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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1-08 18:29
ㆍIP: 58.xxx.124
대한민국을 먹어버리자
대한민국을 먹어버리자

         권영심 ( 2021 , 11 , 8 )

나를 포함해서 네 사람이 오래간만에
분식집에 갔다.
가끔 분식이 먹고싶을 때가 있는데,
한 사람이 추천하는 집에 일부러 갔다.
쫄면 라뽁기 튀김 돈까스를 시켰는데
비주얼은 좋았으나 맛은 별로였다.
식당 안에는 젊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
는데 ,그 중의 두 사람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세 명이 앉았고 ,우리가 갔을 때도 몇 종류의 음식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라면과 돈까스를 또 시켰다.
가만히 보니 한 사람은 구경하는 중이었
고, 두 사람이 먹기 내기를 하는 듯 했다.
음식이 나와서 먹었는데 이미 식욕이 사라진 나는, 튀김만 조금씩 먹으면서
그들을 쳐다 보았다.
많은 음식을 시켜, 다 먹지도 못 하고
낑낑대면서 먹고 있는 두 젊은이들의
모습과 그들의 대화가 비위를 상하게
했다.
각자가 시킨 음식을 먼저 다 먹는 사람 이 이기는 내기였고, 진 사람은 음식값 을 다 지불해야 했다.

요즘 먹방으로 내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라는 말은 듣지만 ,직접 보게 되는 드문
경우를 만난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많은 양의 음식을 남기고
나갔고, 큰 테이블엔 음식의 잔해가 정말 쓰레기처럼 보였다.
나는 일행들에게 다 먹기를 독려했지만
결국 남기고 나왔는데 먹방내기에 이미
입맛을 잃어 버린 탓이기도 했다.
나이든 여자 넷이 분식집에 간 것이 잘 못이라면서 ,우리는 음식내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성토를 했다.
먹방을 보면 군침이 돈다고 티비에서
그렇게 보여주건만, 우리들에겐 아닌 것
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밤에, 티비의 한 프로를 보고 또
한 번 비위가 상하고 말았다.
어느 가게에 여자 네 명이 들어가서 라 면을 시켜 먹는데 그 양에 너무나 놀라 고 말았다.
네 명의 출연자가 먹은 라면이 총 82봉,
그것도 한 시간 안에 먹는 것을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저게 가능한 것일까?

보통 몸매의 여성들이 그 많은 라면을
먹고나서도 얼굴은 또 먹을 기세였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사람의 위는 아무리 늘어나도 그 양이
유한할 텐데 ,마치 흡입기처럼 라면을
빨아들이는 모습은 기괴하기조차 하다.
나는 한 번에 라면을 두 개도 먹은 적이
없다.
두 개를 끓이기는 하지만 결국 남기기
때문에 한 개만 끓여 밥 두어숟갈을 넣
어 먹는다.
내가 하루 동안에 가장 많은 음식을 먹은 날을 기억하는데 설흔 아홉의 생일
이었다.
이제 마흔이 되고 9수를 잘 넘기겠다는
마음으로 ,오전부터 시작된 대장정은
다음날 새벽 6시에 끝났다.
일곱 곳의 가게를 옮겨 다녔고, 가게 마다 먹은 음식과 술은 말 그대로 장난 이 아니었다.
여섯 명이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두 명이
남았는데 모두 우리집에서 뻗었다.
정말 마음먹고 행한 일이었기에 지금도
후회가 없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만만찮았다.

며칠 동안 음식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나고 쓴물이 올라왔다.
나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해장이란 것을
몰랐는데 ,속이 쓰리지도 않았으며 토하 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물만 마셔도 토했고 음식 냄새가
너무나 역했다.
그 뒤로 먹는 것을 주의하고, 특히 많이
먹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좀 과식했다 싶으면 온 몸이 아픈 듯 하
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먹는 것이 대세고
먹방 프로의 범람은 홍수처럼 무차별로
시청자를 공격한다.
먹장군, 먹부림, 먹박사, 먹찐, 먹요원 ,      
먹투력, 먹피아,먹크러시... 더 있는지
모르겠으나 먹는 것으로 승부하는 사람
들을 요즘 이렇게 호칭한다.
별 희한한 명칭을 달고 하다못해 어마
무시한 음식을 먹어치우는 어느 유투버
는 음식 수행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오직 많이 먹는 것만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대라니 이 시대에 살면서도
놀랍다.

기형적으로 많이 먹는 것과 함께 말이
너무나 이상하게 변질되어 가고있다.
우리의 말의 본형이 파괴되어 가는 것에
일조하는 사람들이 먹방의 대표들이고,
그 중에는 정말 심한 말을 마구 내뱉는
사람들이 있어 듣기에 거북할 때가 많다
그 프로에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은 먹는
것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데 그녀 를 먹대모라고 부른다.
먹대모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대한민국 을 먹어 버리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별별 심한 말들이 많지만 대한민국을
먹어 버리자라니?
내가 이 시대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 하 는 것이 확실하다.
아니지, 요즘은 감성은 사라지고 갬성이
라고 말한다.
나는 갬성이라고 일부러 말하는 사람들
이 싫지만 그것도 스스로의 판단이니
내가 참견할 이유가 없다.
많이 먹어서 매상을 올려, 힘든 자영업
자들을 돕자는, 나름 좋은 취지의 프로 에서 대한민국을 먹어 버리자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생물은 스스로의 몸에 맞게
먹고 배가 부르면 먹는 것을 멈추는 것 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많이 먹는 것이 주목
받는 시대라니 좀 두렵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은 아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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