집에 방송까지 하고, 비둘기 퇴치 방법까지 공론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집은 청소업체를 불러 청소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 집도 베란다에 바람개비를 꽂아 두어 보기도 하고, 매번 비둘기를 쫓아내지만, 사람을 무서워 조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둘기 서식과 배설물과의 전쟁이 우리 집도 예외일 순 없었습니다. 실외기 안쪽을 살펴보니, 5년 동안 방치한 비둘기 배설물이 6센티는 되어 보입니다. 에어컨을 켜면 실외기 바람으로 날릴 배설물 분진들을 생각할 때,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건강에도 치명적이겠다 싶어 하루속히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비가 내리는 날 아파트 동, 전체 물청소 공고가 붙어 있었지만, 우리는 맞벌이 관계로 평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벼루고 벼루다가 큰마음 먹고 여름 휴가를 맞아 집 인테리어를 바꾸기로 한 올여름, 우리 집도 비둘기 퇴치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6센티나 쌓인 비둘기 배설물은 콘크리트같이 단단했습니다. 아들 둘과 함께 궁리를 짜내다, 알루미늄 밀대 대를 부숴 밀대 끝을 망치로 때려 날카롭게 한 다음, 망치로 밀대 자루 뒤를 쳐가며 콘크리트를 깨부수듯, 비둘기 배설물 제거에 돌입했습니다. 행여나 아랫집에 떨어질까 싶어, 회사에서 큰 청소기를 빌려와 흡입해가면서 말입니다. 두어 시간은 족히 걸려 말끔히 비둘기 배설물을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5년 동안 쌓인 비둘기 배설물이 얼마나 많던지, 큰 청소기로 빨아들이다, 세 번씩이나 아파트 화단으로 내려가 청소기를 비워 내야만 했습니다. 무더웠던 올여름, 비둘기 배설물 청소로 세 부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깨끗해진 베란다 실외기 뒤를 보니, 오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청소까지는 말끔히 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강해, 한번 서식지로 삼은 곳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습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큰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비둘기 퇴치 방법을 검색하더니 알려 줍니다. 첫째 베란다 난간에 케이블 타이를 끝이 하늘 방향으로 일정 간격으로 묶어 놓는다. 둘째 비둘기가 싫어하는 나프탈렌을 뿌려 둔다. 셋째 바람개비를 꽂아두거나 CD 등을 놓아둔다. 넷째 평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을 알려 줍니다. 비둘기가 앉거나 날아오를 때 날개를 펴야 하므로, 케이블 타이 바람개비 등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날개를 보호하려는 습성을 이용하여 안전한 장소가 아닌, 위험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궁리 끝에 세탁을 맡기면 딸려오는, 일회용 옷걸이를 최대한 울퉁불퉁하게 구부려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에어컨 실외기 뒤, 비둘기가 찾는 곳에 많이 놓아두었습니다. 일회용 옷걸이를 20개 이상은 구부려 넣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바람개비도 최대한 실외기에 붙여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난간에 케이블 타이를 끝이 하늘 방향으로 일정 간격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비둘기가 찾아와, 구구국 구구국 울며 서성이더니, 이젠 단념했나 뜸해진 거 같습니다.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다른 집 베란다에는 아직도 비둘기가 여전히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중의 하나가 비둘기입니다. 우리는 비둘기를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 알고 있지요. 전쟁에서 비둘기가 이용되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큰 행사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것이 관례화되었지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비둘기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고 있습니다. 2009년 환경부는 비둘기를 유해 동물로 지정했으며 이제는, 평화의 상징이 아닌 사회적 골칫덩어리입니다. 특히 비둘기 배설물은 병원체가 각종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철마다 발생하는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도 철새의 배설물에서 전염된다고 하니, 더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둘기의 급격한 개체 수 증가로 우리 주변에 적잖은 민폐를 끼치고 나아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