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내면 사기 당한다.
                            /김락호 시인

12월 꼭 해야 하는 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달이다. 첫눈이 세상을 흰색으로 잠시 채색을 하더니 오늘은 늦가을처럼 파란 하늘이 유난히도 공허하게 만든다.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평온함 그자체로서 산과 들에 모든 식물들을 잠재우고 있다. 하지만 유리온실 안에 갇혀 버린 난 오늘도 삶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림을 당하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전기히타에서 내뱉는 열기에 의존한 체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며칠 전에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나와 하나가 된 휴대전화. 어디를 가거나 잠을 잘 때도 늘 한 몸이 되어 따라다녀야만 하는,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물품중 하나가 된지 오랜 친구다.
이 친구는 각종 정보와 사연, 결과, 의논까지도 척척 해내는 마술 같은 존재이다.
돈이 필요한 것 같으면 대출안내도 척척 해주고 어디서 세일을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어디서 모인다는 것도 척척 알려 주는 아주 신통한 놈이다.
이런 똑똑한 비서가 또 어디 있을까! 고마운 놈이다.
하지만 이놈 덕분에 잃어 가는 것 또한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지인들이나 식구들의 전화번호를 두뇌에다 저장을 해야만 했다. 아니면 수첩에 힘을 빌려야만 했고 행사 일정표를 만들어야만 했다. 어찌 보면 편한 세상이긴 하지만 세상사는 정이 눈 속에 덮혀 버린 낙엽만큼이나 메말라 간다는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물건 또한 이 휴대전화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주머니 속에 잘 모셔 가는 휴대전화가 주인님을 부른다.
처음엔 진동으로 살갗을 두드리고 그래도 받지 않을 땐 정겨운 수신벨소리를 울려댄다.
스피커 저쪽에서 들려오는 점잖은 남성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구청 세무 과입니다. 김락호씨 전화인가요?”
“예, 김락호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구청 세무과인데요.”
“그런데요?”
“세금이 밀려서 알려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예......!?”
“무슨 세금이요!!......?”
“자동차세가 밀려있습니다.”
나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자니 그 점잖은 목소리의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까지 내셔야 되는 데 가능하세요?”
“글쎄요.....!!!”
“지금 제가 운전 중이니까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보고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아 그럼 바쁘시니까 제가 문자로 계좌번호를 드릴 테니 입금을 해주시면 됩니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정말로 문자가 왔다.
00은행계좌번호와 입금액수가 적혀있었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면서 ‘참 요즘 세무공무원들 친절하기도 하네. 경고장을 안보내고 이렇듯 친절하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알려주다니... 그리고 은행까지 가지 않고도 그냥 자동이체 하면 되니 얼마나 편리 한가. 언론에서 보니 고액 세금 미납자를 출국금지까지 시키는데 나도 빨리 처리를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행사도 많고 할 일도 많아 이리 저리 볼일을 보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저녁 9시가 넘어 버렸다. 잠시 의자에 앉아 하루를 회상 하다 보니 아까 그 세금 전화가 생각나 휴대전화를 다시 꺼내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였다. 자동차세금이라고 했는데 191,610원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십 원 단위까지 정확히 입금 부탁 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내차 세금이 백만원 정도인데 다시 봐도 그 금액이 잘못 써져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째서 저 금액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지난 영수증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진 후에야 영수증을 찾고 보니 분명 나는 세금을 낸 것이 아닌가. 세금을 일부만 받고 일부는 나중에 받는 일도 없을 것이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일 전화해서 알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내가 즐겨 보는 사극에 심취해버렸다.
다음날 서울문학회 모임이 있어 서울을 갔다 오는 바람에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버렸다.

