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초보 농사꾼 이야기

 
태양보다 더 달아오른 빨간 고추가 탐스레 익어 더위가 콧속까지 강렬하게 밀려든다. 푹푹 찌는 무더운 날, 고추밭 고랑에서 고추 따기란, 고추보다도 더 맵고 힘든 일이다. 멋모르고 심은 고추포기가 천 포기가 되다 보니, 따고 돌아서면 또다시, 고추밭이 빨간 주단을 깔아 놓은듯하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빨간 고추 수확이 한창이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땀은 등줄기를 타고 비 오듯 하지만, 그래도 자루에 차곡차곡 채워져 가는 붉은 고추 자루를 보면서 마음은 부자인듯하여, 힘든 줄을 모르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고추 따기에 여념이 없다 보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걸려있다. 그 날도 일을 마무리할 즈음, 고구마밭 건너 땅콩밭에서 까치 우짖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못해 요란하다. 열다섯 마리 남짓이 밭 주위를 맴돌며 앉았다, 날아올랐다,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땅콩밭으로 향했다. 까치들은 발악하듯이 울부짖는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땅콩 밭고랑에 들어서니, 까치의 접근을 방지하려 덮어 놓은 그물에 까치 한 마리가, 그물에 다리가 걸려 파드닥파드닥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요것 봐라. 너 잘 걸려들었다. 싶어 회심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 년 전, 첫해 까치와의 악연에 만감이 교차한다. 까치와 초보 농사꾼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작년, 첫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사꾼은 봄에 파종 시기에 맞추어, 당차게 옥수수와 콩을 심었다. 고랑을 내어 검정비닐을 덮어씌우고, 구멍을 내어 옥수수와 검은콩(서리태), 흰콩을 심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옥수수와 콩 씨앗이 싹을 움터 자라나면, 누가 뽑은 듯이 모조리 뽑혀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이는 영악한 까치가 뿌리 밑에 원곡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리로 뽑아 원곡을 쪼아 먹는 것이었다. 그뿐이랴, 콩도 모조리 뽑아 놓아, 며칠을 땀 흘려 일한 고생도 허사였다.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남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콩을 심고, 그 위에 일회용 종이컵을 씌우고, 조그마한 돌을 얹어 놓으면, 까치로부터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 초보 농사꾼은 순진하게 밭고랑에 콩을 서너 알씩 심은 다음, 일회용 종이컵을 덮고, 작은 돌로 종이컵 위에 얹어가며, 하루에 걸쳐 콩을 파종해 놓았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며칠이 지나 밭에 와 보니, 종이컵은 하나같이 나뒹굴고 있고, 파종한 콩 새순이 나올라치면, 모조리 부리로 쪼아 뽑아 먹어, 밭이 일회용 컵으로 하얗다. 부리로 일회용 컵을 쳐 넘어뜨린 후, 콩을 죄다 먹어 치운 것이다. 우리 밭은 까치들을 위한 잔칫상이었다. 까치들은 순진한 초보 농사꾼이 자기를 위해 만찬을 차려 놓은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급기야는 산비둘기까지 합세하여 만찬을 즐기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콩을 심기로 한 그 자리에 들깨를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모종으로 심어 기른 옥수수도 여름 무렵, 알이 배일쯤이면, 영특하리만큼 남김없이 쪼아 먹고, 수수가 알이 배일 때면, 수수 대롱에 앉아 껍질은 놔둔 채, 알만 빼먹는 얌체 까치였다. 일일이 수수에 그물을 모두 덮을 수도 없고, 첫해 초보 농사꾼은 까치 좋은 일만 해준 꼴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밭에 내려앉은 까치 수가, 무려 오십여 마리나 무리를 지어 다닌다. 곡식에 해를 주는 유충과 같은 벌레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힘들여 심어 놓은 농작물 새순이나 땀 흘려 지어놓은 곡식을 먹어 치우니, 사람에게 유해한 새임이 틀림없다. 어찌, 우리만의 일이겠는가? 우리 농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 하리라. 짐작 코도 남는다. 아무튼, 첫 농사 초보 농사꾼과 까치와의 전쟁에서, 초보 농사꾼이 대패했다. 그래서 올해는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내어 심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옥수수는 알이 맺힐 때쯤이면 피해를 막을 수도 없었다. 까치가 지능이 높은 조류임을 실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아침에 까치 우는 소리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하여, 까치를 길조로 여겼었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해로운 조수로 분류되어 전국적으로, 까치 퇴치사업이 전개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이러렷다. 농민뿐만 아니라, 전신주에 금속물을 물어다 집을 짓는 바람에, 전기 누전을 일으키는 심각한 현상을 일으킨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땅콩밭 그물에 걸린 까치를 보며 죽여야 하나 살려줘야 하나를 잠시 잠깐 망설였다. 여러 까치가 보는 앞에서 본때를 보여 줬으니, 처남도 까치를 살려 주자 한다. 원수 같은 까치지만,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처남이 그물에 걸린 까치 발을 풀어 까치를 놓아주었다. 미물인 까치를 원망해본들 무슨 소용이던가! 그들도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것을 어쩌랴. 파종하는 봄철부터 가을 추수철까지, 아침이나 저녁에 우리 밭 주위엔 까치가 떼를 지어 찾아든다. 협상마저 할 수 없는 까치와의 휴전 없는 전쟁은 오늘도 한창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