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농업화에서 산업화로 넘어오던 과도기였다. 그 이전에도 더욱이 살기 힘든 시기였겠지만, 그건 이야기로만 들었지 겪고 직접 생활해 보지 않았으니, 접어두고서라도, 내가 겪고 자라난 1970년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자라던 시기는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새마을 운동 노랫말처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소득 증대, 부자 마을 등, 사회 전반적으로 역동의 시대였다. 내 고향은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다. 어린 기억 속에는 노래 가사처럼 실제 새롭게 변모하는 마을이 뇌리를 스친다. 이 무렵 내가 사는 마을에도 전기가 처음 들어왔다. 불과 50년이 채 되지 않은, 그리 머지않은 이야기가 가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어 버린 현실이다.

국가적으로 잘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은 어린아이들까지 동참했던 운동이 아닌가 싶다. 마을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모임인 애향단은 일요일이면, 동네 골목길을 쓸고, 마을 어귀에 꽃동산 꽃길도 가꾸었다. 집안 일손이 모자라 어린 꼬막 손으로 집안일도 알아서 도왔다. 망태기에 소 꼴을 베어오는 일 등,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도왔다. 이러한 모습들은 또래가 모두 그렇게 했으니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자랐다. 놀이 문화는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려 하는 놀이가 많았다. 사내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을 싣고 공차기도 하고, 자치기를 하던 놀이도 즐거웠고, 계집아이들은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던 동요가, 귓전에 가랑가랑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살기 힘든 시절,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었다. 집집이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줄줄이 엮어 놓은 듯 낳아, 궁한 살림살이는 모두 이만저만 하였던 때다. 마을에 상가(喪家)나 잔칫집이 있으면, 아이들은 끼리끼리 우르르 모여가 배를 채웠고,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부엌 가마솥에 보리쌀에 감자를 같이 넣어 안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면 으레 밥때가 된 것을 알고, 알아서 모여들어 챙겨 먹어야 했다. 개개인의 밥그릇이 어디 있었는가, 두리 반상 위에 밥을 양푼에 가득 퍼 놓으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 부산을 떨며 숟가락질하던 고만고만한, 또래 형제자매의 모습들은 지난 후 생각해보니, 눈물겹도록 목이 멘다. 흰 이밥을 구경하기란 제사나 명절 때 외엔 힘들던 시절, 아버지 밥상 밥그릇에는 그래도 흰 이밥 올라와 남길라치면, 한 숟가락 떠먹는 것이 횡재나 다름이 없었다. 그 시절 하루 세끼에 먹는 집은 그래도, 그럭저럭 사는 집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받아 입은 옷들은 꼬질꼬질해졌어도, 모두 그러했으니 창피를 몰랐었다. 애들의 얼굴에는 누른 코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과 머리에는 영양실조로 마른버짐이 피어난 모습의 아이들도 많았다. 손등은 대부분 추위에 터 있었다. 모두 살기 어렵고 힘든 시절, 하지만 아이들의 티 없이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은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것 같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쌀 생산량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여, 쌀 부족으로 쌀밥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다. 이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혼식과 분식을 강제하는 식생활개선 정책이 시행되었다. 명절 때면, 어지간한 집은 큰마음 먹고, 쌀 막걸리 담그는 집이 보통이 이었으나, 쌀 막걸리 담그는 것은 절미운동의 목적으로 정부에서 금하였다. 명절을 앞두고 수시로 단속이 나오면 집집이 숨기고 했던, 기억과 어느 집은 발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뇌리에 남아있다. 그 시절은 교육 당국에서도 혼분식장려운동에 동참하여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통해, 가정에서도 혼분식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쌀 소비장려 운동을 전개하는 시대이니 살기 좋은 시대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배고픈 그 시절 먹던 음식들이 건강식품이 되어 너도나도 찾고 있으니, 세월의 얄궂은 장난이라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그래도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던, 그 시절의 생활상을 머릿속에 고이 찍어두었던 흑백필름을 현시점에서 다시금 되돌려보니, 그리 멀지도 않은 시절 이야기가, 가마득히 먼 옛이야기가 되어, 힘들고 고달팠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그리운 풍경들로 나의 머릿속에 오롯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