그 전화를 받고 3일째 되는 날 생각이나 전화기를 들고 문자로 찍혀 있는 세무부서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문자에 쓰여 있는 차장이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 친절하게 전화로 알려 주고 문자까지 보낸 사람이 없다니.......
“그럼 저 김락호 라는 사람인데요. 세금이 밀려 있는지 좀 봐주세요.”
라며 문의를 드렸다.
“잠시 만요.”
다시 간단한 인적 사항을 묻고는 하는 말이 ‘세금 밀리신 거는 없으신데요.’ 하는 것이다. 나한테 전화를 한사람도 없고 미납세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아~ 이것이 요즘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전화 사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참 무서운 세상에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듣던 그 전화 사기단이 나한테까지 마수를 던지다니……,
씁쓸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하지 않고 세상사는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일일이 전화해서 독촉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 분신과도 같은 휴대전화지만 이 정보들을 함부로 믿지는 말아야겠다는 것 또한 배우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명분으로 남을 이용하고 회유하여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지려한다.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고 지식수준이 상승하면 그만큼의 범죄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연일 보도되는 신종 사기단들의 교묘한 수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그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의문을 던지고 싶다.

그리고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도대체 어떤 세금을 얼마나 내고 사는지! 그리고 왜 내야만 하는지!
이것저것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마치 내 모습이 고뇌하는 로댕이 되어버리는 듯 했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맞춰 봐야하는 각종 세금영수증들을 정리하다 보면 긴 한숨만이 왜 사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한번 정리를 해보자.
재산세,자동차세,환경부담금,교통유발부담금,일반전화요금,휴대전화요금,케이블TV요금,면허세,종합소득세,부과세,인터넷사용요금,관리비,가스요금,전기요금,수도요금,신문대금,의료보험료,교육세,등등 이런 세금들을 내야만 우리서민들은 이 땅에 살 권리를 부여 받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사업을 하는 기업인,자영업,문화예술인,체육인,이런 사람들이 살아가 기위해서는 또 그 나름대로의 각종 세금을 내야하고 그 권리와 의무를 다 해야만 한 인간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 많은 세금들이 과연 이 나라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세금인가 라는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국가 발전을 위한 기금, 머 이런 거창한 명분을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 다만 요즘 같은 경우를 들어 본다면 내가 내는 세금으로 매일 TV에 톱을 장식하는 정치인들의 월급을 줘야 한다는 사실과 대통령을 뽑는데 운영자금으로도 쓰여 진다는 것 정도를 알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여기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떠들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정치라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는 빈대떡을 뒤집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일 것이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골치 아픈 세상에 썩은 물로 뒤 덮힌 또 하나의 작은 우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순을 모두 지적하고 지나가려 한다면 걸려들지 않는 내용이 없을 것이다.
단지 한사람의 소시민으로 국가에서 필요로 한 것이 있다면 믿고 따라주는 것이 어쩌면 순리에 맞는 이치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연말이 다가오니 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삭막한 사건 사고들이 연일 전해져온다.
끝으로 앞으로는 힘든 소식보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소식이 더 많이 전해져오길 바라며, 요즘  TV를 보며 듣는 생각을 담아 짧은 시나 한편 소개해볼 참이다.

세상을 봐라
               /김락호

몸이 고되어 마음이 멀어지느냐!
동전 한 닢 던져주고 세상을 논하지 말아라.

고급 양복에 실크넥타이로
구멍 뚫린 작업복의 비애를 말하려느냐!
입술의 얕은 속임수로 삶에 깊이를 논하지 말아라.

반질거리는 육중한 책상에
등 기대고 앉아서 무엇을 보려함이냐!
단 돈 만원짜리 운동화에 묻은 흙을 만져보지 않고는
내일을 논하지 말아라.

최고급 외제차에 제 손으로 운전조차 하지 못하는
두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느냐!
하루벌이로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된 삶에
희망 한 톨도 얹어주지 못하면서
그들의 거친 손을 잡으려 하지 말아라.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우리가 아닌 모두를 위해
너의 마음이 삶을 말하려 한다면
그때 너의 말에 귀 기울이길 바라거라.
그리고 고통 뒤 올 희망을 베풀거라.