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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1-01 19:05
ㆍIP: 58.xxx.124
시간의 흐름
#권영심의글
시간의 흐름

           권영심 ( 2021 , 11,1 )

매일을 살다 보면 기다리거나 줄서기를
할 일이 거의 없다.
맛집을 찾아서 줄서기하는 일은 한 번
도 해본 적이 없고 요즘은 손님이 많은
식당은 들어가지도 않는다.
은행의 캐시 코너도 사람이 많으면 되돌
아서 나중에 다시 간다.
유일하게 기다리는 것을 되풀이 하는 것
은 병원에 갔을 때이다.
접수할 때 부터 진료를 받기까지 최소한
한 시간은 소요된다.
몇 십 명이 대기하고 있는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는 시간을 그렇게 지루
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눈을 감고 가수면 비슷한 상태로 있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화가 나거나
힘든 느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앞의 많은 번호가 사라지고 몇 명 남지않았을 때다.
하나 하나 켜지는 번호의 숫자가 내 번호에 가까워지면 갑자기 시간은 이상
하게 변한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 접수대 의 직원이나 접수자의 모든 동작이 그렇게 느릴 수가 없다.

몇 십 분을 편안하게 기다렸는데 단 몇
분, 몇 초가 그렇게 느리게 흘러 간다.
마치 일부러 나를 골탕먹이는 것 처럼
모든 것이 불합리해지고 답답한 설정으
로 채워진 것 처럼 느껴진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할 때도, 예약을
했음에도 많이 기다릴 때가 있다.
대기석 건너편의 전광판에 이름이 없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이름이 뜨는
순간부터 달라진다.
진료 시간은 한 없이 길어지고 내 이름 은 도무지 앞으로 진격하지 못 한다.
시간을 보면 불과 몇 분인데 마치 한 시간이나 기다린 것 처럼 몸살나게 지루
해진다.
앞서 기다린 몇 십 분은 사라지고 내 이
름이 위로 올라가는 그 몇 분이 마치 영
원의 기다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눈을 감고 안 보기도 하는
데 정말 신기하게도 전광판의 이름이
올랐을 때 눈이 떠진다.

왜 그럴까? 나만 그런 것인가 했더니,
여러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있지만 기다리
는 것은, 시간이 무거운 추를 달고 천천
히 걸어가는 듯 지루하고 애타고 가슴이
조려지는 일인듯 하다.
반면 뭔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일은
어쩐지 시간이 빨리가는 것 같다.
지금은 코비드로 인해 중단했으나 반찬 만들기 봉사를 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경험했다.
오후 2시에 모여 네 시 까지 반찬을 만드는데 배달을 맡은 봉사자들이 너무
일찍 와서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아직 안 됐어요?
우리 것만 먼저 주실 수 없을까요?
이런 말들을 들으면 그 때 부터 마음이
바빠져서 일의 흐름이 깨어져 버린다.
나는 표현을 안 하지만,  화를 내면서 일일이 설명하는 봉사자도 있어 참 난감
할 때가 있다.

도시락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만든 음식을 한 봉사자가 도맡아
포장하고,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 세 개의 도시락과 간식을 넣어야 완전체가
되기에 먼저 줄 수가 도저히 없다.
홀로어르신의 일주일치 찬이기에 한 도
시락에 음식 한 가지씩, 세 개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시간 전에 배달 봉사자들이 주방에
오지않도록 부탁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꽃꽂이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토요일 새벽에 꽃을 사러 서울에 갔다가
성당에 도착하면 열 시 즈음이다.
보조하는 자매가 지난 주일의 꽃을 다
치워 놓고 오아시스까지 물에 담아 놓아
놓으면 그야말로 시간이 널널하다.
성당에 다닐 때 몇 년 동안은 여러 명이
조를 나누어 했기에 아무런 문젝가
없었다.
그러나 꽃꽂이 전담 자매들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헌화회의 봉사자들은
인원이 현저히 줄었다.

축일 때도 혼자 만드는 일이 많아지고
도와주는 자매조차 없을 때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오후 3시에 학생 미사가 시작되기에 그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쳐야 했다.
수녀들까지 나서서 뒤처리를 해주고 간
신히 시간 전에 마치고 나면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다.
그 때의 추억들은 황금의 시간으로 남아
내 가슴에서 빛나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이란 마법에 놀랄 때가 정말
많다.
열 시에 마치는 요즘 9시 30분이 지나 도록 손님들이 있으면 그 때부터 안절
부절이다.
일이십분은 봐 준다면서 손님들이 오히
려 느긋해서 가슴이 졸아든다.
있는 손님이 조금 늦게 간들 어떠랴만은
이 성질머리가 그런 것을 못 보니, 그저
손님들을 쫒아내기에 바쁘다.
오늘부터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된다고 하니 원래대로 장사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유
유자적 할수있는 날들이 내게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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